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인원 기자

["100만원 이상 받으면 무조건 퇴출"… 결연한 국토부]
골프·2차 술자리 금지령에도 공무원 비리 끊이지 않아
"오죽 하면 이러겠느냐" 국토부 내에서도 필요성 공감, 관가·건설업계 바짝 긴장

"차라리 '도장값' 주는 게 낫죠. 안 그러면 현장이 돌아가지 않아요."

지방에서 1000억원대 공사를 책임지고 있는 A건설사 현장소장 B씨는 월말이 다가오면 고민에 빠진다. '이번에는 얼마나 건네야 할까'. 그는 "공사를 하고 발주처에서 기성대금을 받으려면 감독 공무원의 공정률 확인 도장을 받아야 한다"면서 "도장은 그냥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10대 대형 건설사의 모 임원은 "부서 야유회 간다고 전화하는 공무원은 그나마 양심적"이라며 "회사에서는 빨리 준공 검사를 받아오라고 재촉하는데 담당 공무원이 출장을 핑계로 며칠씩 자리를 비우면 도대체 무슨 생각이 들겠느냐"고 털어놨다.

권도엽<사진> 국토해양부 장관이 지난 25일 '공무원 비리와 전쟁'을 선언했다. 당연히 관가(官街)와 건설업계는 바짝 긴장하고 있다. 권 장관의 의지는 단호하다. "7월부터 단 한 번이라도 100만원 이상 금품이나 향응을 받은 공무원은 무조건 옷을 벗기겠다"고 선언했다. 이른바 '원 스트라이크 아웃(one strike out)' 제도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국토부 고위 공무원은 "원칙대로 시행한다면 수백명이 퇴출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현실화 안 되는 게 최선이지만, 혹여 일부라도 적발되면 그 파장은 클 수밖에 없다.

국토부 내에서도 "오죽 하면 이러겠느냐"(본부 5급 사무관) "명예회복을 위한 마지막 기회"(지방국토청 3급 국장) 등 필요성을 공감하는 모습이다. 실제 국토부는 지난해 6월과 8월 잇따라 공무원 비리 방지 대책을 내놨다. 골프와 2차 술자리 금지령을 내렸고 감찰 활동도 대폭 강화했다. 하지만 비리가 끊이지 않자 '충격요법'을 쓴 것이다.

이번 조치로 감시의 눈길이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지방 주재 공무원 사회가 더 술렁이고 있다. 대한건설협회 관계자는 "윗물은 많이 맑아졌지만 지방 공무원의 비리 관행은 여전한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지방 공무원은 현장에서 건설업체를 대상으로 각종 공사를 관리·감독한다. 문제는 '공무원의 재량권이 많다'는 점이다. 예컨대 하도급 업자 선정, 설계 누락 반영, 공사 물량 조정 등 건설업체의 수익과 직결되는 민감한 사안이 주로 지방 하위직 공무원 손에 결정되고 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관련 법규가 없다 보니 공무원이 편의를 봐주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공사 수익이 달라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면서 "원칙대로 하기보다 도장값 쥐여주는 게 차라리 편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국토부는 정원 6000여명 중 본부 직원이 1200여명에 불과하다. 전체의 80%인 4800여명이 지방에서 근무한다. 더욱이 지방 주재 공무원은 임용 때부터 줄곧 지역을 떠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역 건설업체와 밀착될 수밖에 없다.

또 이 지방 주재 공무원들의 비리를 감찰할 인력도 턱없이 부족하다. 국토부 감사관실 인원은 10여명이 고작이다. 대한주택건설협회 관계자는 "결국 공사 현장의 관리·감독 공무원에게 적용할 명확한 행정 지침이 없고 규제가 많은 게 문제"라며 "지방과 본부 공무원을 4~5년 단위로 순환 근무시켜 지역 업체와 유착할 여지를 없애는 것도 고려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건설 비리가 사라지려면 꽤 많은 공무원이 적발과 해임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하지만 과연 실천력을 갖고 추진이 될 수 있을지 '우려 반 기대 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