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돈규 기자의 2사만루] 10초07 한국新 김국영 선수 "10초 벽도 내가 깬다"

육상 단거리 첫 세계선수권 준결 진출
10초 07로 5번째 한국신기록… 7년 투자해 0.24초 기록 단축

중2 때 육상 시작… 19세에 첫 한국新
"많은 연습·고통 견디고 나온 숫자 신기록 세울 때 마다 엄청난 희열"

"1년에 600㎞쯤 뛰어… 경기장 밖에선 걷는 것도 싫어해"

美서 훈련 후 슬럼프
기록 후퇴에 부상까지 이제 끝났구나 생각…
'아직 늦지 않았다' 은사님 충고로 극복

하늘도 도와줘야
뒷바람 강하면 비공인
몸상태·트랙·뒷바람 3박자 맞아야 좋은 기록

30m 경주라면 내가 챔프
신호총에 반응 빨라 출발은 늘 자신 있어
'50m 이후 부터 질주' 자기 암시 주고 있죠

10초 동안 뭘 할 수 있을까. 주차? 키스? 하품? 밥을 한술 떠먹거나 광고 하나를 보기에도 짧은 시간이다.

김국영(26·광주광역시청)은 10초에 인생을 걸었다. 지난 6월에 세운 100m 한국신기록이 10초07. 8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선 우리 육상 단거리 최초로 준결승에 올랐다. 그의 카카오톡 프로필에는 'Breaking 9초99'라고 적혀 있었다. 10초대를 벗어나 9초대에 진입하겠다는 각오다. 결승선에 닿으려면 '무려 0.08초'를 단축해야 한다.

단거리 육상은 시간을 계량하는 단위가 사뭇 다르다. 1초를 100분의 1, 1000분의 1로 쪼갠다. 고(故) 서말구 선수가 1979년 세운 100m 한국 기록(10초34)은 31년간 깨지지 않았다. 2010년에야 김국영이 10초31로 앞당겼다. 국내에서 경쟁자 없는 고독한 질주가 그때부터 시작됐다. 10초23, 10초16, 10초13, 10초07로 그는 기록을 계속 전진시켰다. 7년을 투자해 0.24초 빨라진 셈이다.

약속 시간에 1분이라도 늦으면 큰 결례일 것 같았다. 100m를 여러 번 뛸 시간이 축나니까. KTX 광주송정역에 내려 택시를 잡아탔다. 김국영은 오는 20~26일 충북 충주에서 열리는 전국체전을 앞두고 광주월드컵경기장에서 훈련 중이었다. 하늘은 쾌청했고 그는 구릿빛이었다. 시즌 마지막 경기에 임하는 다짐을 묻자 "날씨가 추워져 기록이 안 나온다는 건 핑계"라며 "9초99를 향해 뛸 것"이라고 했다.

달리기 능력자, 첫 경주에선 꼴찌

경기 안양이 고향인 김국영은 중학교 2학년 때 육상을 시작했다. 부모님은 반대했다. 육상 단거리는 올림픽에서 메달 딸 가능성도 없고, 그제나 이제나 비인기 종목이다. "왜 힘든 길을 택하느냐"며 아버지는 뜯어말렸다. 아들은 막무가내로 버텼다.

―왜 고집을 부렸나요.

"활달했고 움직이는 걸 좋아했어요. 차분히 앉아 공부할 성격이 아니었죠. 중학교 올라간 뒤 학원 거쳐 집에 돌아오면 밤 11시였어요. 도저히 못 하겠더라고요. 부모님은 '육상을 하느니 차라리 (다섯 살 때부터 배운) 태권도를 해라' 하셨죠."

―그 중재안마저 걷어찼군요.

"맞는 게 싫어 육상으로 갔어요(웃음). 태권도 시합 땐 한 대 맞아도 두 대 때리면 되는데, 안보이는 데서 선배들이 체벌하는 게 싫었죠."

―뜀박질엔 자신이 있었나요?

"어릴 적부터 달리기는 언제나 1등이었어요. 제가 놀리고 도망치면 아무도 못 잡았죠."

―육상부 있는 중학교로 전학 가니 좋던가요?

"웬걸요. 동계훈련을 시작했는데 한 시간 동안 쉬지 않고 뛰어서 관악산에 올라야 했어요. 100m 달리기를 20개, 30개 거푸 시켜서 돌아버리는 줄 알았죠. 그래도 곧 적응이 되더라고요."

―중2 때 기록은 어땠나요.

"첫 경기 나갔는데 11초8, 그러니까 2학년 중 꼴찌에 가까웠어요. 충격이 컸죠. 코치님들은 '첫 경기치곤 잘 뛰었다' 하셨지만 귀에 들어오질 않았지요."

―고2 때 국가대표 유망주가 됐지요.

"중3 때 전관왕을 했어요. 10초9까지 당겼죠. 그러자 등수는 재미가 없어졌어요. 대신 기록에 대한 목표가 생겼습니다. 11초대에서 10초대로 건너오는 데 1년 걸렸으니 10초34라는 한국 기록을 조만간 깰 주인공은 나야 나, 생각했어요(웃음). 순진했죠."

―한번 해보자는 패기가 넘쳤군요.

"고2 때 10초5를 뛰었는데 더는 단축이 안 됐어요. 당시 100m 양대 산맥이던 임희남·전덕형 형들도 10초4대에 갇혀 있었습니다. 10초3대 들어가기가 이토록 어려운 거구나 절감했죠."

김국영은 한동안 기록이 나아지지 않자 '이게 한계인가' 의심했다고 한다. 더 노력하며 이를 갈았다. 고3 첫 시합에서 처음으로 10초4대에 진입했다. 이듬해인 2010년 그는 마침내 서말구의 기록을 31년 만에 넘어섰다. 포상금 1억원을 받았다. 열아홉 살 때였다.

슬럼프를 이기게 해준 말 "아직 늦지 않았다"

달리기는 힘과 스피드의 단순한 조합이다. 인류에게 가장 오래된 경쟁 방식 중 하나로 꼽힌다. 올림픽에 최다 메달이 걸린 육상에서 인기 으뜸인 종목이 바로 100m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사람'이란 칭호가 붙는다. 최근 은퇴한 우사인 볼트(세계기록 9초58 보유)가 제한속도 시속 30㎞인 주택가에서 100m 경주를 한다면 속도 위반 딱지를 떼일 것이다.

―두 다리로 평지 위를 달리는 이 종목의 매력이 뭔가요.

"그동안 한국신기록을 5번 세웠어요. 깰 때마다 희열이 엄청나요. 많은 연습량과 긴 고통을 견디고 나온 숫자잖아요. 하늘도 도와야 하고요."

―하늘이요?

"제 몸 상태나 트랙이 아무리 좋아도 뒷바람이 너무 세게 불면 안 돼요. 뒷바람이 초속 2m 이상이면 비공인으로 남습니다. 삼박자가 맞아떨어져야 해요. 바람을 적당히 등지고 달려야 좋은 기록이 나와요."

―절박하면 기록 세우는 꿈도 종종 꿀 것 같은데요.

"(단호하게) 무슨 소용인가요. 연습에 집중해야죠. 출발선에 서면 목표는 늘 9초대예요. 끊임없이 이미지 트레이닝을 합니다. 육상이 참 어려운 게, 준비 잘했는데 기록이 안 좋을 때가 있고 게을리했는데 잘 나올 때가 있어요. 당일 몸 상태와 경기장 분위기, 바람 같은 변수가 많아요."

―1년에 얼마나 달리는 것 같나요.

"서울~광주를 왕복할 정도는 되겠죠. 600㎞쯤요. 훈련하고 나면 매일 체중이 1㎏ 빠져요."

―2010년에 신기록을 두 번 세우고 긴 슬럼프가 닥쳤지요.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니 더 잘하고 싶은 욕심이 났어요. 육상연맹 지원을 받아 미국 플로리다로 전지훈련을 갔죠. 기록이 월등한 미국 선수들을 무작정 따라 했어요. 신체 조건도 다른데 무모하게 모방한 겁니다. 돌아왔더니 기록이 오히려 곤두박질쳤어요."

―욕도 먹었겠군요.

"겉멋만 들어서 왔다는 비난이 쏟아졌죠. 상처 많이 받았어요. '넌 100m는 가망 없으니 그만두고 400m 계주에 집중하라'고들 했습니다. 기분이 상했지요. 자포자기 상태에 빠졌고 훈련도 설렁설렁했습니다. 2011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는 부정 출발로 실격됐어요. 이듬해엔 계주 뛰다가 부상을 당했고요."

―화(禍)는 쌍으로 온다죠.

"그땐 '될 대로 돼라'는 심정이었어요. 대표팀에서 빠졌고 재활하며 100m에 집중했는데 컨디션이 회복되질 않았어요. 잘해야 10초6, 고1 때 기록으로 퇴보한 겁니다. '어떡하지, 이제 끝났구나' 생각했어요. 트랙 쳐다보기도 싫고 육상을 때려치우고 싶었죠."

―그 늪에서 어떻게 탈출했나요.

"2013년에 고교 은사님을 우연히 만났어요. 예전 기량이 안 나온다고 하소연을 했더니 이런 말씀을 들려주셨어요. '까먹은 시간이 2년이다. 앞으로 2년 더 노력해라. 그래도 안 되면 그때 이러쿵저러쿵 지껄여라. 아직 늦지 않았다.' 2015년에 신기록 세우고 인사드렸더니 자랑스러워하셨죠."

"트랙 밖에서는 느긋해"

단거리 육상 선수는 시간관념이 투철할 것 같았다. '친구가 약속 장소에 1분이라도 늦게 나타나면 화를 내느냐'고 물었다. 김국영은 "전혀요. 그럼 고지식한 놈이죠"라며 껄껄 웃었다. "10분 늦어도 욕 안 해요. '상대방은 얼마나 다급하겠어' 생각하며 기다립니다. 제가 늦을 것 같을 때만 좀 서둘러요."

―트랙 밖에서는 느긋한 편이군요.

"운동할 때 빼곤 시간에 쫓기는 걸 엄청 싫어해요(웃음). 나가서까지 그러면 도대체 언제 여유를 갖겠어요. 경기장 밖에선 뛰기는커녕 걷기도 싫어합니다. 짓궂은 고향 친구들이 가끔 '핸디캡 20m 잡아주고 100m 경주하자'고 덤비는데 죽어도 안 해요. 100만원쯤 걸려 있다면 모를까."

―출발 직후 기록에 대한 예감이 오나요?

"예감하면 안 돼요. 기록이 나빠집니다. 무념무상으로 '내 몸은 오토(auto)다'라고 여기고 달리는 데만 집중해야죠."

―올해 성적이 나아진 비결이 있는지요.

"부상도 없었고 준비 과정이 좋았어요. 코치님이 그러셨어요. '노력하는 선수가 많고 그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는 선수도 많은데, 넌 애쓴 만큼 성적을 내고 보상을 받으니 복이 많다.'"

―6월에 신기록을 두 번 세운 과정 좀 들려주세요.

"KBS배는 워밍업으로 예선만 참가하고 이틀 뒤 코리아오픈에 몸을 맞추려고 했어요. 그런데 KBS배 예선에서 10초13을 뛴 겁니다. 감독님(심재용)이 '야, 결승 무조건 뛰는 거야' 하셨죠. 회복 시간이 필요해 코리아오픈을 망칠 수 있지만, 저희 감독님이 무서운 분이에요. 가라면 가야죠. 결승에서 10초07이 나왔는데 뒷바람이 초속 3.6m라서 공인을 못 받았어요. 하늘을 원망했죠. 이튿날은 에너지 보충하느라 먹고 싶은 거 다 때려먹었습니다. 그리고 출전한 코리아오픈 예선에서 스타팅 블록이 살짝 밀리며 출발이 안 좋았는데 10초22가 나왔어요. 결승에선 '시원하게 달려 0.1초만 줄이자' 마음먹었습니다. 10초07. 전광판 보고 소름 돋았어요!"

―8월 세계육상선수권에선 출발 반응 속도(0.107초)가 전체 1위였습니다.

"출발은 늘 자신 있어요. 60m까지는 제대로 사고를 친 거죠. 함께 뛴 저스틴 게이틀린(미국·올해 챔피언)보다 앞에서 달리니 욕심이 났어요. 힘이 들어가면서 페이스를 잃고 후반에 잡히고 말았습니다. 예선 통과라는 목표는 이뤘는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았는지 이튿날 허리 통증이 왔어요. 준결승은 실망스럽게도 꼴찌였지요."

―국내 1인자가 세계대회에서 다른 선수들 등짝 보고 달리는 기분은 어떤가요.

"기분 더럽죠. 하하하. 100m는 더 그래요."

―전력 질주할 때 옆 선수들을 보나요?

"저절로 다 보여요. 우사인 볼트가 뛰는 영상을 슬로비디오로 보면 곁눈질을 하고 있어요. 0.01초 차이로 졌다는 걸 선수는 육감으로 압니다. 전광판 볼 필요도 없어요."

듣기 질색인 단어는 '한계'

김국영은 "이번 세계선수권은 중국·일본에 져 더 아쉽다"고 했다. 내년 아시안게임에서 겨룰 선수들이기 때문이다. 그는 "귀국 비행기에서 내가 허리가 아팠던 게 정말 체력 문제였는지 곰곰이 생각해봤다"며 "전국체전에서는 100m, 200m와 계주 두 종목을 뛰는데 다 끝나고도 더 달릴 수 있을 만큼 체력을 만들 것"이라고 했다.

―왜 하필 100m를 택했나, 후회도 가끔 하나요.

"사람이 불만과 욕심을 가지다 보면 한도 끝도 없는 것 같아요. 달리 보면 육상 47개 종목 중에 100m만큼 주목받는 종목도 없어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100m를 선택했으니 운 좋은 일이라고."

―중국 쑤빙텐(9초99)에 이어 며칠 전에 일본 기류 요시히데도 9초98로 마침내 10초 벽을 깼습니다.

"뒷바람이 초속 1.8m 불어줬지요. 저도 언제 깰지 모릅니다. 준비하는 과정은 늘 100%이고 트랙에 전부를 쏟아붓지요. 이번 전국체전에서 9초대가 못 나오리라는 법도 없어요. 최적의 몸을 만들고 하늘에 맡겨야죠."

―일본에서 10초 벽 깬 이야기를 들었을 때 기분이 어땠나요.

"카톡이 거의 동시에 두 개 들어왔어요. 코치님과 육상연맹 기술위원장님이 그날 열린 일본 대학 결승전 유튜브 영상을 보내신 겁니다. 9초98을 확인하는 순간 느낌이 싸하더라고요. 일본이 20년 동안 10초 벽을 못 깨서 엄청 고생했고 9초대 기록에 10억원을 걸었거든요."

―우리는 9초대 들어가면 얼마 받나요?

"3억원이요.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고 내가 일본 선수보다 먼저 깨서 약 오르게 해야지, 작정했는데 이렇게 돼 좀 허탈해요. 그래도 충분히 실력 있는 선수니까 축하해줄 일이죠. 저도 자극을 받아 더 노력해야 하고요."

―훈련 파트너가 없으니 고독과의 싸움이겠지요.

"100m가 육상의 꽃이라 연맹이 관심을 갖고 제 얘길 들어주는 편이에요. 외롭기보단 도움을 많이 받죠. 기록을 빨리 올려야겠다는 생각이 먼저인 것 같아요. 운도 좋고 복도 많으니 기대에 부응해야죠."

―경기 직전 이어폰을 꽂고 있던데 어떤 음악을 듣나요.

"그날그날 달라요. 기분을 띄워야 할 땐 싸이의 '뉴 페이스'처럼 빠르고 신나는 음악을 듣죠. 너무 들떠 있다 싶을 땐 잔잔한 음악으로 눌러줍니다."

―100m는 신호총에 반응하기, 박차고 나가기, 최고 속력에 도달하기, 결승점까지 필사적으로 버티기 등 4단계로 이뤄져 있는데 후반부가 약점인가요?

"30m 달리기 종목이 있다면 제가 세계 챔피언일 거예요(웃음). 이번에 기류 선수가 뛴 영상을 수백 번 돌려봤어요. 후반 30m에서 1등을 추월하고 가속이 붙더라고요. 저도 요즘엔 '내 질주는 50m 이후부터'라는 자기 암시를 주고 있어요."

―올 들어 보폭을 키우고 있다고요?

"현재 100m를 49~50걸음에 완주하는데 앞으론 스피드는 유지하면서 47걸음(볼트는 41걸음)까지 줄일 계획이에요. 그럼 아무래도 더 빨라지겠죠. 10년간 몸에 밴 주법을 바꾸는 게 무섭고 힘들어요. 10초07 기록 세울 때 후반 30m에서 상체가 엄청 흔들렸습니다. 그 문제를 좀 잡아주면 성적이 나아질 거라고 생각해요."

―지금이 전성기겠죠?

"내년 시즌 끝나면 군대에 가요. 서른두 살까지는 기록에 계속 도전할 겁니다. 100m 선수가 참 불안해요. 스타트만 살짝 삐끗해도 끝나버리거든요. 저도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나중에 은퇴하면 후배들에게 그렇게 심리적인 부분까지 보살펴주고 싶어요."

김국영이 빨라지면 대한민국이 빨라진다. 그는 "다 같이 도전한다 생각하고 응원해주시면 기록으로 보답하겠다"고 말했다. 가장 듣기 싫은 단어는 '한계'라고 했다. 인터뷰 마치고 심재용 감독에게 '예능 프로그램에서 섭외 안 들어오느냐' 물었더니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런 답이 날아왔다. "10초부터 깨야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