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는 내게 전화 한 통 없어… 그래도 '후보'로 뽑히면 도울 것"
“아무리 낮은 지지율이라도 상대에게 이런 수모까지 정말 받아야 하는지”
“박근혜가 이기려면 작지만 비박 3인방 표에다 바깥의 표 더 갖고 와야”

밤 9시 반 경기도 수원의 공관에서 김문수 지사를 만났을 때, 나는 사적(私的) 감정을 드러냈다.

―보수 진영에서는 '김 지사가 왜 이렇게 됐을까' 안타깝게 생각한다.

"나는 모르겠다, 무엇을 안타깝게 생각하는지."

그는 알고 있으면서 답을 피했고 나는 알면서도 물었다.

―본인이 어떻게 비치고 있다고 생각하나?

"내가 지지율이 낮으니까. '지지율도 낮은데 무얼 하려고 나왔나' 그게 요지 아닌가. 내가 지금껏 살아온 삶이 한심하다는 뜻은 아닐 것이고."

―대선 출마 선언 후 경선룰에만 매달리니 "어린애가 떼쓰는 것 같다"는 말까지 듣게 되지 않았나?

"저쪽(박근혜)에서 반응이 없다. '선수가 룰에 맞춰야지 시합 때마다 룰을 바꾸면 되나요' 한마디 한 것밖에 없다. 아예 대화 창구를 닫아버렸다. 이런 상황이 된 게 우리 쪽 문제인가, 박근혜 문제인가. 아무리 낮은 지지율이지만 내가 정말 이런 수모까지 받아야 하는지."

―현행 경선룰대로 가야 한다는 쪽이나 완전국민경선제로 고쳐야 한다는 쪽이나 각각 논리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나?

"물론이다. 정치는 늘 양론이 있다."

―룰은 이미 정해져 있는데, 그걸 바꾸려는 쪽이 큰소리칠 입장은 아니지 않은가?

"원래 대선 1년6개월 이전에 당 최고위원을 맡으면 대선에 출마 못 하게 돼 있었다. 그게 '당권과 대권' 분리다. 그걸 고쳐 박근혜가 비상대책위원장이 됐다. 당을 살리기 위해 그 룰을 바꿔준 것이다. 박근혜는 그 기회를 이용해 공천으로 자기 사람을 심었고 당직에도 그렇게 했다. 박근혜의 사당(私黨)처럼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의 경선 룰로 하는 것은 공정한 게임이 아니다."

―지난 총선 때 당을 위기에서 구한 박근혜에 대해 너무 야박한 대접을 하는 게 아닌가?

"박근혜는 152석을 얻고 오만해졌다. 총선에서 이기는 경우가 독(毒)이 된다는 것이 이런 경우다. 사실 지난 총선에서 야권의 총득표수가 더 많았다. 수도권에서는 크게 졌다. 대선에서는 젊은 사람과 정치에 무관심한 층이 더 많이 투표를 할 것이다. 그러면 더욱 어려워진다. 이대로 가면 진다는 가정하에서 대비해야 한다. 박근혜 주변에는 '이렇게 지지도가 많이 나오고 소위 대세인데 왜 이리 깔짝거리느냐'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로 꽉 차 있다. 이회창 후보가 대세론에 안주해 패배했던 것을 전혀 교훈으로 못 받아들이고 있다. 당연히 이기지 않겠느냐에 패인(敗因)이 있다."

―완전국민경선이 이를 해결해준다고 믿나?

"완전국민경선은 지난 1월 박근혜가 한명숙 대표에게 제안했던 것이다. 당내 정치개혁특위에서도 '우리 정치가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줘야 정치가 개혁된다. 열린 정당, 국민 정당으로 간다'며 결론 냈던 것이다. 이게 아니면 이길 길이 없다."

―김 지사는 현행 경선룰에서 출마 결심을 했던 것이 아닌가?

"동시에 경선룰 협상이 시작될 줄 알았다. 경선룰은 불변이 아니다. 과거 대선 때마다 바뀌었다."

―완전국민경선제를 안 받아주면 김 지사는 경선에 불참하겠다고 했는데.

"그것 없이는 참여한들 의미가 없다. 내가 말도 안 되는 들러리를 서줘야 옳은가. "

―지금에 와서 경선 불참은 당(黨)을 흔들고 김 지사 개인에게도 정치적 타격을 줄 것이다.

"그럴 것이다. 감수할 수밖에 없다."

―이미 마음의 정리가 됐는가?

"나는 흔들림이 없다. 이제 박근혜가 결단해야 한다. 박근혜가 조금만 더 생각하면 받아들일 것으로 본다."

―박근혜 의원에게 양보만 요구하지 말고 본인도 통 크게 받아들일 줄도 알아야 하지 않는가?

"그쪽에서 제안을 해와야 받아들이든 말든 할 것 아닌가. 지금껏 내게 전화 한 번 없었다. 도대체 우리를 무엇으로 보는가."

―지지율이 낮은 비박(非朴) 주자들이 완전국민경선제를 요구하는 것에 대해 '어차피 안 되는데 요행수를 바란다'는 비판도 있다.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나를 중심으로만 보지 말라. 완전국민경선제를 안 하고 박근혜가 이기는 길이 있나. 민주당은 당내 경선→야권 통합 경선→안철수와 경선으로 '3단계 흥행쇼'를 11월 말까지 끌고 갈 게 뻔하다. 투표를 한 달 앞두고 후보가 바뀌고 마술처럼 극적 변화가 일어나는 풍토가 극복돼야 하지만 또한 이게 현실이다."

―박근혜를 도와주기 위해 완전국민경선제를 주장한다는 뜻인가?

"박근혜가 최대 수혜자지. 물론 나도 수혜자이지만."

―이번 경선이 제대로 치러질 것 같은가?

"안 될 것 같다. 박근혜 후보는 기본적으로 우리를 '동급(同級)'으로 여기지 않는다. 자신이 당연히 되는데 왜 쓸데없는 제안을 하느냐고 생각하는 것 같다."

―국민 대부분의 생각도 그렇다. 낮은 지지율로 출마하는 게 국민을 우습게 봐서 그렇다는 비판이 있다.

"민주주의 선거제도는 지지율이 1~2% 되는 후보가 나중에 승자가 될 수 있고, 비록 지금 소수라도 다수가 될 수 있다는 걸 전제한다. 오바마가 출마하는 것을 우습게 봤으나 1년쯤 지나서 대통령이 됐다. 우리에게 '합쳐봐도 5%대 지지율'이라고 조롱하면 결국 선거에 필패하는 것이다."

―현실에서 과연 그럴까?

"경선이 파탄 나면 우리의 얼마 되지 않는 지지도가 박근혜를 따라가지 않을 것이다. 박근혜가 이기려면 적지만 우리(비박 3인방) 표에다 바깥의 표를 더 갖고 와야 한다. 박근혜 측은 우리가 갖고 있는 지지도까지 떨어져 나가게끔 조롱하고 있다. 승패는 5% 내외에서 왔다 갔다 한다. 단 0.5% 지지를 더 얻기 위해서도 자기 혁신을 해줘야 한다."

―비박(非朴) 주자들끼리 먼저 경선한 뒤, 그 승자가 박근혜 의원과 최종 경선하자는 안도 나왔다.

"현실에서 성립이 되겠느냐. 우리끼리 경선하면 누가 관심을 갖고 참여할지 의문이다."

―보수 진영에서는 김 지사에 대해 '청렴' '능력' '소신' '진정성'이 있다고 봤다. 그런 김 지사가 독자성을 갖지 못하고 '비박 3인방'의 틀에 빠진 것에 대해 실망하는 이도 많다.

"왜 박근혜를 공격하나, 안 도와주느냐는 말을 많이 들었다."

―박근혜 의원에 대해 미리 흠집을 내거나 인신공격을 하는 것이 같은 당 후보로서 옳은가?

"그런 점은 있지만, 근거 없는 인신공격은 아니다. 내가 할 말이 많아도 굉장히 절제하는 중이다."

―분단 상황에서 여성 대통령은 곤란하다고 보나?

"그건 이재오 의원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박근혜 의원을 비판할수록 더욱더 그 늪에 빠지고 있다는 느낌은 없나?

"빠져들어도 어쩔 수 없고, 그게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지금과 같은 박근혜를 비판 안 하면 정치를 안 해야지. 완전 불통(不通) 아닌가. 내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 비판을 하는 것은 아니다."

―본인에게 없는 박근혜 의원의 장점은 뭐라고 보나?

"제1의 장점은 부모님이다."

―박근혜 의원의 개인 자질에 대해서는?

"청와대에서 일찍이 생활해 나름의 품격과 정치적 경험을 익혔다는 점이다."

―약점은 무엇이라고 보나?

"소통이 안 된다. 나와 전화도 안 된다. 아마 그와 통화 되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세상 사람이 이명박 대통령의 문제점을 '불통'이라고 보지 않는가. 박근혜는 그런 불통 정도가 아니다."

―대통령이 되면 안 된다고 보나?

"지금 이런 상태라면 곤란하다고 본다. 굉장히 큰 문제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이런 박근혜 의원이 되느니 차라리 야권의 후보가 되는 게 더 낫다고 보나?

"… 야권 후보 중에 뚜렷하게 됐으면 좋겠다는 사람이 없다. 안철수 같은 백면서생은 너무 경험이 없고 약하다. 그래서 내가 해야겠다고 나선 것이다."

―1~2%의 낮은 지지율에도?

"나에 대해 알면서 일정하게 지지율이 높아질 것으로 봤다. 지금까지 총선 세 번, 도지사 선거 두 번 나가 한 번도 안 졌다. 나는 이기지 못할 선거는 안 나간다. 나가면 이길 수 있도록 하는 게 내 방식이다."

―이번에는 가능성이 희박해 보인다.

"박근혜라는 강자가 버티고 있으니, 새누리당 후보들은 그 그늘에 묻혀버렸다. 반면 야권 후보들은 다 고만고만하지만 어필되고 있다."

―당초 출마 결심을 한 것은 다음에는 기회가 없다고 봤기 때문인가?

"출마한 입장에서 다음을 얘기하는 것은 맞지 않다. 이번 대통령으로는 내가 제일 적합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김 지사가 대통령이 된다면 어떤 세상이 될지 그게 안 그려진다.

"민생이 좋아지고 대립과 갈등이 통합되고 남북이 통일되는 길을 열고 싶다. 영업용 택시기사, 빈민의 삶, 공장 근로자, 농민 문제는 어떻다는 걸 나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을까. 박근혜가 해낼 수 있을까."

―김 지사의 이미지는 '119 관등성명' '춘향이를 따먹으려고 했다' 등으로 그 사안의 진의를 떠나 젊은 층에서 희화화됐다. 그걸 극복할 수 있다고 봤나?

"119 전화는 사실과 다르게 알려진 것이다. 이상하게 희화화됐다. 관등성명을 대라고 해서 내가 권위적이라고? 119 대원의 근무 기강을 요구한 것이다. 권위적이지 않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춘향이'는 말실수였다. 부정과 비리를 저지른 것도 아니다. 그게 치명적인 문제라고 보진 않는다."

―출마 선언 때는 지사직을 버린다고 했다가 하루 만에 말을 바꾸었다.

"지사직을 버릴 수 있는 방향으로 검토했는데 많은 반론에 부딪혔다. 지난번 오세훈 사퇴로 인한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처럼 야권 연대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특히 경기지사 보궐선거가 저쪽 진영을 결속시켜 새로운 판을 만들게 해 대선에 부담을 준다는 것이다."

―출마 선언 전에 정리됐어야 하지 않나?

"그런 비판을 받을 수도 있으나, 결코 내가 지사직에 연연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십자가를 짊어진 거다. 나 개인만을 위해서라면 버리는 게 유리하다. 지사직을 그만두면 선거후원금을 받을 수도 있다. 대선 후보로서는 그게 훨씬 유리하다."

―당초 출마에 좀 더 신중했더라면 하는 마음이 없나?

"출마는 잘 했다고 본다. 새누리당에도 도움이 된다고 본다. 박근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당의 건강성을 위해 좋은 것이다. 또 박근혜 혼자 대선 주자로 있는 것보다, 여러 명이 나와서 떠들어주는 것이 더 낫다."

―하지만 지금 상황 같아서는 완전국민경선제로 치러진들 비박 주자들은 박근혜 의원에게 협조하지 않을 것 같다.

"왜 그렇게 보나."

―김 지사가 만약 경선을 포기하고 난 뒤 박근혜가 후보로 확정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분명히 말하지만 탈당하지 않을 것이다."

―여전히 공격할 것인가. 방관할 것인가, 도울 것인가?

"내가 후보로 되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어떤 방식의 경선으로든, 내가 불참하든 간에, 후보가 확정되면 적극 협조할 것이다. 박근혜가 후보로 뽑힌다 해도 도울 것이다. 종북 세력이나 좌파와 결탁된 쪽으로 정권이 넘어가 나라가 무너지는 걸 볼 수는 없지 않은가."

낮은 소파에 그는 등을 꼿꼿이 세운 채 앉아 있었다. 지금 그에게 가장 힘든 경쟁자는 그 자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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