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주역으로 뜨는 젊은 리더들

재계에 2~3세 오너 경영자들이 새로운 주역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최근 주요 그룹 인사에서 2~3세들이 그룹 경영의 전면에 나서거나 실질적인 리더로 부상한 경우도 있다. 이들은 공격적인 해외 진출과 인수·합병(M&A), 마케팅 전략을 구사하며 재계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한국 재계가 1차 세대교체에 이어 최근 2차 세대 교체기(期)로 서서히 접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공격적 인수·합병, 글로벌 경영 확대

아버지 세대와 달리 어린 시절부터 '글로벌 세례'를 충분히 받아온 2~3세 경영자들은 해외 진출에 상당히 적극적이다. 대표적인 3세 경영자가 CJ그룹의 이재현 회장이다. CJ는 오랜 적자를 보면서도 계속 투자해온 E&M(엔터테인먼트&미디어) 사업 분야에서 최근 본격적인 결실을 거두고 있다.

CJ가 투자·배급한 영화 '해운대'가 관객 1000만명을 돌파했고, CJ미디어와 엠넷미디어가 제작한 '롤러코스터'와 '슈퍼스타K'는 케이블TV 프로그램으로서는 경이적인 시청률을 올렸다. 15년 가까이 적자를 보면서 '밑 빠진 독'이라는 외부의 악평에도 불구하고 E&M 분야 투자를 지속한 이재현 회장 입장에선 '집념의 승리'인 셈이다.

이 회장은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올해를 '아시아 넘버원(No.1) 미디어그룹'으로 웅비(雄飛)하는 해로 잡았다. 이미 CJ미디어는 작년 11월 대만 TBC, 12월 홍콩 PCCW를 통해 'tvN Asia' 방송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올 1월에는 필리핀, 2월 싱가포르에서도 방송을 내보내고 있다.

그는 "엔터테인먼트 사업 성공을 위해 단기적 이익 창출에 연연하지 말고 글로벌 시장의 문을 계속 두드려야 한다"고 경영진을 독려한다.

롯데그룹 신동빈 부회장은 최근 국내 M&A 시장을 뒤흔드는 강자(强者)로 부상했다. 작년부터 인수한 기업만 두산주류BG·해태음료 안산공장·㈜중국 타임스·바이더웨이·GS백화점과 마트 등이다. M&A 금액으로만 2조원에 육박한다. 대우인터내셔널 인수전에도 최근 뛰어들었다.

신 부회장은 롯데 글로벌 전략의 선봉장 역할도 하고 있다. 중국의 대형마트체인인 '타임스'를 인수하는 등 해외 기업 M&A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러시아·중국·베트남에 백화점과 마트, 복합단지 건설도 추진 중이다.

롯데의 한 관계자는 "신 부회장은 과거 가장 보수적인 그룹으로 꼽혀왔던 롯데의 이미지를 공격적이고 확장 지향적인 곳으로 완전히 탈바꿈시켰다"고 말했다.

아모레퍼시픽 서경배 사장은 아모레퍼시픽의 해외 시장 공략을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2002년부터는 '라네즈' 브랜드로 중국 시장을 본격 공략해 지난해까지 상하이(上海) 등 37개 도시 170여 곳에 매장을 열었다.

서 사장은 중국과 홍콩에서 구축한 브랜드 이미지를 바탕으로 싱가포르와 대만에도 진출하는 등 '라네즈' 브랜드의 아시아화에도 힘을 쏟고 있다. 일본에서는 2006년 아모레퍼시픽 브랜드를 출범시켰고, 작년 5개 매장을 새로 열었다.

◆'경영 수업'에서 '경영 주도'로 보폭 확대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과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 정용진 신세계부회장은 '준비된 그룹 경영의 후계자'로 꼽힌다. 이들은 지난해와 올 연초 인사에서 모두 한 단계 승진하며 경영 전면으로 한 걸음씩 바싹 더 다가섰다.

이재용 부사장은 작년 12월 인사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하며 삼성전자 최고운영책임자(COO·Chief Operating Officer)를 맡았다. CEO를 보좌하며 기업의 일상적인 경영관리와 사업부 간 업무 조정을 담당하는 역할이다. 하지만 그가 COO 역할에만 머무를 것이라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건희 전 회장을 대리해 삼성을 대표하는 역할도 종종 수행한다. 지난달 24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삼성전자 윤종용 고문, 최지성 사장과 함께 중국 차세대 지도자인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을 면담한 게 대표적이다. 마이크로소프트·소니 등 해외 거래업체 최고경영자를 만나는 것도 그의 몫이다. 삼성이 그룹 차원에서 중시하는 주요 행사에는 거의 대부분 이 부사장이 참석해 일을 진행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경영 후계자로서의 이런 역할은 갈수록 커질 전망이다.

신세계그룹 정용진 부회장은 작년 연말 인사에서 총괄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타이틀을 바꿔 달며, 명실상부하게 신세계그룹 경영의 최고 지휘봉을 잡았다. 그는 대표이사에 취임하자마자 국내 유통업계를 뒤흔들고 있다.

올 1월 7일 이마트에서 소비자들이 많이 찾는 12개 제품의 가격을 파격적으로 인하하며 이마트발(發) '유통대전(大戰)'을 촉발시킨 것이다. 이는 '단기적인 가격 행사를 지양하고 저비용 운영을 통해 좋은 상품을 항상 싸게 파는 것이 할인점'이라는 업(業)의 본질에 집중한 그의 결단이었다고 신세계 관계자들이 말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은 작년 8월 부회장 승진과 함께 기아자동차에서 그룹의 주력사인 현대자동차로 옮겨왔다. 그룹 경영의 최일선으로 나선 것이다. 그는 '현대차의 아류(亞流)'로만 여겨지던 기아차에 '디자인 경영'을 도입해 큰 성과를 냈다는 평가이다.

이런 실적을 바탕으로 그의 역할도 한층 강화됐다. 예컨대 작년 9월 15일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처음으로 정몽구 회장을 대신해 신차 발표 행사를 모두 주관했다. 그 직후인 9월 24일 현대차의 유럽 지역 첫 공장인 체코공장 준공식 행사도 그의 주도로 진행했다. 그는 여전히 정몽구 회장의 울타리 안에 있지만 그룹 경영에서의 역할은 갈수록 커질 것이라고 현대차 관계자들은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