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노 강세 울산 경선서 '대세론' 이해찬 4위… 왜?]
밀실 야합에 대한 거부감에 '친노 독식' 견제심리 발동
손학규·정동영 등 非盧 주자, 김한길에 조직표 몰아준 듯
이해찬 "이제 초반일 뿐… 울산 결과 큰 의미 두지 말라"

민주통합당 당대표 경선의 첫 출발지인 울산에서 대(大)이변이 일어났다. 당내에서 '1위 당선이 확실하다'며 '대세론 후보'라는 말까지 들었던 친노(親盧) 이해찬 후보가 4위로 밀려난 것이다. 대신 김한길 후보가 1위를 차지했고, 이어 추미애·우상호 후보가 각각 2위와 3위에 올랐다.

이번 당대표·최고위원 경선은 당내 최대 계파인 친노(親盧)그룹의 좌장인 이 후보가 호남 대표 주자인 박지원 비대위원장(원내대표)과 손을 잡고 초반부터 '대세론'을 형성했다. 이 후보가 멀찌감치 앞서고, 김한길·우상호 후보 등이 뒤쫓고 있다는 게 각 진영의 판단이었다. 그런데 이 후보가 4위로 밀려나고 김 후보가 더블 스코어 이상 차이로 선두를 차지하면서 "대선을 앞두고 밑바닥 당심이 변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역풍 맞은 '이·박 연대'

이해찬 후보는 오후 6시쯤 경선 결과가 발표된 직후 8명의 후보 중 가장 먼저 굳은 표정으로 자리를 떴다. 이 후보 측은 "겸허히 결과를 수용하고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겠다"면서도 "이제 초반인데 너무 의미를 두지는 말라"고 했다.

반면 1등을 차지한 김한길 후보는 아내인 배우 최명길씨와 함께 대의원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환호했다. 경선 결과에 대해 김 후보는 "울산에서의 승리를 이변이라고 한다면 앞으로 더 큰 이변의 시작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민심과 당심이 뒷받침해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투표에 앞서 진행된 정견 발표는 이·박 연대에 대한 비판이 주된 화제였다. 김 후보는 "총선 패배로 위기를 맞았는데 소위 이·박 연대라는 밀실 담합 때문에 당이 더 큰 위기에 빠지고 말았다"며 "당원과 국민을 우습게 보지 않고서는 당권을 나눠 갖자는 밀실 제안을 결코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추미애 후보는 "전당대회가 짜인 각본대로 짜고 치는 판이 된다면 (야권이 패배한) 지난 총선과 뭐가 다르겠냐"며 "이변과 돌풍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

◇김한길에 '2번 표' 쏠린 듯

당초 김한길 후보 측에서도 1위는 기대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김 후보 측에선 "2등만 해도 다행"이라는 말이 나왔었다. 김 후보 측 관계자는 "일단 표차를 최대한 줄인 뒤 수도권으로 몰고 올라오면서 뒤집자는 작전이었다"며 "행여 이길 수는 있겠지만 이렇게 압도적으로 이길 줄은 몰랐다"고 했다.

김 후보가 승리한 데는 '이·박 연대'에 대한 반감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이·박 담합론' 비판이 당원들에게 먹히면서 역풍이 크게 분 것 같다"며 "대세론이 무너지기 시작했으니 (6월 5~6일 실시될) 일반국민, 당원이 참여하는 모바일 투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한 경선 후보 측은 "친노 패권주의에 대한 반발, 문재인 고문에 대한 실망 등이 두루 작용했을 것"이라고 했다.

김 후보의 약진에는 정동영 등 비노(非盧) 진영의 대선 주자들이 적극적으로 지원했기 때문이라는 말도 나온다. 손학규 상임고문을 비롯한 당내 비노 진영은 당대표까지 친노 이해찬 후보에게 넘겨줄 경우 대선 후보 경선에서 크게 불리해질 것이란 우려를 갖고 있다.

1인2표제로 진행되는 대의원 투표의 성격상 '오더(명령)'가 아닌 2번째 표가 복잡하게 움직인 결과라는 분석도 있다. 당내 조직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울산 대의원 표를 분석했을 때 1위 표는 이 후보가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며 "그러나 이 후보는 자신의 1위 표만 지키고 김한길 후보는 다른 진영의 2번째 표를 모두 끌어와 몰표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당 관계자는 "울산 지역위원장 중 명확히 친노로 구분되는 사람은 한 명뿐인데 이 후보 측이 대세론을 믿고 선거운동을 열심히 안 했다는 얘기가 있다"고 했다.

◇추미애·우상호도 선전

추미애 후보가 2위를 차지한 것도 이변으로 꼽혔다. 민주당 관계자는 "아무래도 울산지역이다 보니 같은 영남(대구) 출신인 추 후보에 표가 모인 것 같다"고 말했다. 추 후보는 대의원대회 이후 기자들과 만나 "당이 현 시점에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해 저의 진정성이 통한 것 같다"고 말했다.

486 대표 주자로 나선 우상호 후보도 3위를 기록하며 선전했다. 우 후보는 "다소 아쉽긴 하지만 앞으로 더 분발해 뒤로 갈수록 더 큰 바람을 일으키겠다"고 했다.

민주당은 6월 9일까지 전국을 돌며 순회 경선을 가질 예정이다. 당 관계자는 "이제 경선이 첫발을 뗀 상태라 경선 결과를 예측하기 이르다"면서 "친노 측이 초반에 일격을 맞은 정도"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