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취] '바람의 옷' 한복의 美, 세계에 알린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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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5.18 03:27

[한복 디자이너 이영희씨 별세]

한국인 최초로 파리서 패션쇼
프라다·아르마니·마이클 잭슨 등 세계 유명인사들 사로잡아
"자유와 기품 한데 모은 옷" 찬사

한국을 대표하는 한복 디자이너 이영희(82)씨가 17일 폐렴으로 별세했다. 고인의 딸이자 패션 디자이너인 이정우씨는 "평창 동계올림픽 개·폐막식에 오른 의상을 점검하려고 리허설 현장을 꼼꼼히 챙기며 열정을 다하셨기에 더욱 허망하다"며 "남북 정상회담을 TV로 보시면서 '다시 평양에서 큰 패션쇼를 해야 한다'고 말씀하실 만큼 마지막까지 한복만 생각하셨다"고 전했다. 고인은 2001년 6월 평양에서 한국 디자이너로는 처음 패션쇼 '이영희 민속의상전'을 개최했었다.

고운 선과 은은한 천연 염색은 이영희를 세계에 알렸다. 2015년 ‘이영희전-바람, 바램’ 전시장에서 의상을 선보이는 모습. /박상훈 기자

1936년 대구에서 태어난 이씨는 마흔이 되던 1976년 주변의 권유로 전업 주부에서 한복 디자이너가 됐다. 군인 남편을 뒷바라지하며 부업으로 솜과 이불을 팔다가 이불 짓고 남은 뉴똥(실크의 일종)으로 한복을 지어 입은 것이 소문이 났다. 옷을 짓던 어머니를 닮아 솜씨를 타고났다. 1977년 '이영희 한국의상'을 연 뒤 1983년 백악관 초청 미국 독립기념 패션쇼, 1986년 한·불 수교 100주년 기념 패션쇼 등을 잇따라 열었다.

그가 세계 패션계에 깊은 인상을 남긴 건 1993년 한국인 최초로 프랑스 파리 '프레타 포르테(기성복)' 무대에 서면서부터다. 저고리 없는 회색과 자줏빛의 치맛자락은 단번에 세상의 눈을 사로잡았다. 당시 르몽드 수석 패션기자였던 로랑스 베나임은 "바람을 옷으로 담아낸 듯 자유와 기품을 한데 모은 옷"이라는 찬사를 보냈다.

프랑스 파리에서 ‘바람의 옷’이라고 극찬받은 이영희 한복을 입은 모델들. /사진가 김중만

'이영희=바람의 옷'이란 수식이 그때 생겨났다. 프랑스 패션 관계자들이 '기모노 코레(한국의 기모노)'라고 부르자 이씨는 '한복(Hanbok)'이라고 직접 써주며 바로잡기도 했다. 그는 한복에 수를 놓거나 원색에서 벗어나는 등 전통을 혁신하려 애썼다.

47세에 뒤늦게 성신여대에서 염색디자인을 공부하며 기존에 없던 색감에 도전했다. 천연 염색의 고상하고 부드러운 색감과 유연한 곡선은 세계 디자이너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디자이너 미우치아 프라다가 의상을 내놓으면서 "이영희 한복 저고리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말하기도 했고, 조르지오 아르마니 역시 2004년 서울을 찾았을 때 이씨 의상실에 들러 마고자 등 한복 몇 벌을 사기도 했다.

이영희 한복을 입은 마이클 잭슨. /메종 드 이영희
이영희의 한복을 다섯 벌 갖고 있었던 팝스타 마이클 잭슨은 한복이 정말 편하다며 집에서 입고 찍은 사진을 이씨에게 보냈다. 2005년 부산 APEC 정상회담에 참석한 조지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도 이영희가 지은 두루마기가 정말 마음에 든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씨의 삶은 한복을 세계에 알리는 데 바친 인생이기도 했다. 파리에서 12년간 활동할 때 한복 디자인의 모든 금기에 도전하면서 '위(Oui) 여사(안 되는 게 없다는 뜻)'라는 애칭도 얻었다. 2004년 뉴욕 이영희 한복 박물관 개관에 이어 2007년엔 워싱턴 스미스소니언박물관에서 한복 전시를 했다. 2008년 구글로부터 '세계 60 아티스트'로 선정되기도 했다.

여든이 넘어서도 열정은 지칠 줄 몰랐다. 매일 수영하고 주 2회 개인 트레이닝을 받으며 체력 관리를 해왔다. 평창올림픽에선 화동과 태극·장구춤 퍼포먼스, 애국가 합창단, 황수미 소프라노의 의상을 디자인하는 등 최근까지도 왕성하게 활동했다. 유족으로 남편 이종협씨와 딸 이정우씨, 아들 이선우·용우씨 3남매가 있다. 외손자며느리는 배우 전지현이다. 빈소 삼성서울병원, 발인 19일, (02)3410-6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