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한 정종관씨
촉망받던 올림픽 대표 출신… 유서엔 "모두 내가 시킨 일"

촉망받는 축구선수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30일 오후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된 전 프로축구 전북현대 선수 정종관(30·사진)씨의 옆에서는 A4용지 한 장과 호텔 메모지 5장에 자필로 남긴 유서가 발견됐다.

유서에는 "승부조작의 당사자로서 부끄럽다. 현재 검찰 조사를 받는 선수들은 내 친구들이다. 내 이름을 밝히지 않는 것은 의리를 지키기 위한 것이다. 내가 곧 죽을 것이기 때문에 그런 의리 안 지켜도 된다. 모두 내 책임이며 내가 시킨 것이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고 경찰은 밝혔다.

유서에는 현역 축구선수 2명이 포함돼 경찰이 수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씨는 숭실대학교 선수 시절에 의리 있고 남자다운 성격으로 동료들 사이에 인기가 많았다. 대학 2학년 때 팀 에이스로 평가받았고, 주장 후보로 거론될 만큼 리더십이 뛰어난 선수였다. 2003년에는 올림픽대표로 소집되기도 했다.

정씨는 지난 2004년 전북현대에 입단, 꿈에 그리던 프로 선수생활을 시작했다. 전북현대의 미드필더로 2007년까지 79경기에서 6골 8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주전으로 활약했다. 특히 전북현대가 아시아 클럽축구 왕중왕전인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정상을 정복한 2006년에는 우승 주역으로 각광을 받았다.

그러나 병역기피를 위해 고의로 어깨를 탈구했다가 법망에 걸려들어 실형을 선고받고, 2008년 2월 전북현대에서 퇴출당하면서 축구 인생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최강희 전북 감독은 "키가 작지만, 영리하고 경기 운영을 잘하는 선수였다"며 "형기를 마친 뒤에 팀에 2, 3차례 찾아왔지만 승부조작에 연관됐을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수형기간 동안 그를 면회한 축구계 동료들은 "프로축구 선수여서 감옥에서 큰 고생은 하지 않았고, 오히려 '형님'들로부터 귀여움을 받는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정씨는 형을 마친 이후 서울 송파구청에서 공익근무요원으로 근무했다. 지난해부터는 프로축구 3부리그 격인 챌린저스리그 서울 유나이티드에 적을 뒀지만 성실하게 훈련에 참가하지는 않았다. 서울 유나이티드는 "정씨는 지난해 입단 이후 훈련에 한 번도 참가하지 않아서 2011년 시즌을 앞두고 정리할 계획이었다"며 "올해 초 다시 운동에 참여하겠다고 해서 몇번 함께 뛰었지만 지난 3월 5일 개막전에 출전해 7분간 뛴 이후론 연락이 끊겼다"고 했다. 서울 유나이티드는 정씨와 접촉하기 위해 공익근무지인 송파구청으로 찾아가기도 했으나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

병역비리가 적발되며 축구 인생이 망가진 정씨는 결국 승부조작이라는 잘못된 길로 들어섰다. 승부조작 사건을 수사 중인 창원지검은 정씨가 프로축구 승부조작에 개입한 흔적을 잡고 지난 25일 체포 영장을 발부받아 추적 중이었다.

이날 정씨의 시신이 안치된 삼성동 서울의료원에는 조재진 등 전북현대 시절 동료들이 찾아왔다가 빈소가 마련되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발길을 돌렸다. 조재진은 "지금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며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