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2년 12월 국민은행장으로 재직 중이던 김정태 전 행장이 본인의 집무실에서 찍은 사진. /김영훈 기자

-김정태 초대 통합 국민은행장 별세
증권맨서 처음으로 은행장 돼 화제
이익만 추구… 公的 역할 경시 비판도

한국을 대표하는 투자 귀재(鬼才)에서 농사꾼으로 변신해 경기도 일산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던 김정태(67) 전 국민은행장이 2일 오전 세상을 떠났다. 김 전 행장은 심장 부정맥으로 시술을 받은 적이 있는데, 이와 관련해 최근 갑자기 의식을 잃고 끝내 의식이 돌아오지 않아 별세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은행장이던 2003년에도 급성 폐렴으로 큰 고비를 넘겼던 고인(故人)은 평소 신장이 좋지 않아 정기적으로 투석을 하며 건강관리를 해왔다고 한다.

유족들은 생전에 장례식을 검소하게 치르고 싶어한 고인의 뜻에 따라 수의(壽衣) 대신 평소 입던 양복을 입은 채 입관(入棺)할 예정이다.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나 광주일고, 서울대 경영학과를 나온 고인은 조흥은행에 입사해 금융계에 첫발을 내디딘 뒤, 대한투자금융을 거쳐 대신증권으로 옮긴 뒤 4년 만인 34세에 상무가 됐다. 이후 동원증권 사장을 거쳐 1998년 증권맨으로는 처음으로 은행장(당시 주택은행장)에 올라 화제가 됐다. 주택은행장 시절에는 월급을 단 1원만 받고 대신 스톡옵션(주식매수 선택권)을 받아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는 주택은행의 부실 자회사를 과감히 정리하고 직원을 20% 감원하는 등 구조조정에 나섰다. 당시 주택은행 주가가 폭등하자 시중에선 'CEO 주가'라는 신조어도 나왔다. 이어 2001년 11월에는 당시 최대 규모의 기업 M&A(인수·합병)인 국민·주택은행 합병을 주도하며 초대 통합 국민은행장이 됐다.국민은행장 시절엔 9·11 사태로 증시가 폭락했을 때 과감하게 1조원대의 주식 투자를 해 수천억원대의 이익을 은행에 안겼고, 스스로도 주택은행과 국민은행에서 받은 스톡옵션을 행사해 200억원 넘는 차익을 남김으로써 '장사꾼'이자 '투자 귀재'란 별명을 얻었다.

주주 가치 극대화를 내세운 그는 은행영업에 방해가 되면 정부를 향해서도 과감히 노(NO)라고 외쳤지만, 은행 이익만 챙기고 공적(公的)인 역할은 경시한다는 비판도 받았다. 노무현 정부 시절 금융감독위원회가 국민은행과 국민카드의 합병 회계 처리 과정에서 5500억원이 변칙 처리됐다는 점을 문제 삼아 김 전 행장을 중징계했고, 결국 연임에 실패했다. 은행장을 그만둔 그는 부인 최경진씨와 함께 경기 일산으로 이사해 논밭을 일구는 촌부(村夫)로 변신했다. 그는 스톡옵션 행사 등으로 번 돈의 절반 이상을 사회에 기부했다. 은행 이자 수익을 일산 인근 학교 장학금으로 기탁하는 등 사회 환원 활동도 활발히 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최씨와 운식(브로드컴 근무), 운영(구글 근무)씨 등 두 자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 여의도 성모병원 장례식장 특 2호실, 발인은 4일 오전 9시. 장지는 원지동 서울 추모공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