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우, 올림픽 첫 출전 무대서 金… 하루 12톤 들던 힘으로 세계를 들어넘겨
한눈으로 따낸 금메달 - 8강전서 눈 부딪혀 멍들어 "눈에 보이는 게 없었다"
8년 만의 금맥 이어 - 초등학교 때는 유도, 힘이 장사여서 들어넘겨

퍼렇게 부어 감긴 눈으로 일궈낸 값진 금메달이었다.

김현우(24·삼성생명)가 8일 오전(한국 시각) 영국 런던의 엑셀 런던 노스 아레나에서 열린 2012 런던올림픽 남자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66㎏급 결승에서 헝가리의 타마스 로린츠를 세트 스코어 2대0으로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김현우는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결승 무대를 맞았다. 에드가라스 벤카이티스(리투아니아)와의 8강에서 상대 이마에 오른쪽 눈이 부딪혀 멍이 들었다. 결승전 무렵엔 눈이 퉁퉁 부어올라 아예 오른쪽 눈을 뜨지도 못했다. 김현우는 "눈에 보이는 게 없었다"며 "훈련해온 감각으로 경기를 했다"고 했다.

어디로 자기를 공략해올지 몰라 신경이 곤두섰다. 그만큼 체력 소모도 배가 됐다. 김현우는 매일 170m 언덕을 10번씩 뛰어오르며 기른 체력을 바탕으로 버텼다. 1세트 그라운드 경기에서 로린츠의 공격을 막아내 1점을 얻어 세트를 따냈다. 두 번째 세트 그라운드 경기에선 상대의 반칙으로 2점을 획득해 금메달을 확정했다.

김현우는 2004 아테네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정지현(그레코로만형 60㎏급) 이후 끊어졌던 금맥을 8년 만에 다시 이으며 한국 레슬링의 명예 회복에 성공했다. 1976 몬트리올올림픽에서 양정모가 한국의 첫 올림픽 금메달을 따낸 후 매 대회 금메달을 한국 선수단에 안겼던 레슬링은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노메달에 그치는 수모를 당했다.

김현우는 '한판승의 사나이'를 꿈꾸던 선수였다. 원주 교동초등학교 시절 유도 도복을 입고 지역 대회를 모조리 휩쓸었다. 원주 평원중학교에 입학하면서 학교에 유도부가 없어 최호순 레슬링 코치의 권유로 종목을 바꿨다.

타고난 힘이 남달랐던 김현우는 동년배 사이에선 적수가 없었다. 레슬링을 시작한 다음해인 2002년 소년체전에서 우승했다. 김현우는 2006년 과테말라 세계주니어레슬링선수권대회에서 2위를 차지하며 차세대 올림픽 메달 유망주로 주목받았다.

태극 마크를 다는 데는 4년의 세월이 더 걸렸다. 스무 살이었던 2008년엔 체중 조절에 실패해 1차 선발전에서 떨어졌고, 2차 선발전을 앞두곤 허리 부상으로 경기에 나서지도 못했다. 2010년 국가대표로 선발돼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나섰지만 후지무라 스토무(일본)와의 8강전에서 져 쓸쓸히 한국으로 돌아왔다.

탈락의 충격으로 한동안 훈련을 게을리했다. 몸무게도 8~9㎏ 정도 불어났다. 방황의 시간을 보내던 김현우를 다잡은 건 소속팀의 김인섭 코치였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그레코로만형 58㎏급 은메달리스트인 김 코치는 훈련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며 울면서 자기를 찾아온 김현우를 앞에 두고 그의 훈련 수첩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기도 했다. 김 코치는 "지금까지의 훈련을 모두 잊고 새로 시작하라"며 자신이 올림픽을 준비했던 노하우를 가르쳤다.

그때부터 김현우는 한번 근력 운동을 할 때마다 12t의 무게를 들었다. 자신의 강점인 근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였다. 새벽마다 대표팀 트레이너로 들어온 안한봉 소속팀 감독과 함께 태릉선수촌 뒤 언덕을 오르내리며 지구력도 키웠다. 김현우는 "새벽 훈련은 정말 심장이 튀어나올 정도로 힘들었다"면서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나보다 땀을 많이 흘린 선수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땀으로 얻은 자신감은 오른쪽 눈 부상을 당해 불리한 경기를 치러야 하는 김현우에게 힘이 됐다. 그러곤 올림픽 레슬링 경기장에 8년 만에 애국가가 울려 퍼지게 만들었다. 김현우는 금메달을 목에 걸곤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레슬링으로 내 인생이 달라졌다. 4년 뒤에도 다시 올림픽 금메달을 일궈내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