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궁 남자개인 金 명중
올림픽 대표 2번 탈락 후 술로 시름 달래다 장영술 총감독 손잡고 부활

한국 남자 대표팀의 맏형 오진혁(31·현대제철)은 자신이 쏜 마지막 화살이 70m 떨어진 과녁 10점에 꽂히는 것을 본 순간, 두 손을 힘차게 치켜들었다. 그러곤 사대(射臺) 뒤쪽에서 마른침을 삼키며 지켜보고 있던 박성수 대표팀 코치와 힘차게 포옹했다.

4일(한국 시각) 영국 런던 로즈 크리켓 그라운드에서 열린 양궁 남자 개인결승 최종 점수는 7대1. 5번 시드로 결승에 오른 일본의 후루카와 다카하루를 제친 오진혁의 금메달이었다. 한국 남자 양궁은 오진혁의 금빛 활시위로 올림픽 양궁 경기에 처음 출전한 1984년 LA대회부터 2008년 베이징 대회까지 이어져 온 '남자 개인 노골드'의 지긋지긋한 징크스에서 벗어났다. 한국 양궁은 베이징올림픽까지 금메달 총 16개를 캐냈지만, 남자 개인전에선 금맥을 찾지 못했었다.

하지만 임동현(26·청주시청)이 16강, 김법민(21·배재대 3년)이 8강에서 덜미가 잡히는 위기 속에서 맏형 오진혁이 끝까지 흔들리지 않고 남자팀이 짊어진 쇠사슬을 끊어버렸다.

◇좌절의 시간에서 벗어나다

한때 좌절 속에 활을 놓을 위기에 처했던 오진혁을 다시 사대(射臺)로 끌어올린 구세주는 장영술 총감독이었다. 오진혁은 1993년 제22회 전국소년체육대회 남자초등학교 단체 3위에 오르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오진혁은 충남체고 2학년 때이던 1998년 주니어세계선수권에서 우승했고, 1999년엔 국가대표로 뽑히며 양궁의 차세대 주자를 맡을 것으로 기대됐던 선수다. 하지만 2000년 시드니올림픽 선발전에서 탈락하면서 충격을 받았다.

그는 그때를 기억하면서 "내 또래에 나를 능가하는 선수가 없어 너무 기고만장했던 것 같다"고 했다. 꿈에 그렸던 올림픽 출전이 무산되자 그는 곧바로 상무에 입대했다. 목표의식이 없는데 활이 잘 쏴질 리가 없었다. 상무에서 건성으로 활시위를 당겼다. 주말에 외박, 외출만 나가면 술로 시름을 달랬다.

한때 은퇴까지 생각했던 그를 장영술 대표팀 총감독이 바로 세웠다. 장 총감독은 오진혁이 군 복무를 마치자 자신이 지도하는 현대제철에 입단시켰다. 장 총감독은 "자질이 너무 안타까웠다. 그래서 마지막 기회를 주고 싶었다"고 했다.

오진혁의 성적이 그때부터 올라갔다. 그는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마음을 비우니 활이 잘 맞더라"며 "성적이 오르면서 태릉선수촌 밥을 다시 먹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또 한 번의 실패, 오기를 키우다

2007년 상비군에 뽑혔지만 오진혁은 다음 해 또다시 베이징올림픽 최종 엔트리에서 탈락했다. 4년 전과 비슷한 상황. 하지만 이번에는 오기가 생겼다. 애써 다시 잡은 기회를 그냥 날려보내긴 싫어서 더욱 굳게 활을 잡았다. 오진혁은 2009년 최종 국가대표 선발전을 통과해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단체전 금메달을 따냈다.

오진혁은 임동현·김우진과 함께 출전한 아시안게임에서 단체전 8연패(連覇)를 이뤘다. 하지만 아쉬움이 남았다. 개인전 8강에서 인도의 라이 타룬디프에게 4―6으로 패한 것이다.

오진혁은 이후 월드컵에서 이렇다 할 성적을 못 냈다. 단체전도 최고 성적이 3위였다. 그는 "맏형인 내가 팀을 잘 이끌지 못해서 그런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고 했다. 국내 연습경기에서 세계신기록을 두 차례 작성했던 남자 대표팀은 런던에 와서 치른 랭킹라운드에서도 세계신기록을 세웠고, 1번 시드로 단체전을 출전했다. 하지만 미국과의 준결승전에서 어이없는 실수발이 이어지며 충격적인 패배를 당했다.

오진혁은 단체전이 끝나고 "금메달만 좋은 것은 아니다"라며 "동메달도 값지다. 동생들이 잘 따라줘 고맙다"고 했다. 하지만 말과는 달리 그의 속은 쓰렸다. 오선택 남자대표팀 감독은 "남자 선수들 분위기가 가라앉아 끌어올리느라 힘들었다"며 "특히 맏형인 진혁이의 마음고생이 심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