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비도 바람도 못막은 한국 여자 양궁… 中에 1점차로 이긴 코리아 3총사]
왕좌 지킨 마지막 한발 기보배 - 8점이면 연장, 7점이면 패배… 중압감 털고 9점으로 마무리
'바람의 궁사' 맏언니 최현주 - 어깨 주사 맞고 감 잃어 고전, 결승서 10점 네발로 명예회복
경험의 리더 이성진 - 부상 딛고 8년만에 올림픽 金

기보배(24)는 한 발을 남겨두고 런던 로즈 크리켓 그라운드의 사대(射臺)에 섰다. 9점 이상을 쏴야 우승. 8점이면 연장, 7점 이하면 패배였다.

마지막 4엔드(6발)의 제한시간 120초 중 14초가 남아 있었다. 기보배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다음 시위를 당기고 '앵커링(손을 고정하는 것)'을 했다. 3초간 조준하고 나서 발사. 시속 220㎞로 날아간 화살은 표적지 9점에 꽂혔다.

210대209. 한국이 30일 오전(한국 시각) 열린 런던올림픽 여자 양궁 단체전 결승에서 중국을 꺾고 1988 서울올림픽부터 7연속 우승을 달성했다. 1988 올림픽이 열리기 7개월 전에 태어난 '88둥이' 기보배가 24년을 한결같이 정상을 지킨 한국 양궁의 위업을 마무리한 순간이었다.

◇'88둥이'의 금빛 마무리

여자 대표팀 막내인 기보배가 짊어져야 할 부담감은 엄청났다. 발사 순서부터가 그랬다. 속사(速射)인 이성진(27)이 먼저 나서고, 국제 경험이 가장 적은 최현주(28)가 두 번째였다. 기보배는 확실하게 마무리를 지어야 하는 세 번째 사수였다. 그런데 이날 마지막 한 발로 승패를 가려야 하는 잔인한 상황을 맞았다.

더구나 기보배는 첫 엔드에서 6점에 그쳤던 기억이 있었다. 8점도 '실수 발'로 치는 한국 양궁 대표 선수에겐 악몽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기보배는 흔들리지 않았다. 다음 순서에서 화살을 10점에 꽂으며 한국의 2점 차 리드를 이끌었고, 극적인 드라마를 완성했다. 첫 올림픽 출전에서 금메달의 주역이 된 기보배는 "마음을 비우고 대범하게 쏜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풍우(風雨) 누른 최현주 파워 슈팅

승리의 숨은 주역은 맏언니 최현주였다. 연습경기에선 터무니없는 5점을 쏘기도 했지만, 결승에선 4개의 10점을 쏘며 승리를 이끌었다. 이날 로즈 크리켓 그라운드에는 시도 때도 없이 세찬 비가 왔다 그치기를 반복했다. 바람도 수시로 방향을 바꾸며 궁사(弓士)들의 집중력을 흐트러뜨렸다.

최현주는 키 172㎝·몸무게 64㎏으로 대표선수 중 가장 체격 조건이 좋다. 이성진과 기보배가 '기(技)'로 쏘는 스타일이면, 최현주는 '힘'을 앞세운다. 최현주가 사용하는 활의 강도는 45파운드(20.4㎏)로 비바람 영향을 덜 받는다. 보통 남자 선수가 46~48파운드를 쓰는 점을 감안하면 대단한 힘이다. 백웅기 여자대표팀 감독은 "바람이 세게 불었던 진천선수촌이나 남해에서의 평가전이 아니었다면 최현주가 대표로 뽑힐 가능성은 거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최현주는 피 말리는 대표 선발전이 끝난 다음 쌓인 피로, 오른팔을 들 때마다 어깨뼈와 힘줄이 부딪혀 극심한 통증을 느끼는 '어깨충돌 증후군' 때문에 활도 못 당길 정도였다. 이 때문에 인대강화제 주사를 맞아 한때 감(感)을 잃고 고전했다. 랭킹 라운드에서 21위로 부진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최현주가 활을 당길 때 왼쪽 어깨가 고정되지 않아 좌우로 심하게 흔들리며 활을 쏘는 순간 가끔 조준점을 놓치는 문제점을 보완하는 '벼락 과외'를 한 것도 결승전 활약에 힘을 보탰다.

최현주는 "나는 남들보다 좀 느릴 뿐 부족하지 않다는 믿음을 갖고 끊임없이 노력해왔다"며 "개인전 우승도 욕심내고 싶다"고 했다.

◇풍부한 경험을 지닌 리더 이성진

최현주와 함께 양궁 단체 7연패(連覇)를 이룬 이성진(27·전북도청)은 그동안 자신을 괴롭히던 부상을 극복하고 2004년 아테네올림픽(단체 금, 개인 은메달)에 이어 8년 만에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05년 세계선수권 개인·단체 2관왕으로 전성기를 보냈던 이성진은 2007년 오른쪽 어깨 부상으로 은퇴까지 고려하다 다시 태극마크를 달아 국제 경험이 부족한 한국 여자 양궁 대표팀의 정신적 리더 역할을 했다.

이성진은 "이번이 마지막 올림픽이라고 생각하고 나섰다"며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했는데 금메달로 다 털어낸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