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환, 자유형 200m 올림픽 2개대회 연속 은메달]
라이벌 쑨양과 공동 2위 - 150m 턴 돌 때 아넬 보며 '금메달 물 건너갔구나' 생각
3일 자유형 1500m 도전 - 올 14분47초38 한국신기록… 쑨양 이어 랭킹 2위 기록

자유형 400m 은메달, 200m 은메달. 아직 1500m도 남았다.

박태환(23)이 31일(한국 시각) 런던 아쿠아틱스 센터에서 열린 런던올림픽 수영 남자 자유형 200m 결선에서 중국의 쑨양(21)과 1분44초93으로 똑같이 터치패드를 찍어 공동 은메달을 땄다. 금메달은 프랑스의 야닉 아넬(1분43초14)이 차지했다.

박태환은 29일 자유형 400m에서 '예선 실격 판정 후 번복' 소동에 휘말리면서도 결선에서 값진 은메달을 땄고, 200m 역시 세계 정상급임을 입증했다. 올림픽 자유형 200m에서 공동 메달이 나오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2000 시드니올림픽 때 남자 자유형 50m에서 미국의 게리 홀 주니어와 앤서니 어빈이 공동 1위(21초98)를 한 적이 있었다. 박태환은 3일 오후 6시 24분부터 시작하는 자유형 1500m 예선(3조 5번 레인)을 통과할 경우 5일 오전 3시 36분 결선에서 메달에 도전한다.

◇"메달만으로도 좋아"

박태환은 자유형 200m 결선을 앞두고 마음을 비웠다. 단거리인 이 종목에 워낙 강자가 많아 메달을 장담할 수 없었다. 더구나 우승을 기대했던 400m에서 실격 파동으로 기량을 100% 발휘하지 못한 안타까움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인터넷을 하다 외국 도박사들이 자신을 5위로 예상했다는 기사를 보곤 '4등을 하든 3등을 하든 최소한 5등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3번 레인에서 출발한 박태환은 전반 100m를 2위로 마쳤고, 150m 구간은 3위로 밀렸다. 이미 아넬은 훨씬 앞에서 치고 나가고 있었다. 스퍼트를 시작한 박태환은 50m를 남겨두고 2위로 치고 올라가 공동 2위로 레이스를 마쳤다. 2008 베이징올림픽에 이어 2연속 올림픽 은메달이었다.

박태환은 200m 경기 후 "사실 아넬, 쑨양, 록티가 메달 싸움을 할 줄 알았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감독님(마이클 볼)이 제 기분이 가라앉은 걸 알고 '훈련한 만큼만 하면 된다'고 마지막까지 기운을 북돋워줬다"면서 "감독님 말씀이 힘이 됐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 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박태환은 공동 2위라는 결과에도 만족스러워했다. 그는 "색깔이 금은 아니지만 올림픽 메달을 걸 수 있어서 좋다"면서 "공동으로 시상대에 올라간 것이 처음이라 뜻깊은 것 같다"고 말했다. 박태환은 또 "150m 턴을 하는데 아넬이 저 멀리 가 있어서 '금메달은 물 건너갔구나' 생각했다"면서 "너무 힘들어 마지막 5m는 정말 못 가겠더라. 똑같이 해도 쑨양이 저보다 신체가 크니까"라고 농담을 하는 여유도 보였다. 자유형 400m 우승자였던 쑨양은 키(198㎝)가 박태환보다 15㎝나 크다. 자유형 200m 금메달리스트 아넬의 키는 202㎝다.

◇'또 다른 전설'을 향해

박태환은 이번 런던올림픽에서 은메달 두 개를 걸었다. 2008 베이징올림픽 금 1, 은 1개에 이어 한국 남자 선수로는 처음 하계 올림픽에서 2연속 두 개의 메달을 땄다. 그가 5일 자유형 1500m에서 입상하면 하계 올림픽 단일 대회에서 메달 세 개를 따는 첫 번째 한국 선수가 된다.

그뿐만이 아니다. 박태환은 단일 올림픽 남자 수영 200m·400m ·1500m에서 모두 메달을 따는 진기록에도 도전한다. 지금까지 이 세 종목에서 모두 메달을 건 선수는 대니얼 코왈스키(호주·1996 애틀랜타올림픽)뿐이었다. 현대 수영에서 단거리인 200m와 중거리인 400m, 장거리인 1500m를 섭렵하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다.

박태환의 1500m 메달 가능성은 큰 편이다. 그는 올해 2월 호주 시드니대회에서 14분47초38의 한국신기록을 세웠다. 본인이 2006년 12월 카타르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며 세웠던 종전 한국 기록(14분55초03)을 7초65 앞당겼다. 그는 도하 아시안게임 때 아시아 선수로는 사상 처음으로 자유형 1500m의 15분 벽을 깼다.

이후 한동안 기록 단축엔 실패했다. 2007, 2009 세계선수권과 2008 올림픽엔 결선에 오르지 못했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선 중국의 신예 쑨양에 26초, 거리로는 50m쯤 뒤진 15분01초72로 은메달을 따는 데 만족했다.

박태환은 패배를 받아들였다. 1500m는 실전에 참가하지 않고 400m 레이스에 필요한 지구력 강화 훈련의 하나로 삼았다. 작년 상하이 세계선수권대회 1500m는 나서지 않았다. 당초 런던올림픽 1500m 역시 포기하려고 했다. 하지만 대한수영연맹 측의 권유를 받아들여 마음을 바꿨다.

박태환의 14분47초38은 2012시즌 세계 랭킹으로 따져도 쑨양(14분42초30)에 이어 2위이다. 쑨양은 작년 상하이 세계선수권에서 세계 기록(14분34초14)을 세운 강자이다.

쑨양과 박태환이 다시 한 번 시상대에 설 경우 세계 수영사의 한 페이지를 새로 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