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 철책선에… 김소월 詩로 '평화'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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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11.14 01:48

[파주에 온 문자예술가 엘시드]

분쟁과 가난 겪는 지역 찾아가 아랍문자로 희망의 벽화 그려
"'못 잊어' 詩에 통일 소망 담겨… 다음 작품은 북한서 하고 싶어"

지난 7일 경기도 파주 DMZ(비무장지대) 군사 철책선에 황금빛 알루미늄 설치물이 걸렸다. 꽃 그림처럼 보이는 폭 34m의 이 작품은 튀니지계 프랑스 작가 엘시드(36)가 아랍어로 쓴 김소월의 시(詩) '못 잊어'다. 소월의 시는 다시 아이들이 그려서 이어붙인 통일 그림 70m와 연결돼 총 100m 폭의 대작(大作)이 됐다.

경기관광공사와 경기도미술관이 임진강변에서 진행하는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일환. 엘시드와 함께 남과 북을 잇는다는 뜻의 'The Bridge'란 제목의 작품을 만들어 DMZ에 건 아이들은 CJ도너스캠프 인성학교에 다니는 10대들이다. "반창고와 마데카솔로 작품을 만든 아이들도 있죠. 반창고로 분단된 땅을 잇고, 상처에 새 살이 돋게 해달라는 소원을 담아서. 통일에 대한 아이들 열망이 어른들 못지않더군요."

지난 7일 경기도 파주 DMZ에서 통일을 소원하는 작품 ‘더 브리지’를 제작해 철책에 건 캘리그래퍼 엘시드와 인성학교 아이들. /CJ도너스캠프

엘시드는 문자예술 '캘리그래피'와 벽화예술 '그라피티'를 결합해 세계 곳곳을 다니며 공공미술을 펼치는 작가다. 2010년 민주화 혁명(재스민 혁명)이 한창이던 모국(母國) 튀니지의 이슬람 사원 첨탑에 관용과 화합을 뜻하는 코란 구절을 대형 캘리그래피로 선보여 세계의 이목을 끈 그는 인도, 브라질, 이집트,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크고 작은 분쟁과 가난으로 고통받는 지역을 찾아다니며 희망의 벽화를 그리고 있다.

이집트 카이로 인근의 '쓰레기 수거 동네'에서 펼친 프로젝트는 그가 테드(TED)의 스타 강연자로, 루이뷔통과 협업하는 인기 작가로 떠오른 발판이 됐다. "카이로 시민들이 버린 쓰레기를 처리하는 가난한 마을이었죠. 쓰레기로 골목은 발 디딜 틈 없고, 음식 썩는 악취, 분쇄기 소음 진동하는 곳에서 1년 넘게 작업하면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카이로 시민들은 그들을 '쓰레기의 사람들'이란 뜻의 '자블린'이라고 부르며 멸시했지만, 이들은 어린 자녀들에게 '나보다 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낯선 이들이 베푸는 선의를 정중히 사양하라'고 가르치는 아름다운 공동체였습니다."

'누구든 햇빛을 또렷이 보려면 그의 눈을 먼저 닦아야 한다'는 작품 철학은 이집트 프로젝트를 하면서 얻었다. "그 사람을 진심으로 알고 싶다면 자기 안의 편견부터 깨끗이 걷어내야 하지요." 예술의 목적은 단순한 미화(美化)가 아니라 사람들의 의식을 바꾸고 서로 대화를 시작하게 하는 것이란 신념도 이때 굳어졌다.

모든 작품을 아랍어로 하는 이유도 편견을 깨기 위해서다. "조형적으로도 아름답지만 아랍 문자엔 영혼이 담겨 있습니다. 그 뜻은 몰라도 보는 순간 가슴을 울린다고 할까요. 아랍에 대한 편견도 깨뜨리고 싶었습니다. '살람(Salam)'이라는 인사말처럼 아랍은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입니다."

파리에서 태어나 뉴욕, 몬트리올을 거쳐 두바이에서 살고 있는 엘시드는 팔레스타인 출신 아내 사이에 마야, 함사 남매를 두었다. "아이들에게 너 자신을 먼저 존중하라고 가르칩니다. 그래야 다른 사람의 존중을 받을 수 있지요." DMZ 철책선에 김소월의 시를 새긴 건 "인터넷을 3개월간 누비면서 발견한 '못 잊어'라는 사랑 시를 오랜 세월 헤어진 남북이 다시 만나기를 소망하는 뜻으로 읽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음 작품은 북한에서 하고 싶다는 엘시드는 두바이를 방문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자신의 작업실에 오기로 돼 있다며 서울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