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종오 사격 첫 올림픽 2관왕]
50m 권총에서 1.6점 뒤지다 0.5점차로 결국 뒤집기 성공
마지막 발에 강한 선수 변신… 최영래 얼싸안으며 "미안하다"

5일(한국 시각) 영국 런던 그리니치파크 왕립포병대 기지의 올림픽 사격장. 50m 남자 권총의 금메달 주인공을 가리기까지 마지막 한 발이 남아 있었다.

관중이 숨죽이며 운명의 한 발을 남겨둔 1번과 5번 사대 선수를 주목했다. 1번 사대엔 최영래(30·경기도청), 5번 사대엔 진종오(33·KT)가 서 있었다. 한국 선수끼리 메달 색깔을 다툰 것이다.

9발째까지 점수는 최영래가 653.4점, 진종오가 651.8점. 1.6점 차였다. 50m는 한 방에 2~3점 차가 뒤집힐 정도로 변수가 많은 종목. 경험의 차이가 승패를 가르는 종목이 바로 이 50m 권총이었다. 진종오도 아테네올림픽에서 결선 도중 6.9점을 쏘는 어이없는 실수로 금메달을 놓친 뼈아픈 경험이 있다.

진종오가 침착하게 마지막 방아쇠를 당기자 50m 거리 표적에 그려진 검은 동그라미 한가운데 구멍이 뚫렸다. 10.2점. 최영래가 쏜 표적지 구멍은 정중앙에서 1시 방향 8.1점짜리 지점에 나 있었다. 뮌헨월드컵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 세계무대였던 최영래로선 마지막 한 발의 무게가 천근만근일 수밖에 없었다.

진종오가 662.0점으로 1위, 최영래가 661.5점으로 0.5점 차 2위였다. 두 선수는 승패에 관계없이 경기가 끝나고 나서 서로 얼싸안고 기뻐했다. 이번 런던올림픽에서 처음 나온 한국 선수의 동반 금·은메달이었다.

◇한국 올림픽 역사를 새로 쓰다

진종오가 총을 잡은 것은 강원사대부고 1학년 때인 1995년이었다. 사격을 시작하기엔 다소 늦은 시기. 하지만 모형 총 조립을 즐기던 그를 지켜본 부친 지인의 권유로 사격 선수가 됐다. 입문 4년 만에 문화부장관기 학생 사격대회 2관왕에 오른 그는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때 처음 태극마크를 달았다. 고교 시절 교통사고를 당한 데다 대학 때 어깨까지 다쳤지만, 집중력 하나만큼은 따를 자가 없었다. 나쁜 일은 쉽게 털어내고 다시 생각하지 않는 성격도 사격에 제격이었다.

2004년 아테네 대회 50m 권총에서 어이없는 실수로 금 대신 은메달을 땄다. 하지만 그때 진종오의 표정은 좌절이란 단어보다는 희망이란 단어를 떠올릴 정도로 밝았다. 2006년 광저우월드컵 1위로 명예를 회복한 진종오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꿈에 그리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리고 4년 뒤인 이번 런던올림픽에서 앞선 10m 공기권총 우승으로 한국 사격 첫 올림픽 2회 연속 금메달, 그리고 3회 연속 메달이란 새 역사를 썼고, 이날 개인 종목으로선 첫 하계올림픽 2연패(連覇)라는 훈장을 또 하나 달았다. 레슬링에서 심권호가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그레코로만형 48㎏급)과 2000년 시드니올림픽(그레코로만형 54㎏급)에서 한국인 최초로 2회 연속 개인전 금메달을 땄지만 같은 체급 2연패는 아니었다.

◇"역시 사격은 한 방"

'전설'이 된 진종오는 금메달을 확정한 뒤 그답지 않게 펑펑 눈물을 흘렸다. 언제나 밝은 얼굴로 사람을 대하며 속생각을 거리낌 없이 털어놓는 '신세대 사수'였던 그였다. 진종오는 "본선에서 너무 안 풀려 참 힘들고 속상했는데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노력이 금메달로 보상받는 순간 절로 눈물이 쏟아졌다"고 했다.

진종오는 오전 치른 본선(60발·600점 만점)에서 562점을 쏘면서 부진해 결선을 5위로 출전했다. 1위인 최영래와는 무려 7점 차이였다. 진종오는 "2연패(連覇)의 의미는 알고 있었지만 너무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내가 어설프게 경기를 마치면 치열한 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한 선수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 마지막 한 발까지도 헛되이 쏘지 않으려고 했다"고 말했다.

진종오는 경기 후 은메달을 차지한 최영래를 얼싸안으며 "미안하다"고 했다. 금메달 문턱에서 한 발의 실수로 2위에 그친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는 "영래가 지금 은메달에 기뻐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고 마음을 가다듬은 다음엔 아마 나를 미워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진종오는 "영래가 오늘 메달 맛을 봤기 때문에 더 열심히 노력할 것"이라며 "지금까지 내 기술을 감춰왔는데 이제는 후배들에게 하나둘씩 가르쳐 주면서 다음 올림픽에 대비하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