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호 오늘밤 멕시코와 첫 경기… 선수들과 4년간 동고동락, 이 한판에 건다]
1948년 런던올림픽에선 첫 상대 멕시코 잡고 8강
"그동안 준비 잘해서 어떤 결과 나올지 기대된다"

25일(이하 한국 시각) 영국 뉴캐슬대학 코크레인파크 스포츠 그라운드.

홍명보(43) 올림픽 축구 대표팀 감독이 오후 훈련을 시작하기 전 취재진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왔다. 그는“한국영(쇼난 벨마레)이 왼발 부상으로 팀에서 빠지고 대신 정우영(교토)을 데려오기로 했다”고 말했다. 홍정호·장현수에 이어 또 한 번 부상으로 핵심 선수를 잃었지만 그의 표정엔 흔들림이 없었다.

본격적인 훈련이 시작되자 홍 감독은 여느 때처럼 팔짱을 낀 채 선수들이 뛰는 그라운드를 응시했다. 슛 감각이 살아나지 않는다는 고민을 털어놓은 김보경에겐 직접 상대 수비수 역할을 해주며 '특별 과외'를 했다. 훈련이 끝나자 홍 감독은 "떠나는 사람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하는 것밖에 없다"고 선수들에게 말했다.

선수 시절 네 번의 월드컵을 뛴 '한국 축구의 영웅'답게 그는 큰 무대를 앞두고도 그동안 파주NFC(대표팀 트레이닝센터)에서 보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단 하나, 잘 자고 잘 먹고 지낸다고 했지만 면도를 하지 않아 수염이 듬성듬성 난 얼굴은 푸석해 보였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흥미롭고 기대가 되는 것은 그동안 준비를 잘해서라고 생각합니다. 후회 없이 싸워보고 싶습니다." 홍명보호(號)는 26일 오후 10시 30분 영국 뉴캐슬의 세인트 제임스 파크에서 멕시코와 2012 런던올림픽 축구 남자 B조 조별리그 1차전을 치른다.

◇런던을 향해 쉼 없이 달려왔다

홍명보 감독은 "지난 3년5개월 동안 올 8월 이후의 삶은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선수 시절 큰 실패 없이 지도자로 곧바로 뛰어들어 '온실 속의 화초'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던 홍 감독은 2009년 U-20(20세 이하) 대표팀 감독을 맡으며 런던을 향한 험난한 여정을 시작했다. 그의 취임 일성은 "한국 축구의 '황금 세대'를 키워내겠다"였다.

이청용·기성용 등이 중심이 된 2007년 U-20 월드컵 멤버에 비해 이름값이 크게 떨어져 '골짜기 세대'라는 오명을 들었던 2009년 멤버들은 홍 감독의 지휘 아래 이집트 U-20 월드컵에서 8강을 달성했다. 당시 주축 선수였던 구자철·김보경·김영권·윤석영·오재석 등 이른바 '홍명보의 아이들'이 이번 올림픽까지 함께 왔다.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은 홍 감독 지도자 인생의 고비였다. 23세 이하 선수들을 쓸 수 있었던 그는 런던올림픽을 겨냥해 이집트 대회의 주축인 21세 이하 선수들로 팀을 꾸렸다. 준결승 UAE전의 뼈아픈 패배로 비난의 화살을 한몸에 받은 그는 이란과의 3·4위전에서 선수들이 투혼을 발휘하며 극적인 4대3 역전승을 일궈내자 "오늘의 동메달은 금메달보다 소중하다"며 눈물을 흘렸다.

당시 3·4위전에서 0―2로 뒤진 하프타임 때 "우리를 응원하러 온 팬들에게 미안하지도 않으냐"며 후배들을 독려한 박주영은 올해 초 병역 연기 논란에 휩싸이며 대표팀 유니폼을 벗었지만 홍 감독의 설득으로 다시 태극 마크를 달았다.

올림픽 아시아 예선은 선수 차출이 쉽지 않아 애를 먹었지만 치밀한 '플랜 B(차선책)'로 위기를 돌파했다. 이번 올림픽에서 주전 센터백으로 뛰는 황석호는 대체선수를 찾기 위해 대학 선수를 대상으로 수없이 진행한 테스트를 통해 발굴한 선수다. 미드필더 박종우도 예선 과정을 통해 주전 미드필더를 꿰찼다. 홍 감독은 지난 2월 오만전 승리로 올림픽 본선행을 확정했다.

◇멕시코전은 새로운 역사의 시작

홍명보 감독은 18인의 런던올림픽 최종 엔트리를 뽑으며 처음 기성용의 이름을 올렸다. 18세에 A대표팀에 뽑혀 그동안 홍 감독과는 인연이 없었던 그는 "이 팀에선 조연 역할을 해도 아무런 불만이 없다"고 말한다. 홍명보호가 그동안 다져온 팀 분위기에 그대로 녹아든 결과다. 박종우는 "이 팀에 있으면 내가 함께 한국 축구의 역사를 만들어간다는 자부심이 생긴다"고 말했다.

그렇게 홍명보호는 이번 올림픽에서 한국 축구의 새 역사에 도전한다. 한국 올림픽 축구는 그동안 8강에 두 번 올랐다. 1948년 런던올림픽에선 첫 판을 5대3 승리로 장식하며 8강에 올랐다. 그때 1차전 상대가 멕시코였다. 2004 아테네올림픽에서는 1승2무로 8강에 올라 파라과이에 2대3으로 패했다.

올해 초 홍 감독은 포부를 묻는 말에 구체적인 목표 대신 "런던에서 원대한 스토리를 만들어보겠다"고 했다. 훈련이 끝나고 버스 쪽을 향하던 홍 감독이 잠시 멈췄다. "일단 멕시코를 잡아야죠. 그리고 전 우리 아이들과 함께한 달력의 마지막 페이지가 8월 11일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날은 런던올림픽 남자 축구 결승전이 열리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