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성 높이고 하소연 하기도… 檢 "기소방침" 자신감]

檢 '해명 듣기'式 조사 진행… 말 허점 파고들기 전략인듯
李, 사과만 하고 조사실로… 수사팀장과는 의례적 말만

14일 '성완종 리스트'에 이름이 오른 정치인 8인(人) 중 두 번째로 검찰에 불려온 이완구(65) 전 총리는 자정 넘게까지 조사를 받았다. 이 전 총리는 조사 내내 "내가 성완종 회장한테 돈을 왜 받느냐"며 혐의를 부인했다. 그는 조사 도중 답답한 듯 언성을 높이기도 했고, 억울한 듯 하소연하는 투로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검찰은 이날 이 전 총리의 부인에도 3000만원이 오갔다는 성완종 전 회장과 이 전 총리 측근들의 진술과 여러 물증을 토대로 이 전 총리 기소 방침을 굳힌 상태다.

지난달 27일 퇴임식에서 눈물을 글썽이며 총리직에서 물러나면서 외부와 접촉을 끊은 지 17일 만에 검찰에 출두한 이 전 총리는 결의에 찬 표정이었다. 하지만 두 달여 전인 3월 12일 '부패와 전쟁'을 선포하며 대대적인 사정(司正)의 신호탄을 쏘아올릴 당시의 총리가 아니라 피의자 신분이었다.

이날 오전 9시 55분 서울고검 청사 현관 앞 '포토라인'에 선 이 전 총리의 일성(一聲)은 "진실을 이기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였다. 성완종 메모가 발견된 뒤 "한 푼이라도 받았다면 목숨을 내놓겠다"고 할 정도로 강하게 부인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우선 제 말을 좀 하겠다"며 말을 꺼낸 그는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다. 심려 끼쳐 드린 점 대단히 죄송하게 생각한다"며 사과했다. 이어 "검찰에서 상세히 입장 밝히고, 또 검찰의 이야기를 듣고 해서 이 문제가 잘 풀어지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질문은 받지 않겠다"고 했는데도 질문이 나오자 "부탁합니다. 비켜주세요"라며 검찰청사 안으로 들어갔다.

이 전 총리 조사는 6일 전 1억원 수수 혐의로 소환된 홍준표 경남지사와 같은 조사실에서 같은 방식으로 이뤄졌다. 서울고검 1208호에서 문무일 특별수사팀장(대전지검장)과 10여분간 차를 나눴다. 문 팀장은 "조속히 의혹을 말끔히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자료가 있으면 충분히 제출해달라"고 했다. 두 사람은 수사와 관련된 의례적인 말만 주고받았고, 분위기는 냉랭했다고 한다.

이 전 총리 조사는 수사팀에 파견된 부산고검 주영환 부장검사가 맡았다. 주 부장검사는 이 전 총리에게 '총리님'이라고 호칭했지만 진술조서에는 '피의자 이완구'로 기재했다. 특수수사 전문인 주 부장검사는 2012년 서울중앙지검 부부장 시절 저축은행 비리 수사를 맡아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을 구속했다. 이 전 총리 조사에 배석한 김종필 변호사는 주 부장검사와 사법연수원 27기 동기다.

이 전 총리에 대한 검찰 조사 핵심은 2013년 4월 4일 재·보궐 선거사무소에 온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을 독대하면서 쇼핑백에 든 3000만원을 받았는지 여부다. 홍 지사 조사 때처럼 검찰이 확보한 증거를 토대로 육하(六何) 원칙에 따라 혐의를 추궁하는 방식이 아니라 이 전 총리의 해명을 듣는 방식으로 조사가 진행됐다. 수사팀 관계자는 "의혹 수사의 특성상 본인의 상세한 이야기를 들어야 신빙성 여부나 객관적 자료와 부합되는지 여부를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이 전 총리가 혐의를 강하게 부인하기 때문에 금품 수수 여부에 대한 질문 자체가 의미가 없고, 이 전 총리가 해명을 하는 과정에 드러난 허점을 파고들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앞서 이 전 총리는 이날 오전 9시 35분쯤 서울 도곡동 대림아크로빌 자택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