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투 틀고 갓을 쓴 영화 속 진채선(수지). /CJ엔터테인먼트 제공

[25일 개봉 '도리화가' 최초의 여류명창役 맡은 수지]

3년 만에 스크린 복귀작
"박애리 명창께 배운 판소리, 구슬픈 마음 표현하려 노력
유명해지면서 일상 못 누려… 드라이브로 스트레스 풀죠"

멜로 영화 '건축학개론'(2012)으로 '국민 첫사랑'이 된 그녀를 스크린에서 재회하기까지 3년이 걸렸다. 수지(21)를 만난 건 지난 23일 소설(小雪). 보자마자 첫눈 예보를 들려줬다. "그래요? 첫눈에 대한 판타지가 없어서(웃음). 눈 보면 좋은데 곧 불안해져요. 길이 막히겠구나, 너무 많이 내리진 않았으면…."

수지는 "첫눈 오면 만나자"던 '건축학개론' 속 서연과는 영 딴사람이 되어 돌아왔다. 판소리 최초의 여류 명창 진채선(1842~?). 25일 개봉한 '도리화가(桃李花歌)'는 관객을 19세기 중반으로 데려간다. 여자는 소리를 할 수 없던 시절, 진채선은 신재효(류승룡)가 세운 판소리 학당 '동리정사'에서 어깨너머로 소리를 배운다. 남자는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춘향가를 불러 스승과 흥선대원군(김남길)을 감동시키는 대목이 클라이맥스다. 수지는 "시나리오를 읽으며 연습생 시절 울컥울컥했던 감정이 떠올랐고 채선의 당찬 모습에 끌려 선택한 영화"라고 했다.

―'가수가 되겠다' 선언한 게 중학교 1학년 때다.

"겉멋이라고 생각하셨는지 집에서 반대가 심했어요. 몰래 학원 알아보고 길거리 공연에 참여하며 꿋꿋하게 버텼지요. 진채선과 제 공통점이 깡과 끈기예요(웃음). 몇 개월 지나 공연을 보고서야 딸의 꿈을 인정해주셨어요."

―막막해도 열망은 뜨거웠을 연습생 시절이 때론 그립겠다.

"엄청 그리워요. 삼시 세끼 컵라면을 먹어도 힘들지 않았어요. '도리화가' 준비하느라 박애리 명창께 1년쯤 소리 배우면서 그때 생각을 많이 했어요."

―판소리와 가요는 하늘과 땅 차이일 텐데.

"가요 부를 땐 반(半)가성을 쓰는데 판소리는 웅장하고 센소리를 내야 해요. 처음엔 소리만 꽥꽥 질러대니 목이 금방 상했어요. 선생님이 빨리 익히고 목소리도 잘 어울린다며 용기를 북돋워주셨어요. 배운 걸 녹음해 반복해 들으면서 조금씩 나아졌습니다."

―내가 봐도 잘했다 싶은 대목은?

"판소리 춘향가 중 '갈까부다'를 부르는 장면이요. 합천 황매산에서 촬영했는데 자연과 어우러지며 원숙한 소리가 나왔어요. 반대로 (춘향이가 옥중에서 임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하는) '쑥대머리'는 감정이 깊고 구슬퍼서 애를 먹었어요. 노래보다는 간절한 마음을 표현하는 데 집중했어요."

―'건축학개론' 땐 군인 같은 걸음걸이 때문에 고생했다.

"이번엔 천진난만한 모습이 살아나서 거꾸로 도움이 됐어요."

―가장 좋아하는 대사는?

"'마음껏 울거라. 울다 보면 웃게 될 것이다'랑 '난 소리하다 죽을라요'. 자꾸 생각나요."

―꿈을 이루는 바람에 불편해진 것도 있겠다.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나?

"프랑스에 가서 도촬(盜撮)을 했는데 전부 일상적인 것들이에요. 자전거 타는 연인, 아이스크림 먹는 꼬마…. 저는 한국에서 걸어 다니는 것도 힘들어요. 관심은 고맙지만 일상이 노출되는 게 피곤해 집에서 안 나가요. 스트레스는 드라이브로 풉니다. 팔당댐은 하도 자주 가서 눈 감고도 운전할 수 있을 정도예요(웃음)."

―'국민 첫사랑' 말고 바꿀 만한 다른 수식어 준비해 왔나?

"숙제 못 했습니다. 막 던질 수도 없고 궁리해도 안 나오더라고요. 첫사랑은 '건축학개론'이란 영화 속 이미지잖아요. 전 그렇질 않으니 가끔 죄책감도 들고. 기대에 부응하겠다는 생각도 딱히 없어요. 이 또한 넘어서야죠."

수지는 "'도리화가'에는 첫사랑은 없지만 잔잔한 드라마와 감동이 있습니다!"라고 외쳤다. 다음 일정이 있다며 서둘러 자리를 떴다. 나무계단을 내려갈 때 쿵쾅쿵쾅 소리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