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투병 남편 美 메릴랜드 주지사 대신 1人2役 유미 호건]

"더 큰 일 하라는 시련으로 생각… 긍정적 성격이어서 치료 빠를 것
병상에서도 결재하고 일 보지만 외부 행사는 대부분 내가 챙겨야"

"처음엔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더라. 하지만 '더 큰 일 하라고 시련을 주시는가 보다' 생각했더니 세상이 달라 보였다."

암 판정을 받고 화학 치료에 들어간 '한국 사위' 메릴랜드 주지사 래리 호건의 부인 유미 호건의 표정은 의외로 밝았다. 그는 29일 본지 인터뷰에서 "남편은 잘 이겨내고 있다"며 "병원에서 누가 환자인지 의사인지 모를 정도로 씩씩하게 다른 암 환자들에게 포기하지 말라고 격려하는 모습을 보면서 안심이 된다"고 했다.

호건 주지사는 볼티모어시 메릴랜드대 의과대학병원에 입원 중이다. 비(非)호지킨 림프종 3기라는 진단을 받았는데, 몸의 이상을 느낀 것은 이달 초 한국, 중국, 일본을 방문했을 때였다. 유미 여사는 "마지막 방문지인 일본에서 남편이 아침에 면도하다 목에 골프공만 한 것이 잡힌다고 말하더니 돌아오는 비행기 속에서 내내 몸이 아파 괴로워했다"며 "워낙 건강해 암은 생각도 못했다"고 말했다. 일정을 앞당겨 지난 토요일(27일)부터 항암 치료에 들어갔는데, "나보고 '이 멋진 머리 스타일이 (항암 치료로) 민머리가 되는 게 아쉽다'고 농담할 정도로 씩씩하다"고 말했다. 그는 인터뷰 내내 '포지티브(positive·긍정적)'라는 말을 계속했다.

20대 때 한국인 남편과 미국으로 이민 오고 나서 이혼했던 유미 여사는 혼자서 세 딸을 키우다 2004년 호건 주지사를 만났다. 당시 그는 유명한 부동산업자로, 초혼이었다. 그림을 그리던 유미 여사에게 접근한 호건을 보고 유미 여사는 처음에 "웬 바람둥이"라며 1년간 외면했다. 시간이 지나도 변함없는 구애(求愛)에 마음의 문을 열었다. 요즘은 딸들이 '새아빠'를 더 좋아한다. 암 발견 사실을 알리던 기자회견 때도 세 딸과 손녀가 다 참석했다. 호건 주지사를 만나고 미술 공부를 더 한 유미 여사는 지금 메릴랜드대 미대 초빙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호건 주지사도 지난 선거 때 한인 교포들의 도움에 힘입어 민주당 아성에서 공화당 소속으로 당선되는 기적을 일궈냈다.

일에 대한 열정은 암도 막지 못한다. 유미 여사는 "남편은 주사를 맞다가도 휴대전화를 찾아 주 관계자들과 통화하고, 수시로 병상 결재를 하면서 업무를 거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주지사의 빈자리를 채우느라 오히려 유미 여사가 병원 가까이 가지 못한다. 이날도 메이저리그 볼티모어 오리올스팀의 구장 내 주지사 전용 관람석에서 볼티모어 흑인 폭동 수습에 도움을 줬던 주 정부와 한인 사회 관계자들을 초청해 행사를 가졌다. 특히 이날은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활동하는 추신수 선수가 원정팀으로 출전하는 날이라 의미가 컸다. 그는 "사실은 병원에 가야 하는데, 남편이 없으니 챙길 게 더 많다"며 "경기만 마치면 바로 달려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유미 여사는 지난 한국 방문 때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도 살짝 털어놓았다. 그는 "남편이 말은 않는데, 가는 곳마다 한국말로 '한국 사위'라고 하고, 한국 음식과 문화가 최고라고 했는데, 박 대통령 면담이 성사 안 돼 좀 그런 것 같더라"며 "다음을 기약하며 아쉬움을 달랬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호건 주지사의 한국 사랑이 식은 것은 아니다. 유미 여사는 "일본도 좋았지만, 한국이 가장 푸근하고 최고였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마침 이날 그동안 부진하던 추신수가 홈런까지 치면서 맹활약했다. 유미 여사는 "아까 추 선수를 만나 '교민들이 저기 위에서 응원하고 있다'고 말했는데, 힘을 얻은 것 같다"며 "남편도 걱정해주는 사람이 너무 많고, 응원해주는 분이 많으니 금방 훌훌 털고 일어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