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일 별세한 작곡가 이호준은 최근까지도 동료 및 선후배들과 활발한 음악 활동을 해왔다. 지난해 방영됐던 MBC TV‘ 우리들의 일밤-바람에 실려’에 출연했던 그가 출연진과 즉석 길거리공연을 벌이며 즐거워하고 있다. /유튜브 동영상

'친구여' '토요일은 밤이 좋아' '인디안 인형처럼'…
80년대 '위대한 탄생' 시절 그와 함께 활동한 조용필 임종 못 지켜 안타까워해

조용필의 '친구여' 등 1980년대 많은 히트곡을 만들어냈던 작곡가 겸 음반연주자 이호준(62)씨가 27일 오전 폐암으로 별세했다. 고인은 10여일 전 갑작스럽게 폐암 말기 판정을 받은 뒤 이날 숨을 거뒀다. 클래식 음악을 공부했던 고인은 재즈 피아노에 흥미를 가지며 대중음악에 심취한 뒤 팝 피아니스트와 가요 작곡가의 길을 걸었다. 1973년 가수 이장희와 함께한 밴드 '동방의 빛' 건반 연주자로 대중 음악계에 입문했다.

이씨는 1980년대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에 건반 주자로 합류했고, 특히 '친구여' '그대 발길 머무는 곳에' 등 조용필의 대표곡을 써 작곡가로도 명성을 쌓았다. '어젯밤 이야기'(소방차), '토요일은 밤이 좋아'(김종찬), '인디안 인형처럼'(나미) 등 지금까지 애창되는 댄스 명곡들도 그의 작품이다. 이 때문에 1980~90년대 가요 황금기를 연 주역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이씨는 '위대한 탄생' 활동 시절 "숫기가 없고 내성적이었지만, 음악만큼은 무서운 집중력을 보였다"고 멤버들은 회고한다.

그의 대표작 '친구여'에 얽힌 숨은 얘기도 있다. 지금은 느린 템포로 불리지만 이씨가 작곡했을 때는 발라드곡보다는 훨씬 빠른 비트의 미디엄 템포였다고 한다. 그러나 노래를 접한 조용필이 '느린 게 좋겠다'며 발라드풍으로 바꾼 뒤 이씨에게 들려주자 이씨는 "처음 듣는 노래인데 이게 누구 노래냐"고 되물어 함께 있던 밴드 멤버들 모두 폭소를 터뜨렸다는 후문이다.

고인은 별세 전날 밤 문병 온 동료 음악인들로부터 "조용필 선배가 곧 병원을 찾을 것"이라는 말을 듣곤 손뼉을 치며 손으로 'OK'사인까지 그렸다고 지인들이 전했다. 조용필은 이날 오전 병원을 찾았으나 도착 직전에 이씨가 숨을 거두는 바람에 두 사람의 '마지막 만남'은 이뤄지지 못했다. 조용필은 몇 년 전 한 인터뷰에서 이호준과 함께했던 80년대 '위대한 탄생' 시절에 대해 "서울 북한산 밑 허름한 창고에서 먹고 자는 시간만 빼고는 모두 연습에 쏟았고, '촛불' '창밖의 여자' '단발머리'같은 대표곡들을 함께 작업했다"며 "86년 한해만 148회 라이브공연을 했을 정도로 열정적이었다"고 회고했다.

조용필은 고인의 병원 치료비와 장례비의 상당 부분을 부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이날 "연주계의 가장 큰 별이 떨어졌다. 안타깝다"며 고인을 추모했다. 한국연주자협회(회장 함춘호) 소속 연주인들도 급히 모금해 유족을 도왔다. 고인과 '위대한 탄생'에서 함께 활동한 베이시스트 송홍섭(54)은 "그는 아무런 수식어가 필요없는 음악인 그 자체였다"고 했다.

유족은 부인 차경숙씨와 3녀. 빈소 경기 분당 서울대 병원, 발인은 30일 오전 8시. (031)787-1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