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 끼쳐 죄송… 잘할 것"]

官街 "출발부터 큰 상처… 연금개혁 어찌 풀지 주목"
황우여·최경환 부총리와 정부內 역학관계도 애매
"대통령이 힘 실어준다면 능력 발휘할 수 있을 듯"

이완구 신임 국무총리는 16일 오후 여의도 국회 밖 모처에서 초조하게 표결을 지켜봤다. 임명동의안이 가결되자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와 조해진 원내수석부대표 등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폐를 끼쳐 죄송하고, 어려운 가운데도 처리되도록 도와줘서 고맙다"면서 "앞으로 열심히 잘해서 꼭 국민께 보답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총리는 이어 정홍원 전 총리가 떠나고 비어 있는 서울 종로구 삼청동 총리 공관으로 향했다. 추경호 국무조정실장 등 총리실 간부들과 추후 일정 등을 협의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청문회 이후 탈진한 탓에 영양 수액 주사까지 몇 차례 맞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총리실 회의에서도 초췌한 얼굴로 "총리를 잘못 만나 고생시켰다. 미안하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고 참석자들이 전했다. 그는 다음 날 청와대에서 열릴 국무회의 회의 안건과 정책 자료 등을 건네받고 도곡동 자택으로 귀가했다.

이 총리는 17일 오전 10시 박근혜 대통령에게 임명장을 받고 국무회의에 참석한 뒤 정부서울청사에서 취임식을 갖는다. 이어 국립서울현충원을 참배하고 중앙재난안전상황실과 경찰청상황실 등을 방문하기로 했다.

이 신임 총리가 힘든 청문회 과정을 넘어 취임하게 됨에 따라, 관가(官街)에서는 "100만 공무원 조직에 대한 장악력이 당초 기대보다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지난달 지명될 때만 해도 총리실 안팎에선 '실세 총리'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그러나 각종 도덕성 의혹에 언론사 회유·외압 논란이 불거지면서 관가는 당혹감에 휩싸였다. 일선 공무원들이 사석(私席)에서 "오래 정치를 하면서 검증된 분으로 알았는데 다소 실망스럽다" "연금개혁, 관피아 척결 등 공직 개혁으로 반발이 큰데 이래서야 총리의 영(令)이 서겠느냐"는 말도 나왔다.

한 전직 장관은 "이 총리의 이미지에 상처가 많이 나서 '대통령에게 직언을 하겠다'거나 '공직 기강을 확립하겠다' 등과 같은 약속이 좀 퇴색할 것 같다"고도 했다.

정부 내 애매한 역학 관계도 넘어야 할 벽이다. 작년 말 총리로 거명될 당시부터 새누리당 대표와 원내대표를 먼저 지낸 황우여 사회부총리와 최경환 경제부총리와의 관계 설정 문제가 거론됐었다. 친박 중진 출신의 두 부총리는 이미 자기 부처는 물론 국무회의 등에서 주도적 목소리를 내고 있다. 간신히 청문회 벽을 넘은 데다 국정 파악에 시간이 필요한 이 총리가 이런 부총리들을 지휘해야 하는 것이다. 청와대에서 총리와 호흡을 맞춰 정부 정책을 조율할 현정택 정책조정수석 역시 행정고시(10회) 선배로, 이 총리(15회)가 청와대 눈치를 보게 되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이 총리의 가장 큰 장점이었던 '국회와의 협조' 역시 지명 당시보다 퇴색했다. 야당과는 청문회에서 감정 대립이 격화된 데다, 여당 신임 지도부도 강한 목소리를 내는 상황에서 그가 당장 힘을 발휘하기 힘들어졌다는 말도 나온다. 한 정부 관계자는 "정부와 여당 어디를 둘러봐도 이 총리가 만만하게 여길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총리의 위상과 역할은 지나간 청문회가 아니라 앞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어떻게 그를 대하고 무슨 역할을 부여하느냐에 달렸다는 분석도 있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는 본지 통화에서 "우리나라에서 총리의 위상은 철저히 대통령이 어떻게 쓰느냐에 달린 것"이라며 "자주 독대를 한다거나 총리에게 현장을 일임하는 제스처만 취해도 이 총리가 장점을 발휘해 정부를 이끌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