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협금융지주 차기 회장으로 내정된 김광수 전 금융정보분석원(FIU) 원장. /조선일보 DB

김광수 차기 회장으로 내정

'비운의 황태자' 김광수(61) 전 금융정보분석원(FIU) 원장이 NH농협금융지주 차기 회장으로 사실상 내정됐다.

19일 NH농협금융지주는 "임원후보추천위원회를 열고 김광수 전 원장을 금융지주 대표이사 회장 최종 후보로 추천했다"며 "김 전 원장은 금융전문가로서 금융 전반에 대해 깊이 있는 통찰력을 갖춘 데다가, 지장과 덕장을 겸비한 소통형 리더로 친화력과 인적네트워크가 탁월해 적임이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당초 농협금융지주 회장 최종 후보 3인으로 이름을 올렸던 윤용로 전 외환은행장과 김용환 현 농협금융지주 회장은 임원후보추천위원회를 앞두고 자진 사퇴했다. 김 전 원장은 앞으로 이사회 결의를 거쳐 주주총회에서 차기 회장으로 선임된다. 임기는 29일부터 2년간이다.

김 전 원장에게는 많은 수식어가 붙는다. 광주일고,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그는 행시 27회로 관료 생활을 시작한 이후 '모피아의 마지막 적자(嫡子)' '호남 대표 관료'로 꼽혀 왔다. 모피아는 옛 재무부의 영문 약자 MOF(모프)와 마피아의 합성어다. 보통 금융정책과장 자리를 꿰찬 재무관료를 모피아의 적자로 친다.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과 임종용 전 금융위원장, 신제윤 전 금융위원장이 대표적이다. 김 전 원장은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국제조세과장, 금융정책과장, 공적자금관리위원회 사무국장을 지냈다.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 그의 재능을 높이 평가해 발탁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금융서비스국장을 맡아 합리적인 일 처리로 '시장을 잘 아는 정통 재무관료'라는 평을 들었다. 모피아가 대체로 관치(官治)에 익숙하지만, 그는 원만한 성격으로 관치와 멀다는 얘기를 받는다. 또한 지역과 출신을 불문하고 선후배의 신임도 두텁다.

2011년 3월 금융정보분석원 원장에 취임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비운이 시작됐다. 금융서비스국장이던 2008년 "대전저축은행 인수를 도와달라"는 부탁과 함께 부산저축은행 김양 부회장으로부터 2000만원을 받고, 2006~2011년 2000만원을 더 받은 혐의로 그해 6월 구속·기소됐다.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아 파면됐다.

그러나 2013년 10월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받아 혐의를 벗고, 다음 달 복직했다. 그러나 명예는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 시절, 금융당국 안팎에서 억울한 옥살이에 대한 동정론이 확산되면서 기업은행장 유력 후보로 부상했지만 "모피아가 금융 공기업 인사를 독식한다"는 논란에 발목을 잡혔다. 이후에도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과 우병우 당시 민정수석을 비롯한 청와대가 김 전 원장의 등용을 극력 반대하면서 보직 없이 지냈다. 결국 공무원 옷을 벗고 2014년부터 법무법인 율촌에 고문으로 합류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김 전 원장은 금융 관련 주요 자리가 빌 때마다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다. 특히 그를 각별히 아끼는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이 "아까운 인재"라며 구명 활동에 적극 나섰다. 김 전 위원장은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 경기고 동문이다. 금융위원장, 한국거래소 이사장, 금융감독원장 등 요직의 단골 후보로 등장했지만 번번이 고배(苦杯)를 마셨다. '장하성 인맥'으로 분류된다는 점이 양날의 검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김 전 원장이 제대로 평가를 받고 금융계에 화려하게 복귀한 것으로 관가에서는 평가하고 있다.

한편 평소 연임의 뜻을 밝혀 온 김용환 회장이 이날 돌연 후보군에서 사퇴하자 '외압이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다. 김 회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회장 재직 3년간 농협금융지주 실적이 크게 좋아졌다. 실적이 좋고, 좋은 후배가 왔을 때 떠나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