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효순·미선양 10주기… 당시 주한美대사 허버드 인터뷰]
가장 후회되는 순간 - 부시 서면 사과가 분노 키워
그때로 돌아간다면 대통령에 직접 사과 요구할 것
비난 키운 '사고 장병' 출국 - 사고 전 이미 새 부임지 확정
재판 때문에 한국 더 머문 것… 軍은 신변 위협 우려도 한 듯
한국 정부에 아쉬운 하나 - 대선 앞둔 데다 반미 심화
누구 하나 앞에 나서서 정확한 상황 설명하지 못해

"한국인과 미국인이 '사과'를 수용하는 틀 자체가 다르다는 사실을 나도 백악관도 잘 몰랐다. 끔찍한 일이 일어났을 때 누군가 법적 처벌을 받거나 사퇴하면서 책임을 지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하는 한국 문화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여중생 두 명이 미군 장갑차에 치여 숨진 '효순·미선양 희생사고' 10주기를 하루 앞둔 12일 당시 주한 미국 대사였던 토머스 허버드(Hubbard·69) '맥라티 어소시에이츠' 고문을 미국 워싱턴 DC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만약 10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에게 나의 입을 빌리지 말고 직접 사과해야 한다고 더 강력하게 밀어붙였을 것이다. 우리는 대통령의 서면 사과가 한국인들의 분노를 키우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10년 전 효순·미선양 추모 행사로 시작된 모임이 격렬한 반미 시위로 변했다. 이 과정에서 미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조치는 없었나.

"2002년 2월 동계올림픽 때 안톤 오노 사건(오노의 헐리우드 액션으로 김동성이 실격 처리된 사건)부터 대규모 반미 시위까지, 나에게는 '퍼펙트 스톰'에 가깝게 모든 상황이 겹쳐 나중엔 손을 댈 수가 없을 정도였다. 나와 리언 라포트 당시 한미연합사령관은 6월 13일 사고가 발생하자마자 이 사고가 끔찍한 비극이었다는 점을 알았다. 우리는 연이어 사과 성명을 내고 용산에서 추모식을 열면서 최선을 다해 사과의 뜻을 표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고가 난 시점이 한일월드컵(2002년 5월 31일~6월 30일)의 정점이어서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월드컵이 끝나고 사고가 재조명됐을 때는 이미 페르난도 니노, 마크 워커 등 두 병장을 미군 법정에 세우는 사법 절차가 논의되고 있었다. 여론이 악화하자 나는 콜린 파월 당시 국무장관을 통해 대통령에게 사과 표명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전달했고, 대통령도 동의했다. 부시는 그해 11월 27일 사과 서한을 주한 미 대사관으로 보내 내가 이를 읽도록 했다. 이것이 공식적인 사과라고 판단한 것이다."

―지금도 그 판단이 옳았다고 생각하나.

"아니다. 만약 내가 효순·미선양 사고와 이후 반미 시위 확산 과정에서 한 가지를 수정할 수 있다면 나는 부시 대통령에게 직접 사과를 하라고 더 강력히 밀어붙였을 것이다."

―당시에는 왜 그렇게 하지 않았나.

"문화의 충돌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미 정부는 '매우 비극적인 사고였으니 두 명의 장병을 군 법정에 세워 재판을 받게 하자'고 생각했다. 이후 판결은 법원의 몫이기 때문에 감정이 개입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 원칙이었다. 한국 문화에서는 비극이 일어나면 책임지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이런 정서가 법적 판결이 나올 때까지 이어진다는 점을 몰랐다."

―2000년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은 일본 오키나와(沖繩)의 미군 성폭행 사건과 관련해 카메라 앞에서 사과하지 않았나.

"클린턴 역시 사과를 하기 위한 별도 회견을 한 것이 아니었다. G7(주요 7개국)회의에서 한 기자의 질문에 답하는 형태였다. 만약 부시 대통령에게 누군가 비슷한 질문을 던졌다면 역시 '사과한다'는 말이 나왔을 것이다. 당시 나는 누군가 물어봐 주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결국 이뤄지지 않았다."

―시위가 과열된 후 한 번 더 직접 사과를 할 수는 없었나.

"추모 모임이 명백한 반미 시위로 변한 이후엔 불가능했다. 서울 한복판에서 거대한 성조기를 불태우는 시위대 사진이 미 언론을 통해 대중에게 알려졌다. 찰스 캠벨 당시 미8군사령관이 CBS방송에 출연해 관련 질문을 받고 눈물을 글썽이기까지 했다. 미국의 동맹이라고 생각했던 한국에서 일어나는 극렬한 반미가 미 대중을 경악시켰다. 부시 대통령도 그 시점에서는 미국 국내 여론과 정치권의 압박 때문에 사과하기가 불가능했다."

―군사재판에서 무죄 평결을 받은 두 명의 장병이 대통령 사과 서한 발표 당일 출국해 시위를 자극했다. 그렇게 서둘러 출국시킬 필요가 있었나.

"두 명의 장병은 사고 전 이미 다른 부임지로 옮기기로 결정된 상황이었다. 나는 이들이 재판 일정 때문에 오히려 원래 예정됐던 것보다 더 오래 한국에 머물러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재판이 끝나자 이들을 한국에 더 잡아둘 이유가 없었고 한국에 더 있는다고 해도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는 상황이었다. 군은 또 이 사병들이 한국에 더 머물게 할 경우 신변에 위협을 받을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이들의 거취에 관한 문제는 나의 통제를 벗어난 영역이었다. 군사 법정으로 넘기기로 결정한 이상 철저히 군의 손에 맡긴다는 것이 원칙이다."

―한국 정부가 시위의 확산을 막기 위해 할 수 있었던 일은 없었을까.

"나는 한국의 외교부 혹은 적어도 일부 정치인들이 한국 국민에게 한미 동맹의 중요성과 당시의 정확한 상황을 설명해주기를 기대했지만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한국이 당시 대선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이해한다. 그러나 한국 정부 중 단 한 명도 국민에게 설명하려는 사람이 없었고 모두 뒤로 물러서 최대한 연루되지 않으려고 했던 것에 대해서는 아쉽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