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욱 前 흥사단 이사장 별세

"그가 먼저 돌아가니 날갯죽지 하나가 떨어져 나간 기분입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하에서 국민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걱정하는 일은 이제 나 혼자 해야겠네요." 안병욱 선생의 부음을 들은 동갑내기 철학자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는 큰 한숨을 쉬었다.

'한국의 대표적인 지성'으로 꼽히는 철학자이자 수필가 이당(怡堂) 안병욱(安秉煜·93) 전 흥사단 이사장이 7일 오전 지병으로 별세했다. 평남 용강에서 태어난 고인은 평양고등보통학교와 일본 와세다대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1985년 인하대에서 명예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59~1985년 숭실대 철학과 교수를 지냈으며, 사상계 주간, 도산아카데미연구원 고문,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이사 등을 역임했다.

국내에 읽을 만한 철학 교양서가 드물었던 시절, 그는 수많은 저술과 대중 강연을 통해 동·서양 사상의 핵심을 설파하며 우리 사회의 인간성 상실과 가치관 혼란을 지적했다. '현대사상' '철학노트' 등의 철학서를 내며 1980년대 김윤식(서울대)·전규태(연세대) 교수 등과 함께 '학계에서 가장 책을 많이 내는 저자'로 꼽혔다. 1980년에는 그의 에세이 '빛과 생명의 안식처'와 '사랑과 지혜 그리고 창조'가 나란히 베스트셀러 비소설 부문 1·2위로 오르기도 했다.

평생 도산 안창호 선생의 사상을 전하는 데도 힘썼던 그는, 1985년 정년퇴임 고별 강연에서는 "서양적 학문관이 근대 과학기술 발전의 원동력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이제는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토대로 한 수기치인(修己治人)의 동양적 세계에도 눈을 돌려야 할 때"라고 역설했다.

고인과 김형석 교수는 같은 평남 출신으로, '철학의 대중적 전파'라는 점에서 쌍벽을 이뤘다. 지난해 강원 양구군에는 '김형석·안병욱 철학의 집'이 세워졌다.

고인은 국민훈장 모란장(1985)과 도산인상(1998), 인제인성대상(2007) 등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광심씨와 딸 정남씨, 아들 동명(위스텍 사장)·동일(세계보건기구 아시아태평양지역 대표)·동규(한림대 경영대학원장)씨, 사위 강홍빈(서울역사박물관장)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발인은 10일 오전 9시. (02)2072-20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