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통과한 反부패법 비판]

"본인 이해와 연관된 직무 맡지 못하게 한 규정 빠져
금품 수수 적용 가족 범위… 배우자로 축소한 것도 문제
언론인·사립교원 적용에 놀라… 사회적 합의 없이 급히 확대
違憲이라 생각하진 않지만 언론 자유 지킬 특단 대책을"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법'(일명 김영란법)의 제안자인 김영란(58) 전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은 10일 서강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법안 통과에 대한 입장을 처음으로 밝혔다. 지난 3일 국회 본회의 의결 뒤 일주일 만이다.

그는 자신이 현직에 있던 2012년 8월 발의한 법안이 만 2년 7개월 만에 통과된 데 대해 "처음부터 엄청난 저항에 부딪혔던 법이 여기까지 온 것만도 기적 같은 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원안에서 후퇴한 부분이 있어 '반쪽 법안'만 통과됐다고 생각한다"면서 국회에서 처리된 과정과 내용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김 전 위원장이 로스쿨 교수로 재직 중인 서강대에서 개인 자격으로 연 이날 회견은 취재진 300여명이 몰려 1시간 20분간 진행됐다.

김 전 위원장이 자신의 이름이 붙은 이 법안을 '반쪽'이라고 한 가장 큰 이유는 원안 중 '부정 청탁 금지'와 '금품 수수 금지'만 통과되고 '공직자 이해 충돌 방지' 부분이 빠졌기 때문이다. 이해 충돌 방지는 공직자가 자신 또는 가족 등과 이해관계가 있는 직무를 수행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다. 그는 "(예를 들어) 장관이 자기 자녀를 특채하거나 공공기관장이 친척의 회사에 공사 특혜 발주를 하는 일 등을 방지하자는 것으로, 반부패 정책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고 했다.

또 '100만원 이하 수수 시 직무 관련성이 있어야 처벌한다'는 조항에 대해 "원안은 액수나 직무 관련성에 관계 없이 처벌할 수 있게 했었는데 후퇴한 것"이라고 했다. 금품 수수의 감시를 받는 '가족'의 범위를 당초의 '민법상 가족'에서 배우자로 축소한 데 대해서도 "전직 대통령들의 자녀·형님들이 문제가 됐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특히 선출직 공직자들이 지역구민 등 제3자의 고충 민원을 전달하는 행위를 국회가 '부정 청탁'의 개념에서 제외한 데 대해 "원안에 없던 내용으로, 국회의원 등이 이권과 인사를 청탁하는 '브로커화(化)'를 용인하게 될 수 있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법 적용 대상을 공직자에 한정했던 원안과 달리 국회에서 언론사·사립학교 교원까지 확대한 데 대해 "뜻밖이었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공직자 부분이 2년 넘게 공론화된 데 비해 민간에 대해선 범위와 속도, 방법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준비가 부족한 상태에서 급하게 확대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언론 등은 공공성이 강한 분야여서 (반부패법 적용이) 위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국민 69.8%가 사립학교·언론인이 포함된 데 대해 '바람직하다'고 평했다는 여론조사가 있는 것을 볼 때 과잉 입법이나 비례원칙 위배라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그는 다만 "헌법상의 언론 자유가 침해되지 않도록 특단의 조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통과된 법)에 아쉬운 점은 많지만 시행도 해보기 전에 개정·수정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너무 성급하다"며 "처벌에 집착하기보다 근본적으로 부패 문화를 바꾸는 데 역점을 두어야 한다. 일단 시행하면서 문화를 바꿔보고, 그래도 개선되지 않으면 강화된 조치를 추가하는 것이 순리"라고 말했다.

김 전 위원장은 이날 "법안의 최초 입안자로서 많은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제가 자주 나서서 발언하면 여론을 호도할 우려가 있어 말을 아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면서 "앞으로 '반쪽 법안'이 '전체 법안'으로 통과될 때까지 많은 분이 공론의 장에서 토론해달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