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 연꽃이 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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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12.08 01:03

'그래도, 가끔' 펴낸 법현 스님

12년간 재래시장 2층서 포교
"부처님 가르침 전할 수 있다면 시장·학교 어디라도 갑니다"

"어느 골에나 어둠은 흘러 밤을 적시지만/저잣거리 대명사 역촌중앙시장의 밤은 적시지 못한다."('역촌중앙시장의 밤' 중)

서울 은평구 역촌중앙시장 2층엔‘열린선원’이 있다. 법현 스님은“시장이든 SNS든 부처님 가르침을 듣고 싶어하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달려간다”고 했다. /김한수 기자
서울 은평구의 역촌중앙시장. 1층엔 방앗간, 속옷집, 건어물상 등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전형적인 이 재래시장 2층에 태고종 열린선원이 있다. 일종의 '개척 사찰'. 같은 층엔 교회도 2곳이 함께 있다. 2005년 법현(59) 스님이 이곳에 선원을 열었을 때 '저잣거리 한복판으로 들어갔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하는 걱정도 있었다. 그러나 법현 스님은 만 12년 동안 이곳을 터전으로 꿋꿋이 전법(傳法)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는 최근 자신의 SNS에 올렸던 글 108편을 모아 책 '그래도, 가끔'(Book樂출판사)을 펴냈다. '역촌중앙시장의 밤'도 그중 한 편이다.

저잣거리로 나선 데서 보듯 법현 스님은 부처님 가르침을 전할 수 있다면 시간·장소 가리지 않고 달려간다. 6일 시장에서 만난 스님은 "아반떼를 11년간 33만㎞ 타고 폐차시켰다"며 웃었다. 종교 사이 울타리도 넘는다. 지난해엔 성공회대에서 두 학기 동안 교양 과목을 강의했고, 지난가을 감리교신학대에서 열린 '작은 교회 박람회' 개막식 축사도 했다. 매년 12월엔 시장 앞에 '성탄절 축하' 현수막을 걸고 목사, 신부를 초청해 법회를 연다.

이번 일요일(10일)엔 저서 출판기념회를 겸해 성탄절 축하 행사를 갖는데 이정배 전 감신대 교수를 초빙해 강의를 듣는다. 지난 6월부터는 일본 나가노의 재일교포 사찰 금강사 주지도 겸해 매월 마지막 주말엔 일본으로 날아간다.

법현 스님이 불교와 인연을 맺은 것은 고등학생 시절이었다. 우연히 길에 붙은 포스터를 보고 평택 명법사에서 열린 학생 대상 '성도절 철야 정진'에 참석한 것이 첫 인연. 참선하며 맞은 새벽의 느낌이 너무도 좋아서 대학(중앙대 기계공학과) 땐 평택 집에서 서울을 오가는 통학길에 기차, 버스, 전철에서 자발적으로 전단을 나눠주며 포교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대학 졸업 무렵 출가를 고민했지만 가난한 집 장남으로 부모님 봉양이 마음에 걸렸다. 그때 누군가 태고종을 알려줬다. 결혼도 하고 부모님도 모실 수 있다는 것을 알고 태고종으로 출가해 1985년 계를 받고 스님이 됐다. 종단의 주요 직책도 여럿 거친 끝에 시장 골목으로 들어왔다.

시장 건물 저잣거리 포교는 어렵다. 12년 만에 신도는 300가구 정도로 늘었지만 여전히 월세 120만원을 비롯해 경상비 마련은 빠듯한 형편.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냉난방 시설을 못 갖춰 '열대야 3개월, 시베리아 3개월'을 견뎌야 했다. 그래도 스님은 매 학기 중앙대, 중앙승가대, 동방불교대학원대에 100만원씩 장학금을 보낸다.

그러면서 차례(茶禮)에 술 대신 차(茶)를 쓰는 방법, 불교 의식(儀式)의 한글화에도 적극 앞장서고 있다. 법당 벽엔 'U턴 금지' 표지판을 패러디한 김영수 작가의 '윤회 금지'라는 작품도 걸려 있다. 금생(今生)에 열심히 정진해 깨달음을 얻어 윤회의 사슬에서 벗어나자는 뜻을 쉽게 표현했다. 이 모두 대중에게 한 걸음 다가가기 위한 노력이다. 법현 스님은 "저는 부처님 가르침이 너무도 좋기 때문에 설법하다 쓰러질 수도 있다. 그 가르침을 가능하면 많은 분께 전하고 싶어서 SNS, 출판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다"고 했다.

사진 촬영을 위해 시장 건물을 나서자 과일 가게 주인이 스님에게 합장 인사 한다. 스님은 "10년 동안 열린선원 활동을 쭉 지켜보다가 올해 온 가족이 계(戒)를 받고 불자(佛子)가 된 분"이라며 "평소 손님과 주민들에게 친절한 분이어서 말보다 몸으로 자비를 실천한다는 뜻에서 '무설(無說)'이란 법명을 드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