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 'Mr. 쓴소리'… "바른 소리하다 당당하게 가겠다"]

6대 국회 최연소 의원 입문
8選 의원… 2차례 의장 지내
여당에서 '여당 내 야당' 역할
박 前 대통령 3선 개헌 반대도

8선(選) 국회의원과 두 차례 국회의장을 지낸 이만섭(李萬燮·83·사진) 전 국회의장이 14일 오후 4시 31분 호흡 부전으로 별세했다. 이 전 의장은 우리 현대 정치사의 산증인이었으며, 지난 2004년 정계 은퇴 후에도 후배 정치인들을 향해 할 말을 하는 원조 '미스터(Mr.) 쓴소리'로 불렸다. 동아일보 기자를 거쳐 1963년 31세의 나이로 6대 국회의원에 당선됐고, 이후 7·10·11·12·14· 15·16대 의원을 지냈다. 이 전 의장은 기자 시절 인연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발탁돼 정계에 들어왔다.

1932년 2월 대구에서 태어난 이만섭 전 의장은 1950년 초 연세대에 입학했지만 그해 6·25전쟁 발발 후 공군사관학교 3기생으로 입교했다. 하지만 임관을 앞두고 생긴 학내 다툼에 생도회장으로 책임을 지고 퇴교한 뒤 연세대로 돌아갔다. 재학 시절 이 전 의장은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모습으로 학교 응원단장 활동을 해 '털보 응원단장'이란 별명을 얻었다. 그는 1963년 정계 입문 전까지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였다. 자유당 시절이던 1960년 5월 보안법 파동을 국회의사당 기자석에서 지켜보다 "야, 이 자유당 나쁜 놈들아"라고 소리쳤고, 이에 사회를 보던 곽상훈 의장이 "동아일보 이만섭 기자! 조용히 하시오"라고 말한 일화는 유명하다. 그는 5·16 이후 윤보선 당시 대통령이 '군사정권은 조속히 민간인에게 정권 이양해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던 회견 내용을 기사화했다가 군사정부의 포고령 위반으로 육군 형무소에 수감됐다. 그러면서도 1962년 박정희 전 대통령(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을 언론사 기자 중 최초로 인터뷰했다. 박 전 대통령의 울릉도 시찰 소식을 듣고 미리 전함 기관실에 숨어 있다가 성사시켰다. 박 전 대통령이 이 자리에서 "언론이 문제"라는 식으로 말하자 이 전 의장은 "사실 보도가 신문의 사명"이라며 맞섰다고 한다.

그는 1963년 6대 국회에 공화당 전국구 의원으로 당선되며 정계 입문을 했다. 당시 최연소 국회의원(31세)이었다. 이 전 의장은 회고록에서 당시 상황에 대해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호감을 갖게 된 뒤 아내와 상의를 거쳐 정치 입문을 결심하고 곧장 박 전 대통령을 찾아갔다'고 했다. 그는 '박 전 대통령은 나의 정치적 스승이었다'고 적기도 했다.

이 전 의장은 주로 '여당'에서 정치 활동했지만 여당 내 야당 같은 역할을 해왔다. 7대 국회였던 지난 1969년 박 전 대통령의 3선 개헌을 반대했고, 실세였던 이후락 비서실장과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의 해임을 요구했다가 어려움을 겪었다. 이후 이 전 의원은 14대 국회 때 민자당 전국구 의원으로 당선되며 국회의장 자리에 올랐다. 전임 의장이 재산 공개 파동으로 낙마하면서 남은 임기를 맡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해 12월 여권(與圈)의 통합선거법 등에 대한 '법안 날치기' 사회를 거부해 김영삼 대통령과 불편한 관계가 됐다. 그는 1997년 이인제 대선 후보를 지원하면서 신한국당을 탈당했고, 16대 국회(2000년 총선)에서 여당인 새천년민주당 비례대표 의원으로 당선되며 두 번째 국회의장직을 맡았다. 이번에는 당시 여당이 국회법 날치기를 통해 교섭단체 요건을 완화하려는 것을 막았다. 특히 2002년에는 중립적인 국회 운영을 위해 국회의장의 당적(黨籍) 보유를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이 전 의장은 헌정 사상 '첫 무(無)당적 국회의장'이 됐다.

그는 2004년 16대 국회를 끝으로 정계 은퇴를 했지만 원로로서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이 전 의장은 지난 2013년 국회에 남긴 '역대 국회의장단 구술 기록'에서 '내 남아 있는 소원은 내 살아 있을 때까지 바른 소리 하다가, 죽을 때는 당당하게 웃고 죽는 것'이라고 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한윤복씨와 장남 승욱, 딸 승희·승인씨 등 1남2녀가 있다. 빈소는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18일 오전 9시. 영결식은 이날 오전 10시 국회에서 열린다. (02)2227-75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