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세 농구 고참, 아직도 팔팔한 주희정이 사는 법]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사나이
은퇴를 해도 벌써 했을 나이지만 "하루 2경기, 오늘도 가능해요… 다리 느려진 대신 머리 빨라져"
후배들이 제일 싫어하는 선배… 밤 10시까지 붙잡고 "슛 100개만"

"후배들이 제일 싫어하는 선배일 겁니다. 최고참 선수가 '나랑 슛 100개만 더 던지고 가자'며 밤 10시까지 후배들을 잡아두니까요."

최근 경기도 용인시 프로농구 삼성 트레이닝센터에서 주희정(38)을 기다리는 사이 구단 관계자가 말했다. 경기가 끝나는 건 직장인이 퇴근하는 것과 비슷한데, 남까지 붙들고 야근을 자청하는 인물이 있다는 얘기다. 구단 관계자와 동료 선수들은 "미련한 게 아니라 지독한 것"이라고 했다.

▲ 경기 용인의 프로농구 삼성 트레이닝센터에서 만난 주희정. 19시즌을 뛰며 어느새 38세 노장이 됐지만“아직도 하루에 농구 2경기 뛸 수 있다”고 장담했다. /김지호 기자

주희정은 프로농구에 남은 마지막 '초창기 세대'다. 그는 프로농구 출범 2년 차인 1997년, 20세의 나이에 고려대를 중퇴하고 프로에 들어왔다. 사람들은 왜 명문대를 포기하느냐고 물었지만 할머니 손에서 어렵게 자란 그는 "집안을 일으켜 세우고 싶다"고 했다. 그가 19시즌을 뛰면서 어느새 38세가 됐다. 그보다 2년 늦게 프로농구에 입단한 조동현(39)은 벌써 KT 감독을 맡고 있다.

농구처럼 격렬하게 뛰는 스포츠에서 은퇴를 해도 벌써 했을 나이다. 하지만 노장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 서울 SK에서2014-2015시즌 경기 평균 11분44초를 뛰었던 그가 올해 삼성에서는 평균 22분49초를 뛴다. 팬들은 물론이고 이상민 삼성 감독조차 "이 정도까지 할 줄은 몰랐다"며 놀라고 있다. 올 시즌 삼성 선수 중 어시스트 1위(경기당 3.36개)인 주희정의 활약에 힘입어 삼성은 13승 12패로 리그 5위를 달리고 있다. 지난 시즌 꼴찌를 했을 때 한 시즌 동안 거둔 11승을 이미 넘었다.

주희정은 "허리가 32사이즈인데, 허벅지가 굵어서 청바지는 38사이즈를 입어야 한다. 하지만 젊었을 때는 40도 넘은 적이 있으니 하체 근육이 많이 줄어든 것"이라고 했다. "훈련량이 적다고 생각되는 날에는 혼자 운동을 해요. 내일 당장 출전할 수 있는 몸 상태를 만들어야 집에 가죠." 그는 19년간 스스로 이 약속을 지켜왔다.

그가 프로농구 나래 블루버드에 입단한 이후 19시즌의 전체 프로농구 경기 수는 961경기였다. 이 중 주희정이 결장한 것은 단 12경기뿐이었다. 출전 비율이 98.8%다. 최명룡 전 나래 블루버드 감독은 "처음엔 운동이 지나치길래 오히려 내가 말릴 지경이었다"고 기억했다.

전성기 때보다 스피드는 줄었다. 하지만 그는 "다리가 느려진 대신 머리가 빨라졌다"고 했다. "20대 때 1초에 1개의 작전을 생각했다면, 지금은 1초에 2~3가지 작전을 머릿속에 그리면서 움직일 수 있어요." 지금도 지고 나면 밥을 먹지 못할 만큼 승부욕이 강하다.

대학을 갓 졸업한 신인 선수들은 14세나 많은 주희정에게 "아재개그(아저씨 유머) 좀 그만 해주세요"라며 놀린다. "후배들이랑 어울리기 위해서 일부러 최신 유머를 공부하는 데도 잘 안 되네요." 주희정은 '삼촌' 같은 선배가 되기 위해 아이돌 가수의 노래를 함께 듣고 후배들에게 최신 트렌드도 묻는다. 그는 "오히려 젊은 선수들의 에너지를 받아 내가 젊어지는 것 같다"고 했다. 30세가 넘은 팀의 송창무(33), 이시준(32)이 '예전 같지 않다'고 툴툴거리면 "지금이 최고 전성기"라고 일침을 가한다.

아내와 네 아이를 둔 주희정은 스스로를 '100점 아빠, 50점 남편'이라고 했다. "늦은 밤 집에 들어가 아이들과 놀다 보니 아내와 단둘이 하는 시간이 줄어 미안하다"고 했다. 그는 "경기장에 들어서면 응원 온 아이들의 목소리가 제일 크게 들린다. 그 목소리를 오래 듣고 싶다"고 했다.

주희정은 최다 출장·최다 어시스트·최다 스틸 등 프로농구의 기록을 지금도 써내려 가고 있다. 올 시즌까지 계약된 그는 "언제든 은퇴할 준비가 돼 있다"면서도 "마지막 불꽃이 활활 타는 모습을 보여주고 코트를 떠나겠다"고 했다. 그러고는 "내년에도 현역이라면 1000경기 출장 기록은 쓰고 싶다"는 말을 보탰다.

인터뷰를 마치며 30세에 했던 "농구에도 더블헤더(하루 2경기를 하는 것)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발언이 아직도 유효하냐고 물었다. "하루 2 경기요? 오늘도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