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명단편 101' 펴낸 황석영… 소설 폄하하는 사회풍토 질타
"근현대 소설, 당대 肖像 그려"

"정치인들이 반대 진영을 욕할 때 '소설 쓰지 말라'고 한다. 우리 사회에선 어느덧 소설이 거짓말의 대명사가 됐다. 소설을 '개떡'같이 여긴다. 누구보다 정치인들이 소설을 많이 읽어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의 눈물을 이해한다. 한국 소설을 사랑해달라."

소설가 황석영(72)씨가 29일 소설을 폄하하는 우리 사회 풍토를 질타했다. 황씨는 지난 90여 년 동안 한국 소설의 대표작을 고르고 해설을 붙인 '황석영의 한국 명단편 101'(전 10권·문학동네)을 펴내면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소설 예찬론을 펼쳤다. "서양에선 소설 읽기가 교양의 척도가 되지만 우리는 '다른 책을 읽느라 소설 읽을 시간이 없다'고들 한다. 그러면서 서양 소설을 높이 평가하고 '한국 소설의 위기'를 거론한다. 한국 근현대 소설은 척박한 환경 속에서 당대 현실을 다양하게 표현해왔다. 소설 읽기는 시대의 초상(肖像)을 확인하는 작업이다."

황씨는 염상섭의 단편 '전화(1925년 발표)부터 2000년대 작가 김애란의 단편 '서른'에 이르기까지 101편을 골랐다. 그는 "근대 문학의 기점은 이광수가 아니라 3·1 운동 이후 염상섭의 소설"이라며 "1920년대부터 식민지 조선에서 근대적 자아가 생기기 시작한 것을 염상섭이 상징적으로 표현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역사적으로 1920년대 이후 만주에서 항일 무장 투쟁이 활발해지고, 식민지 조선에선 노동자와 농민들의 쟁의(爭議)가 늘어난 현실도 근대성의 시작을 알렸다는 것이다.

황씨는 "나는 특히 작고한 선배들의 작품을 다시 읽으면서 자신의 갖가지 영욕을 원고지에 한 자 한 자 적어나가던 그 숨결을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며 "그들은 동구(洞口) 밖의 돌담이나 정자나무처럼 풍상 속에서 무너지고 꺾이기도 하면서 늘 우리 곁에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 작가들의 공통된 운명은 모더니스트로 출발해 모더니즘의 숲을 거치면서 리얼리즘의 광야에 도달했다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한국 현대 문학의 출발점은 4·19 혁명이었다"라며 "4·19 이후 한글세대가 창작의 전면에 나섰고, 외국 문학 번역도 활발해졌다"고 풀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