禪風 일으키고… 萬海사상 알리는데 평생 바친 '불교계 큰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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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5.28 01:42

[조계종 대종사 무산 스님 입적]

80代에도 여름·겨울 석달씩 '안거' 독방 갇혀 하루 한끼로 엄격 수행

지난달 초 미리 '임종게' 써놓고 백담사 버스기사 등 불러 작별인사
"종교인이 돈 갖고 있으면 탈 난다" 밥해주는 신도 자녀의 장학금까지

文대통령 "불러 용돈 주셨는데… 막걸리 한잔 올립니다" 추모의 글

"모두가 다 바람에 이는 파도인기라."

2003년 강원도 만해마을 내 만해문학박물관에서 열린 만해 희귀 도서 기증식 당시의 무산 스님. 뒤편으로 만해의 얼굴 사진이 보인다. /조선일보 DB
입적(入寂) 사흘 전인 23일 오후 인제 만해마을에서 만난 무산 스님은 평온해 보였다. 곁에 놓인 '해골'을 가리키면서는 "이게 우리의 본래 면목이다"고 했다. '해골'은 10여년 전 자신의 두개골을 스캔해 만든 조각 작품. 스님은 평소 반(半)추상화도 즐겨 그렸다. 매직펜으로 쓱쓱 1~2분 만에 한 점씩 그려 만해축전 안내장 표지로 쓰기도 했다. 한데 그 많던 그림이 보이지 않았다. "다 싹 태워버렸다"고 했다.

'안개 낀 산'[霧山]이란 법명 때문일까. 무산이 입적한 지난 26일 오후부터 이틀간 설악산과 속초 동해안은 자욱한 안개가 밀려왔다 개었다를 반복하며 스님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난 落僧, 떨어진 중이야"

걸림 없고 파격적인 언행으로 '무애도인'으로 불렸던 무산 스님은 종교를 뛰어넘어 정치·문화계와도 폭넓게 교류했다. '아득한 성자' 등 무산의 한글 선시를 좋아했다는 문재인 대통령은 2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서울 나들이 때 저를 한번씩 불러 막걸리잔을 건네주시기도 하고 시자 몰래 슬쩍슬쩍 주머니에 용돈을 찔러주시기도 했다'며 '언제 청와대 구경도 시켜 드리고 이제는 제가 막걸리도 드리고 용돈도 한번 드려야지 했는데 그럴 수가 없게 됐다'며 안타까워했다.

2014년부터 무산 스님이 매년 여름·겨울 석 달씩 백담사 무문관(無門關) 안거(安居)에 참가한 것은 불교계 화제였다. 80대 고령에 접어든 스님들은 안거 자체도 쉽지 않은 일. 하물며 독방에 스스로 갇혀 하루 한 끼만 먹으며 수행하는 무문관 수행을 자청했기 때문이다. 스님은 "내가 이 나이에 부처 되면 뭐할끼고? 난 낙승(落僧)이야, 떨어진 중"이라며 겸양해 했지만 주변에선 "생을 마무리하며 후학에게 모범을 보인 것"이라고 해석했다.

선승(禪僧)을 자처하지 않았지만 그는 누구보다 선(禪)의 중요성을 깨닫고 선승들 뒷바라지에 아낌이 없었다. 설악산은 조계종의 종조(宗祖)로 추앙받는 도의 국사가 신라 최초의 선종 사찰인 진전사를 창건한 지역. 무산 스님은 1992년 신흥사 회주로 추대되면서 설악산에 선풍(禪風)을 다시 일으켰다. 신흥사에 향성선원, 백담사에 무금선원을 잇따라 만들면서 선승들 수행을 지원했다. 주지 등 보직을 맡지 않아 노후가 불안한 선승들을 위해 전국선원수좌복지회에 거금을 쾌척하기도 했다. 무산 스님이 선승들에게 당부한 것은 "1000년 전 중국 스님들이 이야기한 '죽은 화두'에 중독되지 말고, 지금 중생들의 아픔을 화두로 삼으라"는 따끔한 한마디. "항상 진리에 배고파하라. 항상 어리석어라"처럼 스티브 잡스나 프란치스코 교황 등을 법문에 인용하며 이 시대 한국 불교가 지향해야 할 좌표를 보여주기도 했다.

"돈은 내버려야 하는 것"

무산 스님은 지위 고하, 좌우, 지역, 세대를 뛰어넘어 포용한 어른이었다. 27일 신흥사 빈소엔 김진선 전 강원지사, 김진태 전 검찰총장, 성낙인 서울대 총장, 주호영 의원,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장, 전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과 이근배·신달자 시인 등의 조문이 줄을 이었다.

만해축전 10주년을 기념한 초대장에 사용된 무산 스님의 그림.
절집 안에선 추상(秋霜)같이 엄격했지만 속세 사람, 특히 어렵고 약한 사람에겐 부드럽고 친절했다. 동·하안거 해제 등 사찰의 중요한 행사엔 인제군 노인회장과 용대리 이장(里長)을 상석에 모셨고, 사찰 식사를 준비하는 공양주 보살의 자녀 장학금까지 일일이 챙겼다. 주변에서도 그가 어려운 이웃을 돕는 범위가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아는 이가 드물다.

어려운 이웃을 돕고, 뜻있는 일을 지원하면서도 그는 항상 돈에 관해선 '내버린다'고 표현했다. "종교인이 돈을 가지고 있으면 탈 난다. 내버려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 그는 '정신적 은사'로 여긴 만해 한용운 선사를 기리는 일에 앞장서면서도 '만해 장사'라고 표현했다. 철저히 자신을 낮추고, 아예 뒤로 숨어버려서 무산 스님은 변변한 기념사진 한장이 없다.


한 달반 전에 쓴 임종게

스님은 작년 초 식도암 수술을 받았다. 올 3월 동안거를 마친 뒤로는 음식을 제대로 삼키지 못했다. 20일쯤 전부터는 미음과 죽 섭취도 힘들었다. 주변에선 "이때부터 마무리를 준비하신 것 같다"고 했다. 스님이 마지막으로 만난 인사는 인제군 용대리의 이장들과 백담사 셔틀버스 기사들. 스님은 23일 만해마을을 찾은 기자에게 임종게(臨終偈)를 보여주며 "세상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없어. 모든 건 바람에 이는 파도일 뿐"이라고 했다. 임종게를 쓴 날짜는 '2018.4.5'라고 적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