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다스는 형님·처남 것…
30년간 경영 다툼 없던 회사에 국가가 개입하는 게 맞는지 의문"

검찰 "비자금·횡령혐의 명백"

23일 오후 2시, 이명박 전 대통령이 검은색 정장 차림으로 서울중앙지법 417호 법정에 들어섰다. 정확히 1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 첫 재판이 열렸던 곳이다. 1996년 군사 반란 등 혐의로 기소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재판도 이곳에서 열렸다.

이 전 대통령 상의에 달린 배지에는 수인(囚人)번호 '716'이 적혀 있었다. 머리는 희끗희끗했고, 얼굴은 다소 부어 있었다. 그가 외부에 모습을 드러낸 건 지난 3월 구속된 후 62일 만이다.

1년 전 박 전 대통령은 첫 재판에서 신원을 확인하는 인정신문(人定訊問) 정도에만 답했다. "맞습니다" 등 여섯 마디만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달랐다. 혐의를 강하게 부인하며 적극적으로 발언했다.

▲ 23일 오후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첫 재판에 출석해 피고인석에 앉아 있다. 이 전 대통령은 직접 작성한 입장문을 통해 “사면 대가로 삼성 뇌물을 받았다는 공소사실은 충격적이고 모욕”이라고 밝혔다. /사진공동취재단

이 전 대통령은 재판장이 직업을 묻자 작은 목소리로 "무직"이라고 했다. 그러나 재판장이 공소 사실에 대해 발언 기회를 주자 목소리 톤이 다소 높아졌다. "제가 적어 온 게 있다. 마이크(음량)를 올려 달라"고 했다. 그러고는 입장문을 꺼내 약 12분 동안 일어서서 읽었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언급할 때는 잠시 목이 멨고 몇 차례 기침하기도 했다.

검찰에서는 신봉수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 1부장, 송경호 특수 2부장 등 8명이 법정에 나왔다. 이 전 대통령 측에서는 강훈·최병국 변호사 등 4명이 나왔다. 이들은 5시간 넘게 공방을 벌였다.

검찰은 이 전 대통령이 삼성으로부터 자동차 부품회사 다스의 소송 비용 68억원을 대납받는 등 총 111억원의 뇌물을 받았고, 다스 비자금 349억원을 횡령했다고 했다. 다스가 이 전 대통령 소유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검찰은 "다스가 이 전 대통령 소유"라는 관련자 진술도 공개했다.

검찰은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 등의 진술을 통해서도 혐의를 입증하겠다"고 했다. 김 전 기획관은 검찰에서 삼성의 다스 소송비 대납과 관련해 자신이 2009년 이학수 당시 삼성 부회장을 청와대로 데려와 대통령과 만나게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목에서 이 전 대통령이 갑자기 끼어들어 "기업인은 (청와대에) 5년간 한 사람도 들어온 일이 없다"며 "이건희(삼성 회장)가 들어왔다면 모르지만 이학수를 갑자기 데려왔다는 건 있을 수 없다"고 했다. "어디 삼성 부회장이 약속도 없이 (청와대에) 들어오나, 김 전 기획관이 무슨 대단한 권력이 있다고 데려오느냐"고도 했다.

재판장이 "구체적인 것은 나중에 말씀하시라"며 제지했으나 이 전 대통령은 "검찰이 뭐 때문에 그렇게 억지로 나를 엮어서 만나지도 않은 이학수를 만났다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검찰도 내가 만나지 않은 사실을 잘 알 것"이라고 했다. 검찰이 "그러면 저희도 의견을 말씀드리겠다"고 하자 이 전 대통령은 "그만하겠다, 내가 지금 검찰하고 싸우겠단 것도 아니고"라며 말을 끊었다.

이날 법정에는 이 전 대통령의 세 딸이 방청석 앞쪽에 앉았다. 부인 김윤옥 여사와 아들 시형씨는 나오지 않았다. 이 전 대통령은 오후 7시 6분쯤 재판이 끝난 뒤 딸들을 보고는 "내가 오늘 새로운 사실을 많이 알았네, 나도 모르는"이라며 허허 웃었다.

이 전 대통령은 검찰이 낸 증거에 동의했기 때문에 앞으로 재판에서 증인신문은 열리지 않고 서류 조사만 진행될 예정이다. 그러나 그의 적극적 태도로 볼 때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다음 재판은 28일이다.