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때 던지던 야구공 - "의식 잃은 상태서도 혼신의 힘 다해 쥐어"
'금테 안경'의 배짱 강속구 - 홈런 맞으면 멋쩍게 웃고는 '한번 더 쳐보라' 같은 공 던져
1987년 선동열과 영화같은 승부 - 최동원 공 209개·선동열 232개… 연장 15회 맞대결 2대2로 비겨

"나중에 차돌박이에 소주 한잔 합시다. 내 걱정 하지 말고 건강 잘 챙기세요. 그래야 술을 함께 마시지."

얼마 전 통화를 했던 최동원(53) 전 한화 2군 감독은 "안 아픈데 왜 자꾸 환자로 만드느냐"며 "밥줄 끊기게 하지 마라"고 했다. 안부를 물을 때마다 "몸이 좋아지면 그라운드에서 웃으면서 보자"고 밝게 말하곤 했다. 하지만 최동원 전 감독은 끝내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14일 오전 2시 2분쯤 경기도 고양시 일산병원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한화 2군 감독을 맡았던 2007년 대장암 수술을 받고 난 뒤 한때 몸 상태가 좋아졌지만, 지난해부터 다시 암세포가 퍼지면서 치료가 불가능했다.

◆자존심이 만들어 낸 '무쇠 팔'

최동원 전 감독은 일산병원에 입원하기 전 가족들에게 "공을 던지고 싶다"고 했다. 병마와 싸우면서도 녹색 그라운드를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었다. KBO 심판인 막내아우 최수원씨는 "어머니가 형에게 현역 시절 던지던 야구공을 쥐여줬다"며 "형은 운명 직전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그 공을 쥐고 있었다"고 했다.

최동원 전 감독은 지난 7월 경남고-군산상고 레전드 매치에 참석해 병색이 완연한 모습으로 모교인 경남고 유니폼을 입고 팬들 앞에 섰다. 그는 "다이어트를 심하게 해서 부작용이 일어난 것뿐"이라며 투병 사실을 부인했다. 병마(病魔)에 무릎을 꿇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최동원 전 감독은 "나는 최고이며, 마운드에 오를 때마다 최고답게 던지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빠른 직구와 낙차 큰 변화구로 무장한 그 앞에서 타자들은 맥없이 무너졌다. 로진백을 한 손으로 툴툴 털고, 야구 스타킹을 잡아당긴 뒤 반짝이는 금테 안경을 한 번 만지는 그의 투구 의식 하나하나는 타자들에겐 일종의 '사형선고' 같았다. 홈런을 얻어맞으면 멋쩍게 웃어 보이고는 다음 대결 때 "한 번 더 쳐보라"며 한복판에 공을 찔러넣는 두둑한 배짱은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도 감탄할 정도였다.

◆승부욕도 당대 최고

최동원 전 감독은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1·3·5·6·7차전에 나와 혼자 4승(1패)을 따냈다. 우승 후 코피를 쏟으며 "잠 좀 푹 자는 게 소원"이라고 했을 정도로 무리한 등판이다. 그는 "열세로 점쳐졌기에 더욱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후배이자 영원한 라이벌인 선동열 전 삼성감독과 세 차례 대결을 벌였다. 1986년 두 차례 대결에서 완봉승과 완투패를 한 차례씩 주고받았고, 마지막 대결인 1987년 5월 16일 부산 사직 경기에선 2대2로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연장 15회 대결에서 최동원 전 감독은 공 209개, 선동열 전 감독은 232개를 던지며 끝까지 마운드를 지켰다. 최동원 전 감독은 훗날 "동열이보다 먼저 마운드를 내려가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최동원 전 감독이 프로 8년간 통산 248경기에 등판해 남긴 성적은 103승 74패 26세이브(평균자책점 2.46). 1984년 한국시리즈 4승(1패)과 그해 기록한 223탈삼진 기록은 아직 깨지지 않고 있다.

◆"롯데 감독 되고 싶었는데…"

최동원 전 감독은 1988년 선수협회 창립을 주도했다가 친정팀 롯데를 떠나야 했다. 은퇴 후 그는 야구판 대신 정치와 방송계를 돌아다녔다. 야구판이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까닭이다. 2001년 김인식 당시 한화 감독의 배려로 한화 코치를 맡은 그는 어린애처럼 뛸 듯이 좋아했다. 최동원 전 감독은 평소 "고향팀 롯데 감독을 맡아보고 싶었다"고 했지만 결국 못 이룬 꿈이 됐다. 빈소는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에 마련됐다. 발인은 16일 오전 6시, 장지는 경기도 자유로 청아공원이다. 유족은 부인 신현주(44)씨와 군 복무 중인 아들 기호(21)씨가 있다.

☞ 직장암

최동원씨가 걸린 대장암의 일종. ‘ㅁ’자 모양인 대장(大腸)의 큰 부분인 결장(結腸)과 항문 사이를 잇는 직장(直腸·곧창자)에 생긴다. 장에 생기는 암 중 가장 흔한 암으로 알려져 있다. 조기 발견하면 비교적 쉽게 치료할 수 있지만 말기로 가면 항문까지 암이 번져 회복이 어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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