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영한 기자

홍순영 前 외교부 장관

김대중 정부에서 외교통상부 장관·주중(駐中) 대사·통일부 장관을 지낸 홍순영(77)씨가 30일 별세했다.

충북 제천 출신의 홍 전 장관은 충주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1962년 고등고시를 통해 외교관이 된 후 차관보, 주독일 대사, 차관 등을 거쳤다. 1970~80년대 비동맹국가를 상대로 한 외교와 '북방(北方)외교'에서 큰 역할을 했다. 1983년 청와대 정무제1비서관 재직 때 전두환 대통령의 미얀마 방문 수행 중 북한이 저지른 '아웅산 테러'를 당하자 이를 조기에 수습하는 데 기여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 외교부 장관에 임명돼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과 호흡을 맞춰 대북 정책을 입안했다.

홍 전 장관은 국제사회에는 선이 굵은 외교관으로 알려졌으며 선·후배들로부터는 '깐깐한 원칙주의자'로 불렸다. 1984년 안기부가 '외교기밀 누출 혐의'를 이유로 외무부 고위 간부를 '남산(당시 안기부의 별칭)'으로 연행해 치욕을 준 사건이 발생했다. 그러자 홍 전 장관이 외무부 장관 출신의 노신영 안기부장에게 항의한 일이 널리 알려져 있다.

홍 전 장관은 자신의 소신을 지키려다 권력 실세들과 불화를 빚어 외교부·통일부 장관직에서 모두 경질당했다. 그는 1998년 외교부 장관이 된 후 당시 집권층의 인사 청탁을 일절 들어주지 않았다. 자신에게 청탁하는 일부 권력 실세들에게는 면박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당시 집권층의 미움을 받은 끝에 2000년 1월 '7인의 탈북자 송환' 사건이 발생하자 전격 교체됐다. 주중 대사를 거쳐 2001년 9월 통일부 장관에 임명된 홍 전 장관은 북한의 '떼쓰기' 행태를 바로잡으려 했다. 남북장관급 회담에서는 상호주의에 기반한 협상 원칙을 양보하지 않았다. 2001년 12월에는 BBC, CNN방송 인터뷰에서 '북한의 호전세력'을 비판했다. 북한은 즉각 홍 전 장관 교체를 요구했고, 김대중 정부는 2002년 1월 임명 4개월 만에 그를 경질했다. 홍 전 장관은 2000년 반기문 당시 주(駐)오스트리아 대사를 차관으로 발탁해 유엔 사무총장이 될 발판을 마련하게 해줬다는 평가도 받는다.

유족으로 부인 장동연 여사와 2남2녀가 있다. 장남 준표씨는 서울아산병원 의사, 차남 지표씨는 외교관으로 활동하고 있다. 발인은 3일 7시.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02)3010-22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