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명당'서 지관 役 조승우 "내가 돋보이기보다 작품이 중요"

"맞아요. 역할이 좀 미지근했죠?" 조승우(38)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19일 개봉하는 영화 '명당'에서 조선시대 지관 박재상을 연기했다. 세도가 김씨 일가에 의해 가족을 잃고 난 뒤 복수를 꿈꾸다가, 흥선이 왕위를 놓고 김씨 세력과 다투자 어느 쪽도 명당을 차지하지 못하게 하려는 인물이다. 최근 서울 삼청동에서 만난 조승우는 "욕망을 드러내는 다른 인물들보다 박재상이 덜 두드러진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했던 반응이에요. 그래도 저는 박재상이 작품 속에서 꼭 필요한 인물이라고 생각했어요. 불순한 의도를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중심을 잡는 사람은 분명히 있어야 하거든요."

조승우는 "내가 돋보이는 것보단 작품의 메시지가 중요했다"고 했다. "'땅'은 소재일 뿐 이 영화가 말하려는 건 인간이 갖지 말아야 할 욕망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되돌아보자는 것이거든요. 그런 메시지가 좋았고, 이를 실현하는 인물인 박재상도 매력적이었어요." 그는 "요즘은 캐릭터가 자극적일수록 사람들이 집중하는 것 같지만, 진짜 중요한 건 '캐릭터를 통해 무엇을 말하는가'가 아니겠느냐"고 했다.

튀지 않는 역할이지만 연기하기 쉽지는 않았다. 조승우는 "조선시대가 배경이고 선한 역할이라서 드라마 '마의'가 떠오른다는 사람도 있는데, 그런 말을 들으면 가슴이 뜨끔하다"고 했다. "매번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건 배우로서 숙명이자 숙제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전 작품이 떠오른다'고 하면 식은땀이 죽 흐르죠." 캐릭터 완성을 위해 붙든 건 오로지 대본이었다. "다른 비슷한 배역과 비교하면서 연기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예컨대 영화 '관상'의 (송)강호 형과 저를 비교하기 시작하면 연기를 어떻게 하겠어요? 부담스러워서 못하지. 저는 그저 대본만 봅니다."

2000년 영화 '춘향뎐'으로 데뷔한 이래 영화와 드라마, 뮤지컬 세 분야를 넘나들며 활약했다. 특히 올해는 최근 종영한 드라마 '라이프'에 출연했고, 연말엔 '지킬 앤 하이드' 공연이 예정돼 있어 세 무대에 모두 서게 된다. 조승우는 "영화든 공연이든, 세상에 좋은 영향을 끼치는 작품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저 재미로, 혹은 멋있어서 보는 작품은 하고 싶지 않아요. 사람들의 삶에 작게나마 영향을 주고 생각해 볼 계기를 주고 싶어요. 그래야만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 작품이 의미 있게 남을 수 있을 테니까요." 여전히 낮고 뜨거운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