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싱 신데렐라 김지연]
패자의 화려한 부활 - 대표 선발 16강전에서 탈락… 김용율 총감독이 뽑아 회생
"로또 당첨된 기분" - 반응시간 0.02초 최고 여검객, 4강전서 세계 1위 꺾는 파란

한국 펜싱의 '신데렐라'가 탄생했다.

2일(한국 시각) 영국 런던의 엑셀 런던 사우스 아레나에서 열린 2012 런던올림픽 여자 펜싱 사브르 개인전 결승에서 김지연(24·익산시청)이 러시아의 소피아 벨리카야를 15대9로 꺾고 금메달을 차지했다.

스스로도 믿기 어렵다는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국제대회에서 우승한 경험이 한 번도 없었던 김지연이 자신의 국제대회 첫 우승을 최고의 무대인 올림픽에서 달성한 것이다. 한국 여자 펜싱 사상 최초의 금메달이자 사브르 종목에서 한국의 첫 메달을 따낸 순간이었다.

부산 재송여중 1학년 때 플뢰레로 펜싱을 시작한 김지연은 '만년 후보 선수'였다. 플뢰레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해 부산디자인고에 입학하면서 사브르로 전향했다. 찌르기 공격만 인정되는 플뢰레와 달리 사브르는 베기도 허용된다. 김지연은 "칼을 마구 휘둘러도 되는 사브르가 더 재미있게 느껴졌다"고 했다.

2009년 국가대표로 뽑혔지만 선배와 동료들에 밀려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출전이 좌절됐다. 지난해 국가대표 선발전에서도 16강전에서 탈락했다. 그러나 김용율 대표팀 총감독이 김지연에게 기회를 줬다. 김 감독은 "지연이 발이 상당히 빨라 잘만 가르치면 국제무대에서 경쟁력이 있을 것으로 봤다"고 했다.

김지연은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쉴 새 없이 여기저기 돌아다닌다고 해서 중학교 때 내 별명이 '발바리'였다"고 했다. 별명처럼 발이 누구보다도 빨랐다. 체육과학연구원 김태완 박사가 펜싱 대표팀 선수들의 민첩성을 측정한 결과 김지연의 20초 왕복 사이드스텝 횟수는 40회로 대표 선수 평균(30회)을 크게 웃돌았다. 빛과 소리에 대한 반응시간(0.02초)도 여자 대표팀 선수 중 가장 빨랐다.

김지연은 태릉선수촌에 들어가 집중 조련을 받으며 기량이 급상승했다. 국제대회에서 꾸준히 2~3위에 오르기 시작했다. 작년 초 65위였던 세계 랭킹이 올림픽을 앞두고는 5위까지 치솟았다.

결국 올림픽에서 일을 냈다. 김지연은 올림픽 첫 출전이라는 부담감을 제쳐놓고 거침없이 칼을 휘둘렀다. 32강, 16강, 8강을 거쳐 준결승에서 마리엘 자구니스(27·미국)를 만났다. 세계 랭킹 1위 자구니스는 2004·2008 올림픽을 2연패 했고 이번 올림픽 개막식에서 미국 선수단의 기수를 맡은 펜싱 최고의 스타였다. 국제 대회 우승 경험이 없는 김지연(키 165㎝)에게 자구니스(키 173㎝, 체중 76㎏)는 '골리앗' 같은 존재였다.

경기 초반 김지연은 자구니스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5―12까지 뒤졌다. 3점만 더 내주면 동메달 결정전으로 밀려나는 상황이었다. 김지연은 이때부터 '선(先) 공격, 후(後) 수비'에서 상대 공격을 유도해 역습을 펼치는 것으로 전략을 바꿨다. 자구니스의 공격을 요리조리 피하면서 포인트를 따내 추격하기 시작했다.

점수 차가 점차 좁혀지자 여유로웠던 자구니스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성급한 공격을 시도했고 그때마다 김지연의 역습이 성공했다. 김지연은 연속 득점하며 13―13 동점을 만들어낸 뒤 결국 15대13으로 경기를 뒤집었다. 김지연은 "(신)아람이 언니가 오심으로 진 일도 있고 해서 정말 지기 싫었다"며 "자구니스에게 이기고 나니 '내가 미쳤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했다.

자신감을 채운 김지연은 결승에서도 세계 랭킹 2위 벨리카야를 상대로 초반부터 우세한 경기를 펼쳤다. 몸통 찌르기로 마지막 포인트를 따내며 15대9로 금메달을 결정짓고는 목청껏 환호성을 질렀다.

'깜짝 금메달'로 세계를 놀라게 한 김지연은 메달을 손에 꼭 쥐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 "꿈을 꾸는 것 같아요. 꼭 로또에 당첨된 기분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