[프로농구 父子선수 1호 허재·허웅]

허재, 드래프트서 아들 지명 안해 "우리팀엔 슈터 김지후가 더 필요"
연세대 출신 허웅은 원주 동부행 "기대는 했지만 아버지는 냉정한 분"

"서운할 순 있지만 좋은 선수가 되길 바라야죠."(KCC 허재 감독)

"기대는 했지만, 아버지는 냉정하신 분이니 아쉬운 감정은 없어요."(허웅)

첫 프로농구 선수 출신 부자(父子) 사이엔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17일 오후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2014년 프로농구 신인 드래프트. 최대어로 꼽힌 고려대 이승현(22)이 전체 1순위로 고양 오리온스의 선택을 받을 때만 해도 잠잠하던 대회장이 허재(49) 전주 KCC 감독이 네 번째로 단상에 오르자 술렁였다. 프로농구 사상 처음으로 대(代)를 이어 코트를 누빌 선수가 아버지와 한 유니폼을 입는 풍경이 연출될 수 있다는 기대감에서였다. 전광판에는 허 감독 아내 이미수씨의 얼굴까지 등장했다.

성큼성큼 단상으로 걸어온 허 감독은 마이크를 잡자 곧바로 지명 선수를 호명했다. 선택은 아들 허웅(21)이 아니라 고려대 출신 김지후(22)였다. 허웅은 바로 뒤인 5순위로 원주 동부 유니폼을 입었다. 동부는 허 감독이 현역 시절 1998년부터 6년간 활약했던 팀이다. 허웅은 "아버지가 뛰던 팀이라 낯설지 않다"며 "아버지 그늘에서 벗어서 내 가치를 증명하겠다"고 말했다.

허 감독과 허웅이 나란히 참석한 기자회견장에선 아버지가 아들을 외면한 이유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처음에 "그걸 어떻게 얘기해. 나보고 죽으라는 거지"라면서 손사래를 치던 허 감독은 "부자가 한 팀에서 뛰는 게 부담스럽긴 했다"고 말했다. 그러곤 이내 아버지에서 프로팀 감독으로 돌아와 "김지후 선수가 우리 팀에 더 잘 맞을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농구 대통령'의 피를 물려받은 허웅은 초등학교 때 농구를 시작한 둘째 아들 허훈(19·연세대 1학년)과 달리 축구를 더 좋아했다. 부모는 책임감이 강하고 공부도 잘했던 장남이 의사가 되길 바랐다. 허웅은 2004년 허재 감독의 지도자 연수 때 미국에 따라갔다가 농구에 재미를 붙였다. 본격적 선수 생활은 중학교 1학년 때 시작했다. 아들이 농구를 하겠다고 하자 아버지는 반대했다. 선수 생활 내내 자신과 비교당하면서 사는 걸 원치 않았다. 아버지를 닮은 아들은 고집이 셌다. 결국 허 감독은 "선수를 할 거면 최고가 되라"면서 승낙했다.

허 감독의 모교인 용산중과 용산고를 다닌 허웅은 실력에선 아버지를 따라가지 못했다. 출발이 늦은 탓에 중학교 시절엔 주로 벤치를 지켰다. 2010년 17세 이하 대표팀에 발탁될 당시엔 아버지 후광으로 선발됐다는 말까지 돌았다. 주위의 곱지 않은 시선에 허웅은 이를 악물고 남들보다 더 땀을 흘렸다. 허재 감독은 그런 허웅을 도왔다. 시간 날 때면 경기장을 찾아 아들의 플레이를 지켜봤고, 슛 자세와 경기 운영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허웅은 용산고 3학년 때 춘계연맹전 득점왕을 차지했다. 연세대에 입학해선 정상급 선수로 발돋움했다. 빨리 프로에 진출하려고 1년 먼저 드래프트에 나온 그는 4학년 졸업반 선배들을 제치고 전체 5순위로 뽑혔다.

첫 부자 대결은 10월 11일 전주에서 벌어진다. KCC와 동부의 2014~2015시즌 개막전이다. 경기 전망을 묻자 "프로에서 잘 적응했으면 좋겠다"고 덕담을 하던 아버지가 다시 냉정해졌다. "개막 경기에선 대결하기 어려울 것 같은데요. 프로 첫 경기부터 출전 시간을 얻기는 쉽지 않을 것 않아서요." 아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답했다. "금방 적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죠. 출전 기회가 오면 놓치지 않고 살려서 좋은 모습을 보여 드리고 싶어요. 올 시즌 제 목표는 신인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