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신임 묻겠다" 회견]

비주류의 혁신안 공격에 단결 압박하기 위한 카드
범친노계 정세균 고문 "각 진영 연석회의 제안"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9일 "재신임을 묻겠다"며 예정에 없던 기자회견을 열었다. 하지만 이미 두 달여 전부터 측근들과 준비를 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시기만 보고 있다가 전날(8일) 오후 "혁신안이 당무위를 통과할 것 같다"는 보고를 받고 회견 준비를 지시했다고 한다.

▲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9일 국회 당대표실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문 대표는“혁신안이 통과되지 못하면 즉시 당대표직에서 물러나겠다”며 당원 투표와 국민여론조사를 통해서도 한 번 더 재신임을 묻겠다고 했다. /전기병 기자

문 대표의 한 측근은 "6월 말 혁신위가 출범하고 혁신안이 하나 둘 발표되던 7월 말쯤부터 측근들과 재신임론 등을 논의했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당 대표직 사퇴, 대선 후보직 포기 등을 제안한 참모들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문 대표는 "내가 왜 물러나느냐"고 했다고 한다. 윤건영 당대표 정무특보는 "문 대표가 재신임을 받겠다는 건 자신감의 표현"이라며 "'이대로 가다간 총·대선에 다 질 수 있다'는 위기감에서 비롯된 정면 돌파 의지"이라고 했다.

다른 관계자는 "긴 숙고의 시간을 거쳤다"면서 "오는 16일 중앙위에서 혁신안이 통과되는 것을 촉구하는 것과 동시에 당내 비주류를 향한 마지막 단결 압박이기도 하다"고 했다. 당의 주요 인사인 김한길·안철수·박영선 의원과 비주류 의원 모임인 민집모 등에서는 혁신안을 놓고 "실패했다" "성공하지 못한 것 같다"고 평가하자 이를 겨냥해 발표한 것이라는 얘기다. 문 대표가 이날 "재신임 후엔 총선 승리를 위한 총력 체제, 재창당에 가까운 뉴파티(New Party) 비전을 제시하겠다"며 야권 통합에 나설 뜻을 시사한 것도, 재신임을 받는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들이다.

이날 오후 2시 30분쯤 열린 문 대표 회견도 취재진에는 30분 전에야 전달됐지만 내부적으론 준비가 돼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혁신안이 진통 끝에 최고위와 당무위에서 잇따라 통과되자 통보가 이뤄졌다. 한 비주류 당직 의원은 "어쩐지 문 대표가 오늘따라 (당 회의에서) 격한 반대가 나왔는데도 혁신안을 강하게 밀어붙이더라"고 했다. 회견은 문 대표가 친노계 의원 일부와 측근 몇몇과만 상의하는 등 철저한 비밀에 부쳐졌었기 때문에 당 대변인, 최고위원들도 몰랐다고 했다. 하지만 회견장에는 프롬프터, 스피커까지 설치돼 있었다.

문 대표는 이날 흥분하지 않고 차분히 회견문을 읽어 내려갔다. 회견문은 직접 본인이 쓰고 메시지팀은 도움만 준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혁신위와 문 대표를 비판하는 비주류 측 인사의 이름을 회견문에 넣는 안(案)도 거론됐지만 문 대표가 "그건 안 된다"고 했다고 한다. 대신 '신당·분당을 함부로 얘기하는 분들' '심각한 해당 행위'란 표현 등으로 바뀌었다.

이날 문 대표 회견은 주류 인사들이 제기한 "혁신안에 문제가 있다" "당이 이대로는 어렵지 않겠느냐"는 지적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전날 의원총회에서는 이원욱 의원 등 범(汎)친노계가 앞장서 혁신안 비판에 가세했었다. 문 대표와 가까운 정세균 상임고문도 이날 문 대표 회견에 앞서 보도자료를 내고 '2017년 정권 교체를 위한 연석회의'를 제안했다. 그는 "(정계를 은퇴한) 손학규 전 상임고문 등 당 원로와 3선(選) 이상 중진, 전·현직 지도부, 혁신위가 당의 진로를 결정하자"며 "(탈당한) 천정배·정동영 전 대표 등도 함께해 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여기서 문 대표에게 물러나라고 하면 물러나야 한다"고 했다. 문 대표는 이에 대해 "정 고문의 생각에 100% 공감한다"고 했다. 정 고문도 회견 전에 문 대표에게 내용을 알려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당 관계자들은 "문 대표가 재신임 카드를 꺼낸 건 정 고문 등마저 자신에게 등을 돌릴 수도 있겠다는 걸 고려한 결과 아니겠느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