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소비자운동의 대모(代母)'로 불렸던 정광모(84) 한국소비자연맹 명예회장이 12일 노환으로 자택에서 별세했다.

1929년 서울에서 태어난 고인은 이화여중·고와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를 나와 1951년부터 평화신문과 서울신문, 한국일보 등에서 언론인으로 일했다. 여기자로선 처음으로 청와대(당시 경무대)에 출입하기도 했다.

고인은 1968년 여기자클럽 회장 자격으로 일본을 방문했을 때 소비자운동을 처음 접했다. 소비자 권익 개념이 없던 한국에도 소비자운동이 필요하다고 느낀 고인은 2년 후인 1970년 한국 최초의 소비자운동 민간단체인 한국소비자연맹을 창립했다. 1979년 소비자연맹 회장이 된 고인은 이듬해 한국일보를 퇴직하고 최근까지 회장으로 재직하며 소비자운동을 펼쳤다.

고인의 트레이드 마크는 빨간 옷차림과 은발이었다. 불량 기업과 악덕 상인에게 '경고'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빨간 옷을 즐겨 입었다. 기업가들 사이에서 "흰 머리의 여인을 조심하라"는 말이 돌았을 정도로 은발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1979년부터 지난달 24일까지 34년간 소비자연맹 회장을 지냈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회장도 4차례 역임했다. 평생 미혼으로 살았던 고인은 "나는 챙길 가족이 없으니 부담이 없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며 소비자 운동에 온전히 헌신했다. 1996년 '소비자 보호의 날'(12월 3일)을 제정하는 데도 기여했다. 그해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소비자 운동 외에도 대한에이즈예방협회장, 한국에이즈 예방재단 이사장, 아시아·태평양 금연협의회장 등을 역임하며 에이즈 예방과 금연 운동에도 열정을 쏟았다.

국내 소비자단체는 43년간 소비자 운동에 헌신한 고인의 공로를 기리기 위해 국내 최초로 장례를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장으로 치르기로 했다. 김연화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장 등 10개 소비자단체 회장이 공동장례위원장을 맡을 예정이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31호실. 발인은 15일 오전 7시. 장지는 충북 음성군 꽃동네다. (02)2258-59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