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與의 安 폄하는 자기 위안일 뿐 정치현실 실망이 안 원장 부각
변화 바라는 사람 늘어날수록 '安 부정'은 트집잡기로 비칠 것
정책 경쟁하는 긍정적 전략을… 특정 인물 과잉 기대는 위험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는 연말 본선의 가장 큰 장애물을 "자신과의 싸움"으로 꼽았다. 이 말은 비장하지만 절반만 맞았다. 박 후보가 스스로를 바꾸는 데 성공해도 더 높은 산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범야권 단일 후보가 될 가능성이 큰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존재다. 안 원장이 박 후보를 추월한 최근 여론조사는 안철수 현상이 우리 시대의 도도한 흐름임을 웅변한다.

새누리당과 보수 쪽에선 안철수 열풍을 두고 마음이 너무 불편하다. 그리하여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안철수는 없다!"고 외친다. 대선 출사표인 '안철수의 생각'이라는 책에 대해 '대학 신입생 수준'이라 폄하하면서, 실체가 모호한 '구름당 당수'가 정치를 예능화(藝能化)한다며 안 원장을 비난한다. '성인(聖人)인 척하면서' 젊은이들의 멘토 자리를 꿰찬 안 원장 검증이 본격화하면 '한 방에 휙 갈 것'으로 이들은 기대한다.

그러나 집단적 자기 위안이자 '긍정적 착각'인 '안철수는 없다' 담론에는 힘이 실리지 않는다. "국민들의 갑갑함을 풀어주지 못하는 정치현실에 대한 실망이 저에 대한 기대로 모아진 것"이라는 안 원장의 말이 오히려 안철수 현상의 핵심을 짚고 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과 한국 보수 주류(主流)의 이미지는 안철수라는 이름의 상징자본이 가리키는 긍정적 가치와는 거리가 멀다는 게 시중의 통념이다. 깨끗한 성공, 공공성에 대한 헌신, 따뜻한 소통의 리더십 같은 안철수적 가치를 결여한 쪽의 안철수 비판에 무게가 실리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이다.

안 원장의 위선에 대한 고발도, "그럼 당신은 안철수 정도의 삶을 살아봤어?"라는 대중의 반발 앞에 무력화될 가능성이 크다. 지난 서울시장 선거에서도 박원순 당시 후보에 대한 검증은 선거 구도를 흔들지 못했다. 대선에선 서울시장 선거와는 비교하기 어려운 정치적 에너지가 폭발한다. 2012년 버전의 '못살겠다, 갈아보자'라는 정치적 태풍이 한국을 강타할 때 대안으로 떠오른 안 원장의 이런저런 흠결들은 묻히기 십상이다. 뭔가 바뀌어야 한다고 믿는 시민이 늘어날수록 '안철수는 없다' 담론은 한심한 꼬투리 잡기로 여겨질 것이다.

일반적인 '안철수는 없다' 담론보다 훨씬 진지한 안철수 비판은 정당정치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에서 나온다. 정치와 공직 경험이 전무한 백면서생(白面書生)이 일으킨 바람이 정당 정치의 싹을 자를 수 있다는 걱정이다. 그러나 안 원장이 범야권 단일 후보가 되면 민주당을 비롯한 반(反)새누리 정당들과 동행하면서 정당 정치에 편입될 게 분명하다. 정당의 도움 없이 국정 운영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지지율이 계속 높아지는 안 원장의 독자 완주(完走) 시나리오는 '역사를 거스르는 새누리당 세력의 확장'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힌 그로선 선택 불가능하다. '박근혜·안철수·민주당 후보'의 3자 경합이 박근혜의 필승 구도인 까닭이다.

전체적으로 '안철수는 없다' 담론의 설득력은 크지 않다. 따라서 박근혜 후보는 '안철수는 없다' 패러다임 대신 '안철수는 있다'를 전제하고 나아가야 한다. 상대방의 흠과 약점을 부각하는 네거티브 전략에서 정책과 비전을 경쟁하는 포지티브 전략으로 이행해야 하는 것이다. 패러다임 전환의 필요성은 야권에도 해당한다. 야권 전략의 출발점이 '박근혜는 있다'가 되어야 진정한 정치 발전이 가능하다.

강준만 교수는 '증오의 종언'을 이끌 적임자라며 안 원장을 지지한다. 도올 김용옥은 안철수 현상이 "고난에 빠진 민중이 어찌해볼 도리가 없이 내는 처절한 소리"라며 "대선 결과에 따라 민족사에 비약과 비극이 엇갈릴 것"이라 절규한다. 하지만 증오의 시대를 끝낼 정치판의 메시아이자, 민족사를 비약시킬 정치적 미륵불에 안 원장을 비유하는 건 박 후보를 우리 시대의 잔 다르크로 기리는 것만큼이나 터무니없을 뿐 아니라 해롭기까지 한 일이다.

정치적 반대 세력의 선동과는 달리 '안철수와 박근혜는 있다'. 그러나 21세기에 한 지도자가 대한민국의 운명을 만들거나 허문다는 그림은 시대착오적이다. 민생고(民生苦)로 얼룩진 노무현과 이명박의 시대에조차 나라의 기틀은 흔들리지 않았다. 사회 시스템과 시민의 힘 덕분이다. 영웅적 리더십이 국가의 명운(命運)을 결정한다는 영웅사관(英雄史觀)은 성숙한 시민민주주의를 모독한다. 분명 '안철수는 있지만', 정치적 영웅에 대한 과잉 기대는 한국 민주주의를 위협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