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 전설' 김주성 은퇴… "블록 슛 1위 기록, 가장 애착"

"패배가 아쉽지는 않네요? 우리가 SK보다 못했으니 진 거 아닌가요?"

한국프로농구의 '레전드' 김주성(39)은 담담했다. 그의 소속팀 원주DB가 챔피언전에서 준우승에 머무른 다음 날인 19일. 김주성은 숙소 짐을 싸 서울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고한 김주성이 운동화 끈을 조여 매고 후배들과 코트에서 땀 흘린 일은 이제 '과거'가 됐다.

김주성은 "그동안 먼 길을 열심히 달려왔다고 생각해 후회는 없다. 다음 주까지는 구단 행사들이 좀 남아있어 아직 그만둔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고 했다.

김주성의 한국 나이는 마흔이다. 2002년 처음 프로 무대에 데뷔해 올해까지 17년 동안 코트에 섰다. SK와의 챔피언결정전 6차전이 그의 프로 845번째 경기였다.

챔피언전에 앞서 원주에서 만난 김주성은 "지난해 말 은퇴를 공개 선언한 뒤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진짜 은퇴할 생각이세요?'라는 말이었다"고 했다.

"제 키(205㎝) 때문에 멀리서도 알아본 원주 시민들이 먼저 다가와서 물어봐요. 왜 은퇴하냐고, 아직 더 뛸 수 있지 않냐고…. 그런데 이젠 한 경기만 뛰어도 몸이 쑤셔요. 팔팔했던 '20대 김주성'을 떠올리는 팬들의 추억을 지켜주기 위해서라도 미련 없이 은퇴해야죠."

김주성은 2002년 국내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삼보(현 DB)에 지명됐다. 이후 지금까지 최고 스타로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위력적인 골 밑 플레이, 적중률 높은 중거리 슛까지 갖춰 서장훈(은퇴) 이후 최고의 '빅 맨'으로 꼽혔다.

그는 선수 생활 16시즌을 오로지 한 팀에서 뛰면서 정규리그 우승 5회, 챔피언결정전 우승 3회를 경험했다. 최다 출장 2위(742경기)·최다 득점 2위(1만288득점)·최다 리바운드 2위(4425개) 등 기록도 화려하다. 마지막 코트에 서는 순간까지 숫자 하나에 더 욕심낼 만도 했지만, 김주성은 은퇴 공언 이후 코트에서 조연 역할을 자처했다. 2017~2018시즌엔 주로 3, 4쿼터에 교체 투입되는 '식스맨' 역할을 맡았다. 그는 챔피언결정전 후에도 "난 코트를 떠날 선수다. 나보다 후배들이 훨씬 잘했다"며 인터뷰를 여러 번 양보했다.

역대 국가대표팀 감독들은 "대표팀에 들어오는 선수들이 몸이 안 돼 체력 훈련부터 시작하는데, 김주성은 대표팀 합류할 때면 이미 개인 훈련으로 몸을 만들어 와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던 선수"라고 입을 모은다. 그만큼 성실한 생활 태도로 선후배로부터 '모범 선수'로 꼽혔다.

"제가 외국인 장신 센터들과 키는 엇비슷해도 체격은 완전 밀리거든요,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별명이 '왕멸치'였어요. 골 밑에서 밀리지 않으려면 남들보다 1분이라도 더 리바운드 연습, 골 밑 슛 연습을 반복하는 수밖에 없었어요."

김주성은 이런 타고난 성실함으로 한국 남자농구 선수로는 유일하게 2개의 아시안게임(2002년 부산, 2014년 인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김주성은 자신의 농구 인생에 가장 도움을 준 사람으로 허재(53) 현 농구대표팀 감독을 꼽았다. 2002년 플레잉 코치였던 허재는 중앙대 후배이기도 한 김주성이 삼보에 지명됐을 당시 기쁜 나머지 만세를 부르기도 했다.

"돌이켜 보면 제가 키랑 인복이 타고났던 것 같아요. 데뷔 때부터 허재 선배로부터 '너 자만하는 순간 끝나는 거야"라는 말을 귀 따갑게 들었어요. 제 주량이 소주 3병일 정도로 술은 좀 하는데, 허재 선배 앞에선 엄두도 못 내요. 같이 야식하는 자리가 있으면 늘 '술은 입에도 대지 말고 야식만 먹고 가라'고 해요. 그러면서 자기는 마시는 거 알아요? 하하. 또 그런 자리에서도 '슛 폼 이렇게 고쳐봐라' '리바운드 땐 위치에 신경 써라'며 얼마나 잔소리를 많이 하는지…."

김주성은 선수 생활 내내 '국보 센터'로 불린 서장훈과 비교됐다. "늘 비교되는 게 힘들지 않았냐"는 질문에 김주성은 씩 웃었다.

"은퇴 결심할 때 전화해서 조언을 구한 사람이 장훈이 형이에요. 형이 요즘 예능 이미지가 자리 잡혀 그런 거 같은데 장훈이 형만큼 잘한 센터가 대한민국에서 누가 있나요? 저도 안 돼요."

그래도 그가 서장훈보다 잘했다고 자부하는 게 딱 하나 있다고 한다. 바로 '블록 슛 1위 기록(1037개)'이다. 이 부문 역대 2위는 찰스 로드(현 KCC·531개), 3위는 서장훈(463개)이다. 그는 "대부분 기록은 장훈이 형이 1등이라서 블록 슛에 애착이 더 간다"고 했다.

김주성은 은퇴 후 가족들과 미국으로 건너가 농구 지도자 공부를 할 계획이다. 요즘 푹 빠진 건 골프다.

"실내 운동만 하다 보니 야외에서 하는 운동이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드라이브샷은 잘 맞으면 260m 정도 나가는데 자주 칠 기회가 없어 스코어는 차마 내세우기 민망해요. 골프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는데, 기회만 되면 원주 출신인 골퍼 김효주(23)에게 레슨을 받는 게 인생 소원이네요."

김주성은 코트를 떠나는 마당에 허재 선배처럼 잔소리 하나 하고 싶다고 했다.

"어느 종목에서든 한두 시즌 반짝하기는 쉬운 것 같아요. 후배 여러분, 팬들 기억에 오래 남는 선수가 되려면 인터넷 댓글 볼 시간에 슛 연습 한 번 더 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