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택식 전 서울시장]
경제 관련 부처 반대에도 추진, 건설기간 내내 공사현장 누벼 '두더지 시장'이란 별명 붙어
여의도·영동지구·잠실 개발… 어린이대공원도 그의 업적

양택식(88) 전 서울시장이 13일 별세했다. 양 전 시장은 경남 남해 출신으로 서울대 화학공학과와 오하이오주립대 대학원을 마쳤고 경상남도 부지사, 내무부 기획관리실장, 철도청장, 경상북도 지사 등을 거쳐 1970년 4월 15대 관선(官選) 서울특별시장으로 부임해 4년간 일했다. 이후 대한주택공사 사장, 동서석유화학 대표이사 회장을 역임했다. 양 전 시장과 함께 서울시에서 기획관리관과 도시계획국장·내무국장 등을 역임한 손정목 서울시립대 명예교수는 그를 '충직한 일꾼'이자 '재임 기간 엄청나게 많은 일을 한 우직한 집념의 사나이'로 기억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1966년 내무부 기획관리실장이었던 그를 철도청장으로 발탁했고, 철도청장에 부임한 지 1년여 만에 경북도지사로 기용할 정도로 신임했다. 철도청장 시절 디젤기관차 도입을 주도한 바 있다. 양 지사는 경부고속도로 건설로 잘려나간 돌산에 제비집과 같은 모양 구멍인 '연소공(燕巢孔)'을 뚫어 나무를 심는 현장을 몇 달간 진두지휘했고, 박 대통령은 이런 충직함에 감탄했다고 한다.

1970년 4월 서울시 마포구 와우아파트 붕괴 사고로 김현옥 시장이 물러나자 박 대통령은 양 지사를 서울시장에 임명했다. 양 시장은 가장 먼저 지하철을 뚫는 데 힘을 쏟았다. 전임 김 시장이 전차(電車)를 다 없애버려 대중교통 수단이 버스만으로는 부족하다는 판단에서였다. 철도청장을 지낸 양 시장에게 서울 교통난(難)을 해소하는 가장 좋은 대안은 지하철이었다. 그는 공사비를 걱정하는 경제 관련 부처 반대를 무릅쓰고 이를 추진했다. 일본에서 차관까지 들여와 지하철 건설을 밀어붙였다. 시장 부임 50일 만에 서울시청 안에 '지하철 건설본부'를 설치했고, 지하철 1호선은 착공 3년여 만에 개통했다. 서울시 공무원들은 그를 "일밖에 모르는 사람이었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일로 일관했고, 주말과 밤낮도 없었으며 도대체 사생활이란 것이 없었던 사람"이라고 전했다. 지하철 건설 기간 내내 공사현장을 누벼 '두더지 시장'이란 별명도 얻었다.

양 시장은 여의도 시범아파트를 지어 서울시 재정난을 해결하려 노력했고, 분양이 지지부진하자 직접 시범아파트 선전 전단을 들고 길거리에서 분양 홍보에 나서기도 했다. 서울시는 당시 남산 1·2호 터널과 한강강변도로 건설, 여의도 개발 등으로 재정이 부족했고, 이를 여의도 시범아파트로 타개하려 했으나, 와우아파트 붕괴 여파로 분양이 생각보다 저조한 상황이었다. 이후 그는 지금의 강남에 해당하는 영동지구와 잠실 개발에도 앞장섰다. 서울 능동 골프장이 어린이대공원으로 조성된 것도 양 시장 때 일이다. 강덕기 전 서울시장은 그를 "주택 건설에 정열을 쏟았고 지금도 기억나고 존경하는 인물"이라고 평했다. 1975년 대한주택공사 사장을 맡아 1980년까지 일했고, 1981년부터 1986년까지 동서석유화학 회장을 지냈다. 양 전 시장은 월남 금관훈장과 청조근정훈장 등을 받기도 했다. 유족은 부인 이정화씨와 양원용 경희대 의대 교수 등 2남3녀가 있다. 빈소는 경희의료원, 발인은 15일 오전 7시. (02)958-95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