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단이 당을 X판 만들어"… 이정희 발언엔 "대표님 힘내세요" 박수
당권파가 새벽 1시에 비례대표 일괄사퇴案 철회시도… 46명 중 8명만 찬성해 패배
비공개 회의 내용 밝히며 이정희, 유시민 공격하자 柳 "한 번 해볼까요" 반격

4일 국회에서 열린 통합진보당 전국운영위원회에서 범(汎)경기동부연합 등 '당권파'는 조직의 힘을 바탕으로 비당권파를 몰아세웠다. 그들은 자신들의 동의하에 진행됐던 진상 조사 결과를 인정하기는커녕 조사단을 향해 "당을 X판으로 만들었다" "애당심이 없다"고 했다. 상대편 발언시 고성과 야유를 퍼붓고, 의사 진행 발언을 통해 회의를 고의로 지연시키기도 했다.

과거 민노당 시절부터의 행태가 재연된 것이다. 이 장면은 인터넷 등을 통해 생중계됐다. 자기 잘못은 인정하지 않으면서 목적 관철을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당권파의 민얼굴이 그대로 드러난 자리였다.

5일 새벽 1시경 당권파 측은 경선 비례대표 후보 일괄사퇴 안건을 철회시키기 위해 표결을 요청했으나 재석 46명 중 8명의 지지 밖에 얻지 못해 1차 패배했다.

◇서로 비난한 4명의 공동대표

이날 이정희 공동대표는 진상조사위의 조사 결과를 부정하고 비난했다. 진상 조사를 책임진 조준호 공동대표도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당권파를 대표하는 이 대표는 비대위 구성 등 비당권파 측 제안도 거부했다. 그의 발언이 끝나자 당권파 방청객들은 20~30초간 "대표님 힘내세요"라며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바로 옆에 앉은 유시민·심상정·조준호 공동대표의 표정은 싸늘했다.

참여당 출신으로 비당권파인 유시민 대표는 바로 옆에 앉아 있는 이정희 대표의 말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는 "우리 당 (비례대표) 선거가 민주주의의 일반 원칙과 상식에 어긋나는 것이었다"고 했다. 그는 "선거가 끝나고 마땅히 공개돼야 할 투표소별 투표 결과, 온라인 투표의 시·군·구별 투표 현황이 아직도 공개되지 않고 있다"면서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에 최소한의 투명성도 담보되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진보를 말할 것인지 난감하다"고 했다. 진보신당 탈당파 출신인 심상정 공동대표는 "이번 비례대표 선거가 전체적으로 정당했다고 국민에게 말씀드릴 수 있는가? 저는 없다고 본다"고 했다.

진상조사위원장을 맡았던 조준호 공동대표는 "국민을 믿고 가야 한다. 국민이 길을 열어주면 그 길을 가고 국민이 문을 닫는다면 멈춰야 된다"고 했다.

◇안건 하나에 8시간 넘게 끌어

당권파들은 이날 1번 안건으로 올라온 '진상조사위원회 결과 보고의 건'에 대해 사사건건 태클을 걸었다. 2번 안건이었던 '진상 조사 결과에 따른 후속 조치의 건', 즉 비례대표 당선자 사퇴 등을 결정하는 안건의 상정을 막기 위해 일종의 '필리버스터(의사 진행 방해 발언)'를 한 것이다.

당권파들은 조사단이 온라인 투표에 대해 "조작을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조작이 없었다고도 할 수 없는 의심 사례가 있었다"고 한 데 대해 "확인하지 못했다면 결국 부실 조사 아니냐"는 식으로 몰아붙였다. 당권파에 속한 한 운영위원은 조사단에 "민주당 모바일 투표도 조사해봤느냐?"는 어이없는 질문을 하기도 했다. 참다못한 조준호 대표 등은 "지금 우리를 조사하시는 거냐"고 되묻기도 했다. 다른 운영위원은 "진보 정당을 하려면 국민의 눈높이가 아니라 당원의 눈높이에 맞춰야 한다"고 했다.

이날 토론 중에 비례대표 2번 이석기 후보가 온라인 투표에서 얻은 1만여표 중 6000여표가량이 중복 IP에서 나왔다는 사실도 공개됐다. 이 대표는 "조사단이 대표단 보고 때 이같이 말했고, 이에 유 대표가 '이석기네요'라고 말했다"고 했다. 당권파는 비당권파가 주축인 조사단이 경기동부 당권파의 핵심인 이석기 후보에 대해 '표적 조사'를 했다는 주장을 해왔다. 이에 유 대표는 "비례대표 후보 조정 과정에서 (대표단 간에) 오간 말을 다 얘기할까요?" "비공개 회의록 찾아와서 한 번 해볼까요?"라고 했다. 심상정 대표도 "이정희 대표 좀 자중해달라"고 말하는 등 신경전을 벌였다.

◇야유, 고성도 재등장

당권파는 조 대표 등이 진상 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동안 "역사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너네 발표 때문에 당이 ��판 됐잖아" 등의 야유를 보내며 고함을 질렀다. 고성이 오가자 인터넷 홈페이지의 회의 생중계가 중단됐고 온라인으로 이를 지켜보던 당원들은 '소리치지 말라. 국민들이 모두 보고 있다' '이게 당권파의 실체란 말인가? 부정선거 의혹보다 이게 더 심각하다'는 등의 글을 올렸다. 한 운영위원은 마이크를 잡고 "오늘 회의를 보니 우리 당은 총체적 부실 정당이다"면서 "밖에 나가기가 두렵고 국민에게 얼굴 들기가 무섭다"고 했다.

당권파는 2008년 당시 '일심회'사건에 연루돼 간첩혐의를 받고 있던 민노당 간부의 제명 안건이 상정된 전당대회 때도 심상정 비대위원장 등 비주류의 발언에 야유를 보냈고 회의장 주변에서는 '민노당은 더 친북해야 한다'는 등의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