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이 20일 기자간담회에서 “공무원들에게도 친(親)정권, 반(反)정권이 있더라. 이런 대결 구도 때문에 좋은 정책도 실현이 안 되더라”고 말했다. 사진은 임 전 실장이 대통령실장으로 재직하던 작년 5월 청와대에서 개각을 발표하는 장면. /최순호 기자 choish@chosun.com

대통령실장 지낸 임태희의 비판… "무상보육·영남권 신공항 정책서 잘 드러나"
뭔가 열심히 하면 親정권 몰려 다음 정권서 한직 밀릴까 우려
정권 바뀌어도 상대해야 하는 이익집단 눈치보며 결정 미뤄
反정권 공무원들은 새 정책에 비협조적·냉소적

새누리당 대선 후보 경선 출마를 선언한 임태희 전 대통령 실장은 20일 "공무원들에게도 친(親)정권, 반(反)정권이 있더라"며 "이런 대결구도 때문에 아무리 좋은 정책을 내려 보내도 실현이 안 되는 것이 지금 이 나라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에 이어 대통령실장을 지낸 그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내가 대통령이 되면 이런 대결구도를 타파하려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본지의 추가 전화 인터뷰에서 자신이 겪은 대표적인 사례로 '무상 보육 지원' '사회적 기업 지원' '영남권 신공항' 등을 들었다.

임 전 실장은 "무상 보육 지원 정책도 어린이집을 지원하는 게 맞는 건지, 아니면 부모들에게 현금을 지원하는 게 맞는 건지 등 여러 방안을 고민해야 하는데, 이걸 열심히 고민하는 사람은 마치 현 정부에 협조하는 사람으로 낙인을 찍는 식이 되더라"며 "그러다 보니 (공무원들이) 국민보다는 매일 실제로 현장에서 상대해야 하는 보육원 관계자들이 원하는 쪽으로 해주자는 쪽으로 결론을 냈던 것"이라고 했다.

뭔가 해보려고 열심히 일을 하면 '친(親)정권 공무원'으로 찍혀 다음 정권에서 한직으로 밀릴 테니 그럴 바엔 차라리 정권이 바뀌어도 계속 상대해야 하는 이익 집단 눈치를 보는 것이 낫다는 쪽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그는 또 "(이윤 추구보다는 사회적 기여를 목적으로 하는)사회적 기업에 대한 지원 정책은 지난 (노무현) 정권의 역점 사업이었다"며 "그런데 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흐지부지됐다. 현 정부가 막아서가 아니라 (새로 중요 자리에 임명된)공무원들이 '사회적 기업'하면 좌파 색깔이 있는 거라고 보고 (알아서) 그렇게 한 것"이라고 했다. 임 전 실장은 "내가 노동부 장관에 취임한 뒤 이 사업에 대해 드라이브를 걸자 공무원들은 '이게 어떻게 된 거냐'며 헷갈려 했다"며 "그러면서 '나중에 정권 바뀌면 또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식으로 일을 하려 하지 않더라"고 말했다.

임 전 실장은 또 "대통령실장 시절에 보니 영남권 신공항 문제도 어떻게든지 뒤로 미루며 결정을 하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면서 "공무원들도 그런 상황에서 낭비되는 행정력이 얼마나 큰지를 잘 알지만 '정권이 바뀔 텐데 괜히 올인(다 걸기)하는 식으로 일하다가 다음 정권에서 (자신의 공무원 생명이) 끝난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더라"고 말했다.

그는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이런 일은 수 없이 많다"며 "한나라당 시장 시절에 열심히 일했던 사람은 민주당으로 바뀌고 나면 전부 안 좋은 보직으로 간다. 그러니 모두들 '너무 열심히 하지 말고 누구한테도 책잡히지 않을 정도로 어정쩡하게 일하는 게 좋다'는 식으로 분위기가 바뀌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수도권의 한 시장(市長)이 바뀌면서 공무원(보직)을 전부 바꿔버리니까 새로 들어온 사람들은 (전 시장이) 추진하던 역사(驛舍) 신축 사업을 중단했다"고 했다.

임 전 실장은 "4개월간 지방을 돌아보면서 이명박 정부가 '부자(富者)들의 정부'가 되고 정책이 안 먹혀드는 문제를 절실히 느꼈다"며 "정부 정책을 지지하는 공무원은 (대결)구도에 잡혀 있어서 (열심히 일하면 현 정권에 충성하는 공무원이라는 소리를 들을까봐 일을 못하고), 반(反)정권(공무원)은 비협조적이고 냉소적이어서…"라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양분된 정치구도로는 (국가 주요 현안이) 해결이 안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