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대래 공정위원장 "기득권 이용한 반칙 행위 바로잡겠다"]

- 경제 민주화 속도 조절
기존 시스템 모두 부정하면 저항과 갈등 때문에 발전 못해
기업활동에 지장 생기지 않게 꼭 필요한 부분부터 고칠 것

- 혁신 경쟁 막는 네이버
대기업식 일감 몰아주기로 경쟁자 진입 못하게 막아
담합 행위보다 더 심각… 경제발전에도 큰 걸림돌

노대래 공정거래위원장은 경제 민주화의 주무 부처 장관으로서 공정거래위원회의 입장만을 강변하지 않고 우리 경제의 최대 현안인 경제 활성화에 부담을 주지 않도록 경제 민주화 정책의 속도를 조절하겠다는 소신을 밝혔다. 그의 이런 소신은 "경제가 활성화돼야 경쟁도 촉진될 수 있다"는 주장에 잘 압축돼 있다. 하지만 기업의 부당한 반칙 행위는 철저히 뿌리를 뽑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노 위원장은 "기득권을 이용해 경쟁자를 밀어내는 기업들과 인터넷 포털 사업자의 불공정 행위는 반드시 바로잡겠다"고 했다. 취임 100일을 맞은 노 위원장과의 인터뷰는 지난 2일 오후 서울 남대문로 공정거래조정원에서 1시간30분가량 진행됐다.

◇"경제 없이는 경쟁도 없기 때문에 경제 활성화가 우선이다"

―경제 민주화가 아직도 뭔지 모르겠다는 사람들이 많다.

"부당한 활동에 정당하지 못한 이익이 돌아가서는 안 되고, 경제적 약자도 시장에 참여해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자는 게 경제 민주화다. 반대로 말하면 부당한 활동을 통해 정당치 못한 부(富)를 쌓는 것을 막자는 것이다. 보통 사람은 얻기 어려운 목 좋은 곳에 대기업이 총수 일가의 빵집을 열게 하는 것은 정상적인 시장 활동이 아니다."

―경제 민주화와 경제 활성화 중에 어느 쪽에 비중을 둬야 하나.

"경제가 먼저 활성화돼야 경쟁도 촉진된다. 경제 없이 경쟁 없다. 그게 기본 아닌가. 경제 민주화가 중요하지 않은 게 아니라 지금 시점에선 경제 활성화가 더 중요하다는 얘기다. 이런 말을 국회의원들한테 했다가 혼쭐이 났다. 경제부총리가 할 얘기를 공정거래위원장이 떠드냐고 하더라(웃음). 다만 경제를 살린다고 해서 불공정 행위를 방관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경제 민주화는 계속 추진하되 속도와 내용은 관계 부처와 협의해 조절하려고 한다."

-공정위가 경제 활성화를 위해 도울 수 있는 게 뭐가 있나.

"경제 민주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정상적인 기업 활동에 지장이 생기지 않도록 수위를 조절하는 것이다. 각종 규제 제도를 한꺼번에 강화하면 (기업이나 사회가) 적응하는 데 비용이 엄청나게 들어간다. 기존의 시스템이 정착돼 있는데 이를 모두 부정하면 저항과 갈등 때문에 발전할 수 없다. 그런 접근은 틀렸다. 기존 시스템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보다는 개선이 꼭 필요한 부분부터 고쳐나가는 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정치권 일각에선 기존 순환 출자도 해소해야 한다며 강도 높은 경제 민주화를 요구하는 주장도 있다.

"기존 순환 출자도 해소시켜야 한다는 의원들을 계속 설득했다. 기존 순환 출자를 해소하려면 돈이 한두 푼 필요한 게 아니다. 돈을 마련하려면 오너가 기업을 포기하든지 투자를 안 하든지 택일해야 한다는 걸 이야기했다. 그래서 신규 순환 출자만 금지하는 쪽으로 얘기가 됐다. 사생아(기존 순환 출자)를 더 이상 낳아서는 안 되지만 이미 낳은 사생아를 죽이려고 하면 되겠는가."

―공정위가 경제 민주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오락가락했다는 비판도 있는데.

"총수 지분율이 30%를 넘는 계열사의 부당 내부거래는 총수가 관여한 것으로 추정한다는 이른바 '30%룰'과 관련해 오해가 있었다. 그 건은 내가 취임하기 전에 위원장이 공석이 상태에서 실무자들이 검토하던 방안으로 공식 입장은 아니었다. 위헌 시비에 휘말릴 소지가 다분해서 청문회 때부터 추진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얘기했다."

◇"네이버가 현대판 일감 몰아주기 하고 있다"

―요즘 네이버를 비롯한 인터넷 포털의 불공정 행위를 조사하고 있는데.

"과거엔 카르텔(담합)이 경쟁정책의 최고 이슈였다. 하지만 지금은 새로운 혁신 분야를 선점해서 다른 사람이 못하게 배제적인 행위를 하는 것이 카르텔보다 더 심각한 문제다. IT(정보기술)처럼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높은 분야에서 혁신적인 경쟁을 배제하는 행위는 경제 발전에도 큰 걸림돌이 된다."

―포털이 혁신 경쟁에 걸림돌이 된다는 얘기인가.

"그렇다. 네이버는 경쟁자를 배제하는 행위를 하고 있다. 외줄타기를 하게 만들어놓고 줄을 자꾸 흔들어서 다른 사람이 타지 못하게 한다. 시장을 선점해 이익을 얻을 수는 있지만 기득권을 활용해 다른 사람들의 진입을 봉쇄해서는 안 된다. 그런 원리에서 보면 네이버가 하는 일이 현대판 일감 몰아주기다. 일부 대기업이 친·인척 계열 회사를 통해서 일감을 몰아주는 것처럼 (네이버가 다른 사업자를) 배제하는 행위를 해서 일감을 자기네로 몰아가는 게 비슷하지 않은가."

―구체적으로 네이버의 어떤 행위가 경쟁을 저해하나.

"네이버의 비즈니스 프랙티스(영업 관행)는 정상이 아니다. 검색 지배력을 남용해서 자사 서비스만 상위에 노출시키는 것은 경쟁 업체를 배제하는 행위다. 검색 결과를 보여줄 때 광고와 검색을 명확하게 구분 안 한 것도 기만적인 고객 유인행위다."

-네이버를 운영하는 NHN이 1000억원 규모의 상생펀드를 조성하겠다며 독과점에 대한 대책을 내놓지 않았나.

"우리는 공정한 거래를 하는지 여부를 들여다볼 뿐 그쪽에서 돈을 얼마 내겠다는 것에는 관심 없다. 플랫폼(네이버)에서 개방성을 높이고 배타적인 행위를 줄여가는 것이 나와줘야 개선이다."

☞노대래 공정위원장은…

노대래 공정거래위원장은 행정고시 23회로 공직에 입문, 기획재정부에서 정책조정국장, 기획조정실장, 차관보를 지냈다. 기관장은 조달청장, 방위사업청장에 이어 공정거래위원장이 세 번째다. 그는 박근혜 정부 첫 공정거래위원장으로 내정됐던 한만수 후보자가 탈세 의혹으로 낙마하자 구원투수로 발탁됐다. 정통 경제 관료 출신인 그는 취임 후 대기업 총수 지분이 30%를 넘을 경우 부당내부거래를 총수가 지시한 것으로 추정해 증여세를 부과하려 했던 공정위 내부의 움직임에 제동을 거는 등 경제 민주화 정책을 추진하되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