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새로운 과제: 착한 성장, 똑똑한 복지]
콘퍼런스 참석하는 '노벨경제학상' 토머스 사전트 前뉴욕대 교수 인터뷰

"정부 주도의 경제체제는 도리어 상황만 악화시킬 뿐… 北 봐라, 核밖에 더 만들었나
한국, 지금의 성장 이룬 건 고급 인력과 자유경쟁 덕분… 창조경제도 정부 개입 줄여야"
"애플, 삼성에 특허소송 걸자 화가 나서 쓰던 아이폰 바꿨다
특허 독점주의, 결국 족쇄될 것"

지난 15일 오전 11시 서울대학교 멀티미디어 강의동 604호 강의실. 옅은 베이지색 면바지에, 진회색 후드 티를 걸친 편안한 차림으로 2011년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토머스 사전트 교수가 나타났다.

이날 수업은 경제학 박사과정생을 대상으로 하는 '거시경제학 특수연구' 강의였다. 내용이 어렵기로 소문난 탓인지, 50명 규모의 수업인데 실제 수강생은 27명뿐이었다. 사전트 교수는 영어 단어 하나 없이 수학 공식으로만 칠판을 채워나갔다. 강의실 뒤편에 칠판이 3개나 있었지만 10개도 넘는 수학 공식을 쓸 여백이 부족해 벽 뒤에 숨은 칠판까지 꺼내 사용했다.

2002년부터 10년간 뉴욕대에서 강의하던 사전트 교수가 2013년도 1학기에 서울대에서 강의하고 있다. 서울대 측은 사전트 교수를 모셔오는 데 연봉과 연구비 등 총 비용을 15억원가량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전트 교수는 조선일보 주최로 오는 26~27일 서울 쉐라톤그랜드워커힐 호텔에서 열리는 '제4회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에 참가해 첫째 날 오후 세션에서 청년실업 문제의 진단과 해법을 놓고 귄터 슈미트 독일 베를린사회과학연구소 명예교수와 토론을 벌인다. 그와의 인터뷰는 지난 2월 뉴욕, 그리고 지난 15일 서울대에서 각각 진행됐다. 올해 칠순을 맞는 세계적 석학은 근엄해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소탈하고 유쾌했다.

―서울대와 뉴욕대 학생들에게 각각 강의해보니 어떤가요?

"서울대 학생들이 더 진지합니다. 다만 수업 시간에는 질문도 거의 안 하다가, 수업 끝난 뒤에 물어오거나 이메일로 질문을 보내옵니다. 훌륭한 질문이 많은데, 가급적 수업 시간에 질문하도록 유도하려고 합니다."

―강의가 어렵다고 판단해서인지 학생이 많지 않은데요.

"제 강의가 좀 어렵습니다. 뉴욕대에서도 같은 강의를 했는데 수강생이 4명뿐이었어요. 그때보다는 지금이 훨씬 낫지 않나요?"

사전트 교수는 '수학은 경제의 언어'라며 강의 내용을 모두 수학 공식으로 풀어낸다. 미국 대학생들 사이에서도 무척 어려운 강의로 통한다.

그는 평생 연구해온 '합리적 기대가설론'과 관련해"경제를 호전시키기 위한 대부분의 정부 개입은 도리어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라고 말했다.

―한국은 정부 주도로 성장을 이뤘는데 교수님 이론과는 정반대 아닌가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국이 지금의 성장을 이룬 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교육제도와 자유경쟁 체제 덕분이지, 직접적인 정부 개입의 효과는 아니에요. 한국의 젊은이들은 대부분 고등학교를 마칩니다. 고급 인력이 넘쳐나죠. 이게 바로 한국이 세계 15위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이유지요."

사전트 교수는 잠깐 말을 멈추고 주머니에서 삼성의 최신 휴대전화인 갤럭시노트2를 꺼내 보였다. "이 창의적인 기계를 보세요. 창의적인 교육과 끝없는 경쟁 없이는 이런 훌륭한 물건을 만들 수 없어요." 작년까지만 해도 애플의 아이폰을 사용했다는 그는 애플이 특허권을 주장하며 삼성에 소송을 걸자 화가 나서 갤럭시노트2로 바꿨다고 한다.

"애플의 특허 독점주의는 결국 애플을 묶는 족쇄가 될 겁니다. 자유경쟁만큼의 효율을 낼 수가 없어요. 한국 정부가 말하는 '창조 경제'도 이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짜 창조적인 경제를 만들려면 자유경쟁 체제를 마련하는 게 필수입니다."

그는 또 한국 사회의 심각한 문제인 청년실업에 대해서도 "가장 효과적인 청년실업 대책은 교육제도를 개편하는 것이지, '청년인턴제'와 같은 정부 정책은 장기적으로 별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사전트 교수는 정부 주도 경제정책의 폐해 사례로 북한을 꼽았다. "정부 주도의 경제체제는 그 사회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기도 합니다. 북한을 보세요. 대체 정부가 만들어낸 게 뭐죠? 바로 핵폭탄입니다."

☞토머스 사전트 교수는

거시경제학의 '합리적 기대가설'을 발전시킨 공로로 동료 학자 크리스토퍼 심스 프린스턴대 교수와 함께 2011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합리적 기대가설론'은 정부가 어떤 정책을 발표하든 간에 시장이 그 상황을 먼저 이해하고 움직이기 때문에 정부가 막상 정책을 도입했을 때는 효과를 거의 발휘하지 못한다는 이론이다. 사전트 교수는 UC버클리를 졸업하고 하버드대에서 경제학박사 학위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