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법 거부권 행사하며 정치권 강력 비판]

유승민 원내대표 사실상 사퇴 요구… 與는 유임 결정
野 "의회민주주의에 대한 도전… 국회 일정 보이콧"

박근혜 대통령은 25일 국무회의를 거쳐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재의 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이와 함께 여야(與野)를 가리지 않고 전례 없는 강도로 국회를 비판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에 대해 야당은 메르스 관련 법안 처리를 제외한 다른 국회 일정을 모두 보이콧하기로 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재의 요구 이유에 대해 "국회법 개정안은 국가행정 체계와 사법 체계를 흔들 수 있는 사안으로 여야의 주고받기 식이나 충분한 검토 없이 서둘러 진행할 사안이 아니다"고 했다. 이어 국회를 향해 "꼭 필요한 법안은 당리당략으로 묶어 놓으면서 본인들이 추구하는 당략(黨略)적인 것은 빅딜을 하고 통과시키는 난센스적인 일이 발생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박 대통령은 "신뢰를 어기는 배신의 정치는 결국 패권주의와 줄세우기 정치를 양산하는 것으로 반드시 선거에서 국민이 심판해주셔야 할 것"이라고 했다. "국민을 위하겠다"며 선거 때는 표(票)를 구하고 선거 후에는 지키지 않는 여야 행태를 '배신의 정치'라고 규정하고, 정치권 전체를 상대로 싸우겠다는 '투사(鬪士)형 정치'를 선보인 것이다.

특히 박 대통령은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겨냥, "여당의 원내 사령탑도 정부 여당의 경제 살리기에 어떤 국회의 협조를 구했는지 의문"이라며 "정치는 자기의 정치 철학과 정치적 논리에 이용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했다. 이날 발언 원고는 박 대통령이 직접 작성한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박 대통령 발언에 대해 "집권 후반기를 앞두고 여권의 전열을 재정비하겠다는 뜻"이라고 했다. 다른 관계자는 " '당이 지금처럼 나온다면 나는 따로 갈 수밖에 없다'는 메시지가 담겼다. 유 원내대표의 거취도 연결돼 있는 것"이라고도 했다. 여당은 박 대통령의 이날 요구를 놓고 4시간 동안 의원총회를 가졌다.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는 받아들였지만 유 원내대표 거취에 대해선 유임을 결정했다. 유 원내대표는 의총 직후 "더 잘하라는 채찍으로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야당에 대해서도 "내년 총선 때까지도 (경제 살리기 법안 등을) 통과시켜주지 않고 '가짜 민생 법안'의 껍질을 씌워 끌고 갈 것인지 묻고 싶다"고 했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거부권 행사는 국회는 물론 국민과 싸우자는 것으로 의회민주주의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며 "정치는 사라지고 대통령의 고집과 독선만 남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