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신년사서 유화 제스처]

남북 관계 개선하자면서 朴대통령엔 "매국" 맹비난
"유화 발언, 경제지원 유도用" "도발 앞둔 명분 쌓기" 분석도

북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2014년 신년사는 역대 가장 온건하다고 평가됐던 지난해 신년사보다 더 유화적이다. 김정은은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한 분위기 마련'이라는 언급 외에도 신년사의 절반가량을 경제·건설에 할애했다. 남측의 경제 지원을 유도하기 위한 전략적 발언이라는 분석과 함께, 올봄 도발을 앞둔 명분 쌓기라는 관측도 나온다.

◇경제·건설 2년째 강조… 개방은 언급 안 해

김정은은 올해를 '사회주의 강성국가 건설을 위한 비약의 해'로 규정하고 A4용지 12장 분량의 신년사 중 6장가량을 산업과 건설 등 경제 분야에 할애했다. '경제'를 15회, '건설'을 38회 언급했다. 올해는 특히 농업 분야를 강조했다. 김정은은 "경제 건설과 인민 생활 향상을 위한 투쟁에서 농업을 주타격 방향으로 확고히 틀어쥐고 농사에 모든 힘을 총집중해야 한다"고 했다.

김정은은 이와 함께 청천강 계단식발전소, 세포지구 축산기지 건설, 평양시 건설 등을 언급하며 "인민 생활 조건 개선을 위한 건설을 많이 해 자립 경제의 토대를 안겨줘야 한다"고 했다. 올해도 자신의 치적 쌓기용 건설 사업이 계속될 것임을 예고한 것이다. 하지만 경제 특구 건설 등 '개방' 관련 언급은 없었다. 과거와 달리 '절약'을 3회나 언급한 것도 특징이다. 장성택 사건 이후 북중 교역 위축 등으로 인한 경제 사정 악화를 우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남북 관계 개선 언급 왜?

김정은은 지난해 "북남 사이 대결 상태 종식"을 언급한 데 이어 올해는 "북남 관계 개선 분위기 마련"을 말했다. 그는 "화해와 단합을 저해하는 일을 더 이상 하지 말자"고 했다. '미제(美帝)침략군 철수'나 '국가보안법 철폐' 같은 상투적인 주장이 빠졌고, '미제'대신 '미국'이라고 불렀다. 핵(6회)과 선군(3회)도 최소한으로만 언급했다. 통일연구원은 "주변국에 자극적 표현을 삼간 것은 그만큼 북한이 수세(守勢)에 처해 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조봉현 IBK기업은행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북한이 남한과 국제사회로부터 경제 협력을 얻어내기 위한 화해 제스처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유동렬 치안정책연구소 선임연구관은 "도발을 위한 책임 전가용 명분 쌓기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북한은 2010년에도 지방선거를 앞두고 천안함 폭침 사건을 일으켰다"며 "올해도 1~4월 중 국지 도발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정부 관계자도 "남북 관계 개선을 말하며 한편으론 박 대통령을 비방했다"며 "향후 북의 태도를 더 지켜보자"고 했다. 김정은은 박 대통령의 해외 정상회담 시 발언 등을 겨냥해 "민족 문제, 북남 문제를 외부에 들고 다니며 국제 공조를 청탁하는 것은 수치스러운 사대 매국 행위"라고 했다.

◇사상 교육 강화… 체제 불안 반영

김정은은 이날 '사상'이란 단어도 17회나 썼다. 김정은은 "일꾼, 당원, 근로자 속에서 사상 교양 사업을 강화해 언제 어디서나 당의 사상과 의도대로만 사고하고 행동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장성택 처형 이후 유일 영도체계를 강조하면서 내부 통제를 강화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됐다. 김정은은 장성택 처형을 "당 안에 박혀 있던 종파의 오물을 제거한 단호한 결정"이라고 자평했다. 그는 "적중한 시기에 정확한 결심으로 반당 반혁명 종파 일당을 적발, 숙청함으로써 당과 혁명대오가 더욱 굳건히 다져지고 우리의 일심단결이 백 배로 강화됐다"고 했다.

통일연구원은 "김일성이나 김정일에 대한 언급도 크게 줄었다"며 "김정은의 '홀로서기' 신년사라는 의미도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