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對 이한구, 경제정책 기조 놓고 대립 본격화
김종인, 이한구 겨냥 "재벌 대변하는 것 아닌가"
李는 "金의 경제 민주화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다"
金, 정부 적극 개입 주장… 李, 자유시장경제 강조

박근혜 전 대표 경선캠프의 정책을 총괄할 김종인 전 의원과, 당내 서열 2위로 당 정책의 입법화를 책임지는 친박 경제통 이한구 원내대표가 2일 '경제민주화'를 놓고 맞붙었다. 박 전 대표의 경제정책 기조를 둘러싸고 대선 공약과 집권 이후까지 염두에 둔 친박 진영 내부의 노선 투쟁이 본격화됐다는 관측이다.

◇캠프 개소 첫날에 싸움 시작

이 원내대표와 김 전 의원은 지난 4월부터 각자 언론 인터뷰를 통해 장외(場外)공방을 벌이면서 경제민주화에 대한 뚜렷한 철학의 차이를 노출해왔다. 한동안 소강상태였던 둘 사이의 싸움은 이날 김 전 의원이 이 원내대표를 비판하면서 재개됐다.

김 전 의원은 박 전 대표 경선캠프가 문을 연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 원내대표를 향해 "경제민주화가 뭔지 모르겠다고 하는데 그럼 정치민주화는 이해하느냐고 묻고 싶다"며 "경제민주화를 마치 '시장경제 자체가 경제민주화다', 이런 얘기를 할 것 같으면 자본주의 발달, 시장경제의 발전과정에 대한 이해가 굉장히 부족한 사람 아닌가"라고 했다. 본지와의 통화에선 "재벌에 의존해 살았던 사람이라 그쪽의 이해를 대변하는 것 아니냐"라고도 했다.

그러자 이 원내대표는 기자간담회에서 "김 전 의원이 말하는 경제민주화 내용이 뭔지, 무얼 생각하는지 모르겠다"면서 "그 용어는 사회정치학자들이 쓰는 말이지 정통 경제학자들은 쓰지 않고 경제학 주류인 영미 경제학자들도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유럽식 김종인, 미국식 이한구

두 사람은 우선 시장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다. 김 전 의원은 "시장은 독과점 등으로 변질할 수밖에 없으며 국가가 시장이 제대로 운용될 틀(제도)을 짜줘야 한다"고 했다. 국가의 시장개입을 당연한 수순으로 보는 것이다. 반면 이 원내대표는 "경제민주화의 목적 가운데 하나는 자유시장경제의 원칙을 지키는 것이며, 대기업의 경제활동 자유를 보장하면서 공정 경쟁과 책임을 강조해야 한다"고 해왔다.

대기업에 대한 인식도 마찬가지다. 김 전 의원은 "기업은 자제 능력이 없기 때문에 탐욕을 제어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한 반면, 이 원내대표는 "힘을 빼고 위축시키는 식이 아닌, 정밀하게 교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경제민주화 조항'이라고 불리는 헌법 119조2항에 대해서도 이 원내대표는 "자유시장경제를 명시한 1항보다 앞서면 안 된다"는 의견이지만, 김 전 의원은 "2항은 보완이 아니라 1항과 동시에 작용하는 조항"이라고 해왔다.

◇박근혜 집권 이후까지 이어질 싸움 될 수도

당내에선 "각각 독일(김종인)과 미국(이한구)의 경제학적 전통을 대변하는 두 사람의 충돌이 시작됐다"는 얘기가 나왔다.

그러나 이런 '학문적' 시각 외에 파워게임의 성격으로 이번 사안을 보는 이들도 있다. 김 전 의원은 박 전 대표의 '경제정책 멘토'라 할 수 있다. 반면 이 원내대표는 공식적으로 당의 정책을 대표하는 동시에, 오래전부터 박 전 대표의 '경제 가정교사'라는 별명으로 불려왔다. 김 전 의원 뒤에는 '경제민주화'를 강조하는 학자 그룹이 있고, 이 원내대표 뒤에는 관료·기업·정치권 중심의 반(反)김종인 그룹이 있다. 이날 친박 캠프 주변에서는 두 사람이 이런 두 그룹을 업고, 짧게는 대선 정책 길게는 집권 이후의 정책 기조를 놓고 힘겨루기를 시작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