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두리가 전반에 교체된 뒤 울리 슈틸리케 축구대표팀 감독과 포옹을 하고 있다. /뉴시스

[차두리, 뉴질랜드戰서 국가대표 은퇴식… 3만3000여 팬들 기립 박수]

눈물 쏟은 차미네이터 - "한 것 이상으로 큰 사랑… 행복한 선수로 떠나 감사"
아들 뜨겁게 안아준 아버지 - "축구 선수 차범근보다 두리 아빠 삶이 더 좋았다"

한국과 뉴질랜드의 축구 대표팀 친선 경기가 열린 31일 서울월드컵경기장. 늘 환하게 웃던 차두리(35·서울)가 뜨겁게 울었다. 하프타임에 진행된 대표팀 은퇴식에서 팬들의 응원 영상이 나오자 눈물을 왈칵 쏟았던 그는 꽃다발을 전해주기 위해 그라운드로 나온 아버지 차범근(62) 전 국가대표팀 감독 품에 안겨 한참을 더 울었다.

"저는 분명히 제가 한 것 이상으로 많은 사람에게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잘하진 못했지만 항상 열심히 하려고 애썼습니다. 그걸 여러분이 조금은 알아주신 것 같아서 대표팀 옷을 벗을 수 있었습니다. 행복한 축구 선수로 떠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차두리는 역대 한국 축구의 레전드들만큼 화려한 커리어를 쌓지는 못했다. 뉴질랜드전은 차두리의 76번째 A매치. 2001년 대표팀 데뷔전을 치른 그는 4골 7도움의 기록을 남겼다.

하지만 차두리는 팬들의 뜨거운 성원을 받으며 처음 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지 13년 143일 만에 대표팀 은퇴식을 치렀다. 대표팀 은퇴를 기념하는 날, 차두리는 정장을 입고 나오지 않았다. 대신 주장 완장을 찬 채 그라운드를 내달렸다. 드리블을 하고 크로스를 올릴 때마다 팬들은 뜨거운 함성으로 화답했다.

전반 43분 차두리가 김창수와 교체돼 나오자 서울월드컵경기장에 운집한 3만3000여 관중은 기립 박수를 보냈다. 은퇴 경기를 열어준 울리 슈틸리케 대표팀 감독은 그라운드를 빠져나오는 차두리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차두리의 대표팀 은퇴를 끝으로 한국 축구를 아로새겼던 2002 한·일월드컵 4강 멤버들을 더는 대표팀에서 보기 어렵게 됐다. 관중석에서 차두리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던 변덕규(30·사회복지사)씨는 "그저 운동 잘하는 옆집 형 같고, 소탈하게 웃는 모습이 좋아 차두리를 응원했다"고 말했다.

차두리는 별명도 많았다. 경기 도중 상대 선수가 나가떨어질 정도로 강골이어서 '차미네이터(차두리+터미네이터)'라는 별명을 얻었고, 아버지인 차 전 감독이 '인간 로봇' 차두리를 몰래 리모컨으로 조종한다는 농담까지 나왔다. 차두리는 "따뜻한 부모님 아래에서 큰 사랑을 받으며 자라서인지 성격은 내가 생각해도 밝은 편"이라고 했다.

그러나 선수 생활 내내 자신의 어깨를 짓눌렀던 짐이 있었다. 차두리는 작년 12월 K리그 대상 시상식에서 베스트11에 뽑힌 뒤 "대한민국에서 차범근의 아들로 태어나 축구 선수로 인정받는다는 것은 상당히 힘든 일"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아버지를 쏙 빼닮은 외모에 체격은 더 좋았던 차두리는 독일 무대에서 9시즌(230경기 18골)을 뛰는 동안 아버지(372경기 121골)만큼의 명성을 얻진 못했다.

차두리는 이날 은퇴식에서 아버지와 포옹한 채 운 것에 대해 "큰 짐을 내려놓아 홀가분했지만 결국 큰 산이었던 아버지를 넘지 못하고 이렇게 축구 인생이 끝난다는 생각에 눈물이 났다"며 "하지만 늘 롤모델과 함께 지낼 수 있었던 점은 나에게 큰 행복이고 축복이었다"고 말했다.

차 전 감독은 "'축구 선수' 차범근보다 '두리 아빠' 차범근으로서의 인생이 훨씬 좋았다"고 말했다. 자신의 축구 인생을 스코어로 비유해달라는 질문에 "3대5로 지고 있다가 막판에 골대 두 번(AFC챔피언스리그·아시안컵 준우승)을 때렸다"는 말로 웃어넘긴 차두리는 올해 자신의 소속팀인 FC서울에서 현역 마지막 시즌을 보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