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돌담길 '18년 터줏대감' 조각가가 지켜 본 불법 농성촌 6개월
경찰·공무원이 철거하려 하자 자기들 목에 칼 대며 '자살협박'
막무가내로 나오니 못 당하더라
행인이 물건 치워달라 하자 우르르 나와 삿대질하고 욕설
이렇게 놔뒀다간 돌담길이 저 사람들 차지가 될 거다

조각가 조규현(43)씨는 서울 덕수궁 대한문 옆 돌담길의 터줏대감이다. 교통사고로 잘린 오른 손목에 조각 망치를 동여매고 18년째 매일같이 대한문 앞에서 조각을 한다. 조씨는 일주일에 하나꼴로 만드는 작품을 10만~20만원에 팔아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어렸을 때 서울시청사 뒤편 마을에서 신문팔이를 하며 성장한 터라 시청역 주변은 조씨에겐 고향이나 마찬가지다. 18년째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조씨는 올해 초부터 일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대한문 앞에 들어선 농성촌 때문이다. 13일 오후 조씨는 대나무에 '남을 정복하려고 하기 전에 자신을 생각하고, 미래를 바라보며 과거를 잊지 않게 하소서'라는 문구를 새기고 있었다.

지난 6개월 동안 농성촌을 지켜봐 온 조씨에게 대한문 앞의 변화상에 대해 들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천막 농성을 처음 본 게 언제인가.

"올해 4월쯤부터다. 원래 농성집회하는 사람들이 가끔 대한문 앞에 텐트를 칠때가 있었는데 짧으면 2~3일, 길면 일주일이면 끝났다. 그래서 이번 농성이 이렇게 길어질지 몰랐다. 처음엔 텐트도 아주 작았다. 영정사진 한두 개 안치해 놓을 수 있는 작은 빈소처럼 꾸며졌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대형 텐트로 교체되더라. 그러더니 쌍용차 텐트 옆에 용산참사 유가족들, 그 옆에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자들까지 대형 텐트가 줄줄이 세워졌다. 원래 내가 대한문 바로 옆에 있었는데 어찌하다 보니 이렇게까지 (약 30m) 밀려났다."

―거리를 걷는 시민 반응은 어땠나.

"말도 못한다. 덕수궁이 매주 월요일에 문을 닫는데, 그날은 아주 난리 굿이다. 스피커로 각종 정치구호를 외친다. 스피커 빵빵 터뜨려서 고막이 찢어질 거 같다. 소음도 소음이지만 스피커 작동을 위해 돌리는 발전기가 기름으로 때는 거라서 기름 타는 냄새가 심하다. 거기에 텐트 안에 있는 사람들이 담배를 뻑뻑 피운다. 나는 담배 연기만 맡아도 기침이 나는 사람인데 옆에서 이러고 일하려니까 아주 죽을 맛이다. 담배 냄새는 물론이고 꽁초가 주변에 어지럽게 널려 있기 일쑤다."

―이전과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

"불법주차도 심각한 문제다. 대한문 바로 앞에 장애인과 노약자를 위한 시청역 엘리베이터가 설치돼 있다. 특히 장애인들은 근처에 차를 주차한 뒤 내려서 휠체어 타고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보면 알겠지만 도로 설계도 아주 섬세하게 돼 있다. 주차에 용이하게끔 인도 쪽으로 살짝 팼지 않나. 근데 이 사람들이 천막 텐트 바로 앞이니까 24시간 차를 세운다. 장애인이고 노인이고 전혀 엘리베이터 이용을 못 한다."

―경찰이나 구청 직원은 못 봤나.

"5월인가, 그때 정말 철거를 할 뻔한 적이 있다. 경찰들이 버스 2~3대 끌고 오고 공무원들도 같이 나와서 다 치울 뻔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한 열댓 명이 함께 빙 둘러 자기네들끼리 원 모양으로 서더니 목에 칼을 들이대며 협박하더라. 이거 치우면 자기들 다 자살할 거라고. 그런 식으로 막무가내로 나오니까 아무도 당해낼 수가 없다. 또 지나가는 몇몇 시민이 '피해가 될 수 있으니 좀 치우는 게 좋지 않으냐'고 한마디 하면 텐트 안에 있는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와서 삿대질하고 욕설하고 난리도 아니다. 아주 이 담벼락을 다 자기네 거로 만들 생각인 것 같다. 무시무시하다. 이거는 아무도 손을 못 댄다. 지금 같아선 영원히 이러고 있을 것 같다."

―농성촌 때문에 본인 삶도 달라졌나.

"내 꿈은 언젠가 서울시나 청와대에서 작품을 기증하고 전시회를 하는 거다. 나는 여기서 조각을 하지 못하면 죽는 사람이다. 내가 손이 이렇게 됐지만 조각하는 기쁨과 행복, 그리고 오랫동안 덕수궁 앞을 지키면서 쌓아온 추억으로 살고 있다. 여길 빼앗기면 나는 죽는다. 옛말에 쥐가 닭 잡아먹을 때 겨드랑이부터 파먹는다는 얘기가 있다. 쥐가 겨드랑이부터 살금살금 먹으면 닭이 결국 잡아먹힌다는 건데 이 텐트가 딱 그 꼴이다. 처음에 작은 텐트 하나로 시작한 게 지금 이렇게 규모도 커지고, 또 온갖 전문시위꾼이랑 정치꾼들까지 달라붙어서 난리도 아니다. (갈고리를 동여맨 오른팔을 들어 보이며) 겨드랑이를 (텐트를 가리키며) 쟤네가 파먹고 있는 거다. 이렇게 놔뒀다간 아마 이 돌담길 전체가 분명히 저 사람들 차지가 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