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취] YS·DJ와 민주화운동 이끈 정치권 '마당발'

  • 기사
  • 잇글링
  • 트위터로 보내기
  • MSN 메신저 보내기
  • 뉴스알림신청
  • 네이트 뉴스알리미
  • 뉴스젯
  • RSS
  • 프린트하기
  • 이메일보내기
  • 스크랩하기
  • 블로그담기
  • 기사목록
  • 글자 작게 하기
  • 글자 크게 하기

입력 : 2018.04.19 02:08

[김상현 더불어민주당 고문 별세]

민주당 최고위원 지낸 6선 의원… DJ '형님'이라 부를 만큼 가까워
"순발력·친화력 타의 추종 불허"

6선 국회의원을 지낸 후농(後農) 김상현(83·사진)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이 18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김 고문은 김영삼(YS)·김대중(DJ) 전 대통령과 함께 1970~80년대 민주화운동을 이끌었다. 정치권에서 '마당발'로 통했다.

1935년 전라남도 장성에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를 여의고, 6·25전쟁 중 어머니까지 잃었다. 피란 중 신문 배달과 구두닦이를 하며 야간 고등학교에 들어갔지만 끝내 마치지 못했다. 전쟁 후 상경한 그는 1965년 민중당 소속으로 서울 서대문구에서 처음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이후 6선(6·7·8·14·15·16) 의원을 하며 김대중 대통령후보 비서실장, 민주화추진협의회 공동의장 권한대행, 통일민주당 부총재, 민주당 최고위원 등을 지냈다.

민주당 관계자는 "김 고문의 50년 정치 인생은 DJ와 애증을 함께한 세월"이라고 했다. 김 고문은 DJ 생전에 그를 '형님'이라고 부르고 맞담배를 한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그는 1956년 동양웅변전문학원 학생 시절 목포에서 낙선하고 부원장으로 온 DJ를 처음 만났다. DJ가 김 고문보다 열한 살 많았다. 김 고문은 "평생 DJ만큼 똑똑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정치권에 들어온 김 고문은 타협과 절충에 능한 '만능 해결사'로 이름을 날렸다. 권노갑 전 의원은 회고록에서 "김상현의 타고난 재주와 순발력, 그리고 친화력과 포용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고 썼다. 김 고문은 1971년 7대 대선 때 망설이던 DJ를 "지금이 출마할 때"라고 설득해 대통령 후보로 만들었다. 그러나 이후 박정희 정권에서 유신 반대운동으로 2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2년 3개월 등 4년 넘게 옥고를 치렀다.

1995년 김대중(왼쪽) 당시 국민회의 총재와 김상현(오른쪽) 지도위 의장이 회의 도중 박지원 대변인으로부터 보고를 받고 있다. /이덕훈 기자

1987년 대선에서는 DJ가 대통령 출마를 위해 통일민주당을 나가 평화민주당을 만들자 "분열의 편에 서지 않겠다"며 DJ를 따르지 않고 남아 YS를 지원했다. 하지만 1990년 YS가 '3당 합당'을 추진하자 이번에는 '야합'이라며 불참했다.

김 상임고문은 재치 있는 언변으로도 유명했다. 국회의원이 되자마자 '대일 청구권 자금 동의안'을 거부하며 4시간 30분 동안 필리버스터(의사진행 방해연설)를 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3선 개헌안이 날치기 통과됐을 때 "나 김상현이다. 이 강도들아"라고 외친 일화도 유명하다. 2000년 공천에서 탈락했을 때는 "내가 물구나무서서라도 국회로 돌아간다"고 했고, 결국 돌아왔다.

김 상임고문의 아들은 더불어민주당 김영호 의원이다. 김 의원은 아버지가 처음 국회의원이 됐던 서대문에서 2번 낙선하고 지난 20대 총선에서 당선됐다. 김 의원은 "아버지는 늘 '정치인은 약속을 지켜야 한다. 지키기 어려울 때 지켜야 진짜 약속'이라고 하셨다"고 말했다. 유족은 아내 정희원씨, 아들 윤호(우림FMG 대표이사)·준호(우림FMG 전무)·영호(국회의원)씨와 딸 현주씨가 있다. 빈소 신촌세브란스병원. 발인 21일. (02)2227-75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